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방을 갖고 싶다는 아이에게
둘째가 학교 끝나고 같이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친구와 점점 친하게 지내더니 서로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난리가 났다. 우선 각자 가능한 시간을 맞춰보고 친구를 먼저 우리 집에 초대해서 놀게 했다. 소소하게 간식도 먹고 집에 있는 장난감을 갖고 아이들 방에서 나름 재밌게 놀았다. 며칠 뒤엔 반대로 둘째가 그 친구네 집에 초대받았다며 신이 나서 집을 나섰다.
친구 집에 다녀온 아이에게 어땠냐고 물으니 거기서 친구랑 신나게 놀고 온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쏟아냈다. 그리고는 "엄마 근데 걔네 집 거실은 진짜 이~만해."라고 목소리를 높여 말하면서 두 팔을 가득 넓게 펴고는 우리 집 거실을 넘어 주방 복도 쪽까지 걸어갔다.
같은 아파트 단지였기에 '그 집은 대략 몇 평쯤인가 보다. 대형 평수인가 보네.' 하고 속으로 추측했다. 아이는 별생각 없이 하는 말인 것 같았는데 엄마 입장에선 혹여나 친구 집보다 작은 우리 집을 비교하며 아이가 속상하진 않았을까 신경이 쓰여서 슬쩍 돌려 말을 걸었다.
아이는 우리도 그런 넓은 집에 살면서 혼자만 쓰는 자기 방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넓은 친구 집이 좋아 보인다는 아이의 마음을 억지로 부정하진 않았다. 엄마도 너희들이 점점 더 커갈 테니 여기보다 넓은 집에 가면 좋겠다고, 다음에 이사 가는 집은 넓은 곳에 가서 예쁘게 꾸미자고 아이와 함께 의지를 다졌다.
외동이거나 자녀 2명인 집은 방 1개를 아이 혼자 오롯이 쓰도록 각 방에 책상과 침대를 두고 꾸며주기도 한다. 우리 집은 20평대 방 3개인 집이라 방1은 안방, 방2는 책상 2개와 책장들이 있는 아이들 공부방, 방3은 이층침대와 싱글침대가 있는 아이들 침실로 나눠 쓰고 있다.
아이가 셋이다 보니 현재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각방을 내주는 건 불가능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여러 친구들 집에 놀러 가보곤 둘째도 친구들처럼 자기만의 예쁜 방을 갖고 싶은 로망이 생겼나 보다.
집 이야기가 나오자 첫째와 둘째는 누구네 집 화장실은 호텔 같더라, 누구네 집 거실 천장에는 돌아가는 뭔가가 있더라, 누구네 집은 인테리어가 진짜 멋지더라 하면서 서로 신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아이들이 어려서 아직 모를 줄 알았는데 역시 우리 딸들도 그런 환경적 변화와 차이를 예리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와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얼마 전 첫째와 대화를 하다가 인스타에서 봤던 내용이 생각나서 그걸 보여주겠다고 같이 게시물을 찾고 있었다. 어떤 인플루언서가 아이와 여행을 다녀왔다는 피드가 있었는데 비즈니스석에 타고 있는 사진을 보더니 첫째가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물었다.
"엄마, 얘네 비행기 자리는 왜 이렇게 좋아???"
아뿔싸, 들켜버렸다.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에는 이코노미석 외에 비즈니스석이라는 편안한 자리가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야 말았다. 아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큰 배신감을 느낀 것처럼 비즈니스석에 앉은 인스타 속 사진을 계속 확대해 가며 거듭 눈으로 확인했다.
좁은 이코노미석 말고 이렇게 넓고 푹신한 비즈니스석을 타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도 비즈니스는 타본 적 없지만 이코노미석 티켓값의 몇 배가 될 테니 우린 그 비용을 아껴서 여행지에서 더 좋은 숙소, 맛있는 음식 먹는 걸 선택하자고 말했다. 좀 구차한 변명 같긴 했지만 사실이기도 하니까.
아이들이 커가면서 점점 현실에 눈 뜨는 모습이 느껴진다. 작게는 친구들 간에 용돈 차이나 새로운 옷과 신발이 얼마나 자주 바뀌는지를 보기도 하고, 서로 학원을 몇 개 다니는지 주말이나 휴가 때 어디로 여행을 가는지 말하며 비교 아닌 비교를 하기도 한다.
언니한테 물려받은 녹슨 중고 자전거를 무심코 갖고 나갔는데 친구들 모두 말끔한 새 자전거를 타고 온 걸 본 둘째가 민망해하는 얼굴을 보고 안 되겠다 싶어서 생일 선물로 새 자전거를 사준 적도 있다.
어찌 보면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 속에서 지극히 인간적으로 당연한 모습이다. 하물며 6살 유치원생 막내도 누구는 오늘 반짝이 구두를 신었다느니, 누구는 핑크색 머리로 공주처럼 염색을 했느니 하며 나와 타인을 비교할 줄 안다.
나 조차도 주위에 살림 잘하고 일도 잘하고 외모도 훌륭하고 지식도 뛰어나며 정보도 빠삭하고 아이와 감정 교류도 풍부하고 두루 인간관계도 좋은 사람을 볼 때 같은 엄마라도 부족한 내 모습이 보여 부끄러운 맘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그때는 비교하며 좌절하는 것보단 그녀를 통해 배울 것은 배우고 내가 잘하는 걸 더 열심히 해내는 편을 택한다. 그녀와 나는 다르기 때문에 그냥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아이가 남을 부러워하며 비교 대상을 가질 때 단칼에 말을 잘라 '넓은 집에서 산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좁은 집에서 행복하게 사는 게 최고'라고 무조건 억지 섞인 정신 승리를 강조하기보다는 좋아 보이는 모습은 그대로 공감해 주고 왜 좋아 보였는지,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그래서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예민해지는 사춘기 시기가 올 때 이렇게 비교하며 고민하는 상황들이 더 자주 올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시기에도 본인의 솔직한 마음을 엄마한테 털어놓을 수 있고 나도 주거니 받거니 대화할 수 있는 정도의 관계가 유지된다면 정말 좋겠다며 혼자 호기롭게 핑크빛 미래도 그려봤다.
우리 집이 다른 집보다 좀 좁더라도, 비즈니스석이 아닌 이코노미를 타더라도 비교 의식에 매몰되지 않고 그대로 현실을 똑바로 마주할 줄 아는 담담하고 지혜로운 아이들이 되길 바라며.
그래도 아이들에게 좀 더 넓은 집을 제공해주고 싶고 언젠가 럭셔리한 비즈니스석도 한 번쯤 함께 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보니 고슴도치 엄마 마음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