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화면에 찍힌 집주인 번호를 보자마자 마음이 불안했다. 전세 계약 종료 시점이 다가와서 한번 연락을 해야겠다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먼저 연락이 오니 심경이 복잡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받아보니 역시나 전세 연장 여부에 대해 묻는 전화였다. 우리는 여기서 더 살고 싶다고 했더니집주인은 담담히 대답했다.
"그럼 시세대로 5천은 더 올려야 할 것 같아요."
네?? 5천이요??? 2년에 5천만 원. 24개월에 5천만 원이면 매달 200만 원은 넘게 모아야 가능한 금액이다. 300만 원 받는 직장인이라면 월급의 2/3를 꼬박 저축해야 만들 수 있는 돈이었다.
너무 바보같이 전세금을 그렇게까지 올릴 거라고 생각도 못했고, 당시 주변 전세 시세조차도 찾아보지 않던 개념 없이 무지한 시절이었다. 그렇게 무방비 상태에서 당장 5천만 원이 있어야 한다니 당황스러웠다.
5천은 너무 갑작스럽다며 우선 신랑과 얘기하고 연락드리겠다고 하고 끊었다. 시세대로 전세보증금을 올리겠다는 집주인의 말에 그야말로 망치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처음 이 집에 전세로 들어올 때 부동산 사장님은 말했다.
"여기는 서울처럼 그렇게 전세 많이 안 올려. 일단 살아보고 나중에 매매할지 결정해 보셔도 돼."
왜 그 부동산 사장님의 말을 순진하게 그대로 믿었을까. 왜 우리 집 전세만 안 오를 거라고 생각했을까.
물론 여기가 시세대로 5천 올랐다면 서울은 1억 가까이 올랐을 거다. 서울만큼 안 올린다는 거지 그대로 인상 없이 동결된다는 얘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가 입주 당시 전세를 가장 저렴하게 들어온 것도 맞다.
실제 우리 아파트 전세 시세를 보니 같은 평수는 대략 2억 5천 내외가 평균값이었다. 이사 갈 생각이 아니라면 집주인과의 협상이 필요했다.
# 선택권 없는 전세 재계약
신랑과 고민 끝에 우선 집주인에게 다시 네고 의사를 문의했다. 현재 갑자기 5천만 원을 마련하기에는 우리 입장에서 무리라 1~2천만 원 정도로 맞춰달라고 요청했다. 집주인은 가족과 상의해본다고 한 후 다시 연락이 왔는데 서로의 중간값인 3천만 원에 재계약을 하자고 답했다.
사실 우리에겐 거의 선택권이 없었다. 2억 2천 이하로 다른 매물을 구해야 하는데 아이들 어린이집이 다 정해져 있었고 그 가격에 맞는 다른 아파트를 찾기도 어려웠으며 복비와 이사비용을 지불하면서 거주지를 옮기는 것에 대한 리스크가 더 크다고 느꼈다.
결국 2억 3천만 원으로 전세 재계약을 했다. 아마도 현금으로 하기보단 전세자금대출을 추가로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 오르는 전세금만 맞춰주다 끝날라
올린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세입자인 우리는 알아서 대출을 받아 돈을 준비해 집주인에게 3천만 원을 지불했다. 집주인의 입장에서는 대출 없이 증액된 전세금만큼의 레버리지를 활용해 자금을 운용할 수 있다.
물론 집주인이 보증금을 공짜로 받은 게 아니다. 우리는 전세 계약 후 2년 동안 집주인이 제공한 아파트에서 생활할 자격을 얻었다. 그 후 더 살고 싶다고 여겨 추가금을 지불하고 재계약을 한 것이다.
재계약을 하며 전세로 계속 살 것인가 매매를 할 것인가에 대해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전세도 대출을 받고 매매도 대출을 할 텐데 2년간 3천만 원 오르는 전세금 기준으로 그것보다 집값이 더 오른다면 그냥 집을 사는 게 더 낫겠다고.
당장은 내 집마련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시간을 버는 것 같았던 전세였는데 과연 그만큼 우리의 수입이 전세금 오르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을 확률이 높아 보였다.
올라가는 보증금만 맞춰주다가는 강제 무주택자의 길을 걷게 될 것 같아 눈앞이 막막했다. 그렇다고 확 방향을 틀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여러 생각에 잠겨 재계약을 무사히 마치고 그래 2년만 더 살고 반드시 내 집마련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