장담컨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제일 멍청하다
신랑과 가끔 오전에 아이들을 학교, 유치원에 보내고 아파트 단지 주변을 돌며 빠르게 걷는 산책을 한다. 둘이 걸으며 이런저런 서로의 생각과 고민을 나눈다.
아이들이 점점 커가며 엄마의 손이 많이 가는 시간이 차츰 줄어드는걸 피부로 느꼈다. 결국 육아라는 메인 업무에서 서서히 내려오게 될 텐데 그 이후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이 됐다.
29살 결혼 후 30살부터 아이 3명을 2살 터울씩 꾸준히 키우며 임신, 출산, 육아를 반복했다. 내가 낳은 자식이니 부모님 손을 빌리지 않고 남의 손에 키우지 않고 스스로 키우는 게 맞다는 마음으로 10년간 육아에 전념했던 나의 30대가 마무리되어 간다. 다가 올 40대 내 인생은 어떤 삶으로 채워가야 할까. 갑자기 막막해졌다.
함께 산책하며 나의 고민을 듣던 신랑이 꽤 단호하게 말했다. 자기가 보기에 당신이 남보다 잘하고 쉽게 하는 일은 '글쓰기'이니 그 영역에서 꾸준히 도전하면 반드시 성과를 내는 연결점이 있을 거라고 했다.
스스로 글쓰기를 아주 잘한다고 딱히 느낀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나와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잘 아는 신랑이 그리 말하니 묘한 신뢰가 갔다. 전에도 같은 얘기를 해줬지만 그날따라 유독 강력하게 들렸다.
단순히 생각하는 것과 그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일상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스쳐 지나가듯 그냥 흘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인들에게 내 생각을 주절주절 내뱉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생각과 말을 정리해서 글쓰기로 완성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생각을 한 편의 글로 매듭짓는 연습을 한다는 마인드로 시작했다.
그렇게 2024년 7월에 브런치 작가로 첫 글을 발행했다. 처음엔 매주 글 1개씩을 썼는데 텀이 길어지니 뭔가 글 쓰는 속도가 안 나고 집중도도 흐려지는 것 같아서 아예 브런치북 3개를 만들어 월, 수, 금 연재 요일을 정했다.
즉 자발적이자 반강제적으로 매주 3개의 글을 내놓아야 했다. 누가 하라고 협박한 것도 아니고, 안 하면 큰일 나는 것도 아니지만 그 정도의 틀이라도 만들어놔야 내가 움직일 것 같았다. 선생님이 매번 딱히 검사하진 않지만 해야 하는 숙제를 안 했을 때의 그 미묘하게 찝찝한 기분이 싫은 것처럼.
효과는 좋았다. 내가 왜 주마다 3개씩이나 쓰겠다고 했나 스스로를 원망했다. 이거 안 한다고 브런치에서 정지먹이는 것도 아닌데 배 째라는 식으로 모른채하자 싶었지만 결국 혼자 울며 겨자 먹기로 꾸역꾸역 글을 써냈다. 별 고민 없이 술술 잘 써지는 날도 있지만 여러 번 글을 갈아엎고 마지못해 못난이 글로 마무리하는 날도 있었다. 어쨌든 글은 계속 발행됐다.
월요일 내 집 마련 스토리도, 수요일 부부 영화 리뷰도, 금요일 육아 에세이도 일단 일을 벌여놨으니 어떻게든 글이 나오긴 했다. 그리고 브런치에서는 고맙게도 그런 나의 서툰 글을 모아 작품이라고 불러줬다. 4개월이 지난 지금 어느새 41개의 글이 쌓였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 가장 뜨겁게 응원해 주던 친구는 "너 열심히 글 쓰다 보면 브런치 메인에도 뜨고 다음 메인에도 글을 띄워준다"라고 응원했지만 솔직히 그 말을 믿진 않았다. 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글을 써온 4개월 동안 여러 번 브런치 메인과 다음 메인에 내가 쓴 글이 노출되는 경험을 했다.
드디어 오늘 구독자 101명이라는 글씨를 보며 뭉클했다. 브런치를 시작하며 막연하게 꿈꾸던 숫자. 그리고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개인적인 성취감이었다. 누군가의 엄마로, 주부로의 역할이 아닌 그냥 내 개인의 도전이었고 이렇게 목표에 도달한 성공을 거두어 진한 값어치가 있었다.
뭐 그리 엄청난 걸 이루었다고 '성공'이라는 단어까지 쓰냐고 하겠지만 넉 달 전까지만 해도 신랑과 산책하며 대책 없이 투덜대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었으니 지금의 결과로 보면 나에겐 충분히 성공적이다.
노트북 앞에 앉아 몸을 베베 꼬아가며 쥐어짜듯 써낸 글들을 보고 선뜻 구독하겠다고 신청해 준 분들이 100명이나 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이 누추한 곳에 이렇게 귀하신 분들이 오시다니 감개무량하다.
그저 내 몸 편히 뉘일 집 한 채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아이를 키우며 부모로, 엄마로 여러 가지 고민을 하며 아이와 같이 성장하는 사람들. 그분들이 한 편으로는 내 글에 공감하고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말인 것도 같아서 묘하게 든든한 동지애까지 느꼈다.
글에 달리는 댓글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직접 들을 수도 있었고 글의 하트 개수가 조용히 올라갈수록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인으로 읽으며 소소한 재미를 맛봤다.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에도 그랬고, 한참 글을 발행하다가 중간에 갑자기 너무 별 볼 일 없는 하찮은 글만 써내는 것 같아 무의미하게 느껴져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도 베프는 나에게 그랬다.
"야, 너 그거 너무 잘하려고 해서 그래. 그냥 해. 그냥 써. 너 뭐 돼? 아무 생각 하지 말고 그냥 좀 해라."
맞다. 뭔가 거창하고 최대한 최상의 글을 쓰고 싶었고. 좀 더 다듬어져서 멋진 것만 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내 이상과 실제 현실의 괴리를 느낄 때마다 짜증나고 괴로웠다.
뭐 엄청난 사람들이 보는 대단한 글도 아닌데 혼자서 잔뜩 기준치를 높여 놓고 안 된다고 못 하겠다고 징징댔던 것이다. 그렇게 고민과 생각만 하다가 시간을 놓쳐 결국 이도 저도 아니게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 왜 매번 그리 쉽게 잊는지.
Just do it. 시작이 반이다. 그런 말들은 나처럼 생각이 많아서 실행력이 느린 사람에게 가장 어렵고 힘든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 그렇게 느린 나도 꾸역꾸역 해보니 단순하게 그냥 하는 것에 엄청난 힘이 있음을 다시금 느낀다.
장담컨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제일 멍청하다. 그간 멍청이로 얼간이로 살아왔던 사람으로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냥 했을 때 만약 실패한다면 그걸 교훈 삼아 배우면 된다. 그냥 해서 잘되면 잘 해낸 나를 칭찬하고 더 잘 되도록 그 일을 꾸준히 하면 된다.
어쩌면 아는 것의 힘보다 '하는 것의 힘'이 더 파워풀하지 않을까. 딴생각 말고 그냥 하자는 마인드로 오늘도 이렇게 글 1건을 발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