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는 현실 육아
아이도 나도 동시에 당황했다. 특히 나보다는 아이가 더 많이 놀란 얼굴이었다. 괜찮다고 답답한 거 없이 그냥 지금 다 토하라고 하며 등을 두드려줬다. 억지로 참지 말고 토하고 싶을 때는 그냥 다 토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아이는 순식간에 불쾌한 냄새가 풍겨 더러워진 바닥과 옷을 보고 나에게 말했다.
"엄마, 미안해."
"아냐, 괜찮아. 원래 토하면 그러는 거야. 많이 놀랐지? 이건 그냥 걸레로 닦고 치우면 돼. 옷은 빨면 되고. 신경 쓰지 마."
약간 진정이 된 뒤 아이를 간단히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다. 다행히도 아이는 차라리 토를 하고 나니 속이 한결 편하다고 했다.
본인이 토해서 속 아프다고 울고 짜증 낼 줄 알았는데 갑자기 청소해야 될 상황을 만든 게 미안하고 민망했었나 보다. 자기 아픈 것보다 이걸 치울 엄마 걱정부터 하다니 기특하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까지 마음 쓰는 아이가 오히려 더 안쓰러웠다.
미안하다고 말하던 모습이 자꾸 생각나서 짠한 마음으로 잠이 든 아이 얼굴을 여러 번 쓸어내렸다. '아파서 고생하네. 언제 이렇게 컸나. 그래도 자는 모습 보면 아직도 아기 같네.'라고 생각하곤 이불을 덮어 토닥였다.
막내가 세 아이 중 모유수유를 가장 오랫동안 했는데 어린이집을 다니던 3살까지도 자기 전에는 꼭 수유를 했었다. 진짜 내 평생의 마지막 모유수유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아이보다 엄마인 내가 더 아쉬워했던 모양이다.
젖을 물고 스르르 눈이 감겨 잠에 빠지는 아이 얼굴과 오물거리는 입, 꼬물거리는 손발을 가만히 보는 게 나에겐 힐링의 시간이었다. 따뜻하고 말캉한 아이를 내 품에 폭 감싸안는 고요한 그 시간이 참 좋았다.
하지만 이제 정말 끊어야 할 시기라 여겨 굳게 맘을 먹고 단호하게 나가기로 했다. 일주일 전부터 아이에게 찌찌 빠이빠이를 발표했고 서로 약속한 단유 디데이가 됐다. 예상처럼 아이는 졸린 눈을 비비며 찌찌!!!! 를 외쳐댔지만 나는 미동 없이 담담하게 안된다고 했다.
온갖 짜증을 부리며 한참을 목놓아 울고 불던 아이가 번뜩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울음을 뚝 그치고는 내 가슴을 가리키며 아주 조심스럽고 공손히 말했다.
"엄마, 저 찌찌 먹어도 돼요~?"
그 말에 참지 못하고 팍 웃음이 튀어나와 버렸다. 오늘은 기필코 단유 하겠다는 엄마의 의지를 한 방에 무장해제 시키는 한마디였다. 3살짜리 막내딸은 엄마에게 어떻게 공략해야 먹히는지 내 속을 이미 훤히 꿰뚫고 있었다.
웃음이 터진 나를 본 막내는 성공했다는 듯 배시시 웃어 보이며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민망하게도 그날 단유는 실패했다. 그 뒤로 한 달 여 정도 후에야 겨우 단유에 성공했다.
저녁을 먹고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은 모든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쏟아부어 육아의 퇴근을 향해 전속력을 내는 타임이다. 하루 종일 노느라 여기저기 흐트러진 장난감들도 정리하고, 밥 먹은 그릇들도 부지런히 식기세척기에 넣어 돌리고, 내일 학교 갈 때 챙길 것은 없는지 준비물도 확인하고, 세 아이들 양치질 점검까지 모두 꼼꼼히 해야 해서 정신없이 바쁘다.
장난감을 치워라, 방 정리해라, 숙제했냐, 준비물은 없냐, 양치질 빨리 해라, 침대로 가서 잘 준비해라 등등 나도 모르게 목청껏 아이들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한참 아이들에게 열띤 지시를 하는 중에 신랑이 퇴근했다.
"여보 다녀왔어~?"라고 살갑게 맞이하는 나를 빤히 보곤 대뜸 둘째 딸이 말했다.
"엄마는 왜 우리한테만 공룡 목소리로 말해?"
딸아이의 그 말 한마디에 내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내가 너무 이중적이게 다른 목소리였나 부끄러웠다. 민망한 마음에 둘째 아이를 꽈악 껴안고 '엄마 목소리가 좀 컸었구나 미안해' 하곤 빨리 양치질을 하라고 욕실로 들여보냈다.
육아를 하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아이의 말 한마디로 울고 웃게 되는 순간이 있다. 어른인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건드리는 아이들의 시선과 표현에 정신이 번쩍 든다.
부모라면 누구나 그렇듯 아이 때문에 가장 힘들지만 아이 덕분에 제일 힘이 난다. 육아는 아이도 커가지만 엄마인 나도 같이 성장하는 시간이다.
아이의 작은 한마디에 위로받고 반성하게 되듯 역으로 난 아이들에게 매일 어떤 말을 쏟아내고 있는지 되돌아본다. 부글부글 화나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상처 주는 말로 쏘아대지는 않았는지, 같은 말이라도 아이의 마음을 감싸주는 보다 지혜로운 말로 토닥였는지. 아이들 덕에 평소 나의 말 습관까지 점검하게 된다.
아이 스스로는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의 말들을 엄마인 내가 이렇게 기억하고 가슴에 담는 것처럼 아이가 기억하는 엄마의 말이 되도록이면 따뜻하고 포근한 위로와 사랑의 말이었으면 좋겠다.
오늘 밤에는 자기 전에 꼭 아이들 한 명씩 기억에 남을 감동의 말 한마디를 속삭여주고 재워야겠다.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엄마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