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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레이첼 Nov 18. 2024

전세살이의 굴레를 벗어나려면

이렇게는 더 이상 못 살겠다 싶은 순간이 올 때

주거지를 옮길 수밖에 없는 확실한 계기


난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간단치 않고 그 선택을 하기까지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린다. 그래서 극단적이게 막다른 상태에 치닫지 않는 이상 어지간하면 현재 상황을 유지하려고 하는 편이다. 변화를 경계하는 편이고 앞날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불안한 상황을 힘들어하는 것 같다.


전세살이를 계속하는 사람들의 특징도 나와 비슷하다. 반드시 이사를 가야만 하는 이유, 전세가 아니라 매매로 집을 사야 하는 아주 확실한 계기가 없다면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다. 전셋집에서 이대로 산다고 해서 엄청난 손해나 변화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재계약 때마다 전세금을 올려주긴 하지만 집값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더 크다 보니 전세금을 소폭 올려서라도 그냥 현 상태를 유지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혹시나 내가 집을 샀는데 집값이 떨어진다거나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게 돼 대출금을 갚지 못할 등등 여러 돌발 상황이 일어나면 어쩌지 싶은 오만가지 생각까지 들면서 쉽게 전세를 버리지 못한다.


차라리 누가 나에게 언제 어떤 집을 사라고 딱 정해주면 좋겠다 싶다. 하지만 그런 결정은 아무도 내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정해준다고 해서 그렇게 움직이지도 않을 확률이 높다. 아무리 훌륭한 국내 최고의 부동산 전문가가 가이딩 한들 본인이 준비되어있지 않는다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현재 집에서 이사를 가야만 하는, 더 나아가서 전세살이를 끊고 집을 사야겠다고 본인이 느끼는 확실한 계기가 있는 게 가장 좋다. 누군가는 못된 집주인을 만나 진짜 치사하고 더러워서 내가 악착같이 집을 사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지방으로 발령받아서 전세와 매매 차이가 거의 안나길래 얼떨결에 첫 집을 사게 된 사람도 있다. 어느 이유든 전세살이를 끝낼만한 포인트가 생겨야 이 굴레를 끊을 수 있다. 




# 자꾸 엄마 목소리가 들려서 안 되겠어


엄마는 내가 결혼식을 올리고 2개월 뒤에 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다. 수술하려고 개복을 했을 땐 이미 3기 B인 상태로 다른 장기까지 전이가 많이 된 상태였고 5년 후 생존율도 희박했다. 그러나 원더우먼 챔피언급 엄마는 그 독한 항암과 각종 치료들을 받아가며 6년을 견디셨다. 내가 세 아이를 낳고 다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까지 직접 보셨고 함께 기뻐해주셨다. 하지만 더 이상 엄마의 몸은 버틸 수 없었다.


만기가 된 전셋집에서 한번 더 연장해서 살기로 하고 보증금을 올려 재계약을 마친 뒤 두 달 만에 엄마가 떠나셨다. 엄마가 없다는 슬픔보다 이제 더 이상 엄마가 아프지 않다는 사실이 나를 더 크게 위로했다.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차분히 마음을 추슬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집에 혼자 있을 때마다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시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링거를 맞으며 우리 집 거실에 힘없이 누워계시던 뒷모습도 자꾸 아른거렸다. 애들 돌보느라 끼니도 못 챙기던 나를 위해 엄마가 맛있게 해 주시던 계란말이가 금방이라도 식탁 위에 올라올 것 같았고 딸들 옆에 앉아 재밌게 동화책을 읽고 인형놀이를 해주시는 모습들도 떠올랐다. 그 집에서 엄마와의 추억이 꽤나 많이 남아있었다.


한참을 괴로워하다가 신랑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이 집에서는 더 이상 못 살 것 같다고. 고맙게도 신랑은 즉시 내 마음을 이해해 줬고 우리는 주인에게 사정을 말하고 집을 내놨다. 당연히 복비도 우리가 부담할 것이며 최대한 빨리 세입자를 구해 떠나기로 했다.




# 다들 첫 집은 아주 우습게 산다니까요


주변 구축 아파트들을 둘러보니 여전히 꽤 많은 매물들이 있었고 가격 네고도 쉬워 보였다. 하지만 그들이 이 집을 팔고 이사 가려는 이유를 물어보니 90% 이상은 신축 아파트로 입주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구축에 살다가 팔고 신축 가기는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자동으로 우린 처음부터 신축을 사야겠다고, 신축에서 살다가 맞지 않거나 어렵게 되면 그땐 이 많은 구축 중에 골라서 사면된다고 결정했다. 사람이 참 놀라운 게 목표가 정해지니 잡생각 없이 단순해졌고 어떻게든 실행가능한 방안을 마련해 냈다.


전세 재계약을 한 지 5개월 만에 우리는 서울은 아니지만 서울과 가까운 곳 경기 신축 아파트에 프리미엄을 주고 입주하게 됐다. 그 5개월이라는 기간 안에 우리 다음으로 들어온 전세 세입자를 구했고 신축아파트 계약 후 새 아파트에 대한 자잘한 업무들도 마쳤다. 커튼, 방충망, 식기세척기 공사, 조명공사, 줄눈, 입주청소, 새집증후군, 중문, 각종 가구들, 이삿짐센터까지.


결정장애가 있다고 할 만큼 고심하는 스타일인데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어쩌면 돌아가신 엄마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아직도 그 전셋집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 거라고 본다. 엄마 덕분에 강제 이사를 하게 됐고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신축아파트를 살아보게 됐다. 엄마의 선물이라고 여길 만큼 나에겐 집을 사야 하는 강력한 계기였다.




옛날에 둘째를 키우며 모유수유 마사지를 받으러 갔는데 마사지샵 원장님이 마사지를 하며 집과 관련해 서로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던 적이 있다. 당시 집 때문에 고민하는 내 얘기를 들으시더니 그 원장님이 빙긋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도 지금 사는 첫 집을 아주 생각지도 못하게 샀어요. 다른 집도 많이 보고 여기저기 사려고 하는데도 잘 안 됐었는데 여기는 진짜 어떻게 이렇게 사게 됐는지 참 신기하고 재밌어. 집도 진짜 인연이 있나 봐. 근데 나 말고도 다들 첫 집은 아주 우습게 산다니까요. 고객님도 나중에 집 사면 무슨 말인지 알 거예요." 


문득 그 사장님의 말이 떠올랐다. 가장 갑작스럽고 슬픈 이사였지만 어찌 보면 그렇게 힘든 길을 돌고 돌아 참 우습게 내 집 마련을 하게 됐다. 엄마가 돌아가셔서 내 집 마련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생각 많고 결정 못하는 딸을 잘 아는 엄마의 마지막 선물처럼 집을 사게 됐지만 아마 그간 겪었던 여러 가지 부동산 관련 좌충우돌 경험들이 없었다면 매매를 단번에 결정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이래서 아무것도 버릴 것 없이 인생의 모든 일들이 앞으로의 값진 재료들로 쓰이나 보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 6년 만에야 비로소 내 집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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