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퍼플레이첼 Nov 04. 2024

월 300 직장인에게 대출 4억이란

다자녀 특공 80점대를 포기한 이유

# 서울 신축 아파트 25평을 5억대에

이사 갔던 아파트 전셋집에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예상치 못했던 서프라이즈 복덩이 셋째까지 품으며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어느새 2년이 지나 전세 만기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집주인과 전세 연장 여부를 얘기하기 전에 앞으로의 계획을 어떻게 세울지 고민했다. 부동산 카페에 가입하고 틈틈이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읽으며 여러 정보들을 얻었다. 이게 정말 되는 건가, 이런 세상이 있구나, 난 왜 몰랐을까, 이제야 이걸 알다니 하는 아쉬운 마음과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뒤섞였다.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이 떴다. 마곡 엠밸리 9단지 모집 공고. 5호선과 9호선을 끼고 있고 평지인 데다가 주변에 관공서와 대기업들이 많이 들어올 예정이라고 했다.


강서구 화곡동에 살던 시절 발산역 근처도 자주 지나다녔다. 발산역 바로 옆 마곡 쪽은 버스를 타고 오갈 때 기억으론 허허벌판이었던 것 같은데 거기에 새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거다. 공고문을 읽어 내려가며 여기가 우리 집이 될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에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 매달 월급 1/3을 대출금 갚기로?

2020년 입주자 모집 공고 당시 마곡엠밸리 9단지 분양가는 25평이 5억대, 34평이 6억대였다. 생애최초대출이면 80%까지 나오니 가장 저렴한 25평은 대략 1억만 있으면 4억 대출을 받아 5억대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정말 엄청난 기회의 동아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2024년 현재 25평의 매매 호가는 12억 내외이기 때문에 적어도 6억 이상의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때 당시 신랑 월급은 월 300에 아동수당 2명을 받아 총수입은 320만 원이었다. 전세대출 원리금 상환을 저축이라 생각하고 이자와 함께 열심히 갚아나가고 있었지만, 당시 가계부 상황을 적어둔 것들을 보면 정말 은혜로 살았다고 말할 정도로 맞는 수입과 지출이었다. 


단순 계산으로 4억 대출에 40년, 2% 이율(신혼부부, 다자녀 등등 우대금리 예상적용 시)로 계산하니 월 121만 원대가 나왔다. 대략 월급의 1/3을 집값 갚는데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수치상으로 써두고 보니 덜컥 겁이 났다.


아이가 1~2명도 아니고 3명인데 앞으로 더 많은 비용들이 들어갈 일만 남았을 텐데 이래도 되는 걸까. 정말 이렇게 다들 집을 사는 건지 대 혼란의 카오스였다. (체증식 상환법이라면 120만 원 대보다 초기 부담이 확 줄었을 텐데 그런 자세한 정보까지는 몰랐었나 보다.)


그리고 10년 전매제한도 있어서 25평에서 10년간 5인 가족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초기 몇 년 실거주를 하다가 전세를 줘도 됐을 텐데 그땐 그렇게까지 깊이 있게 파고들어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기사들을 찾아보니 심지어 23년에는 부동산 대책 변화로 10년 전매제한은 3년으로 줄어들기까지 했다. 20년에 입주해서 3년만 살다가 매도했어도 꽤 쏠쏠한 수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애들이 치킨 먹고 싶을 때 다 사줄 수 없을 거야

일단 내가 모은 정보들을 정리해 신랑 앞에서 브리핑했다. 우리가 마곡엠밸리 9단지에 가면 얻는 장점, 겪게 될 단점, 현실적인 프로세스 등등을 설명했다. 인생에 1번만 쓸 수 있다는 무주택 다자녀 특공 자격이 됐고 청약 가점을 계산해 보니 85점 정도라 당첨 가능성도 매우 높았다. (실제 당첨컷은 80점이었다.) 


모든 정보들을 종합해 볼 때 우리 부부의 머리로는 지금 들어가야 하는 너무나 좋은 운명적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실질적인 마음이 너무나 불안했다. 신랑도 나도 누구 하나 무조건 무리해서라도 가자고 강하게 주장하기 쉽지 않을 만큼 우리가 그런 대출을 감당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섰다.


신랑의 연봉은 정해져 있었고 매년 회사에서 정해준 대로 오르기 때문에 수입적인 면에서 드라마틱하게 오를 거란 큰 기대를 하기 어려웠다. 대표님을 따라 새로운 회사를 꾸린 지 얼마 안 된 스타트업 기업과 같은 상황이었기에 당장 높은 연봉 협상도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이 정도의 대출이라면 향후 10년간 아이들이 "엄마 치킨 먹고 싶어"라고 할 때 지금처럼 선뜻 기쁘게 사줄 수 없을 상황이 될 거라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당시엔 큰돈이 들어갈 일 없는 2,4,6살의 어린 나이었지만 향후 아이들이 학원이라도 다니고 싶어 할 필요한 교육비를 포함해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 7억 시세 차익의 미래 vs 살기 팍팍한 영끌의 현실

결국 계속되는 고심 끝에 안타깝지만 청약 포기를 선택했다. 현재 전셋집에서 한번 더 거주하면서 돈을 모아보자, 다음 기회를 더 노려보자 얘기했다. 사실 월급을 모으면서 집값이 오르는 속도를 따라잡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너무나 좋은 기회지만 우리에게 무리한 도전이었다. 그때는 그럴만한 깜냥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기회도 있다는 걸 알았으니 더 잘 준비해서 다음 기회에 도전하자고 했다. 당첨 확률이 높은 거지 꼭 당첨이 될 거란 보장도 없다고 위로하며 이번 기회는 우리 것이 아니라고 여겼다.


4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결정을 돌이켜보면 매우 안타깝다. 좀 더 욕심부렸으면, 좀 더 용기 냈으면, 좀 더 도전했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왜냐면 5억이던 아파트가 지금 12억이 됐으니 단순 계산으로 4년간 무려 7억을 벌 수 있을 기회였다. 


하지만 한 직장에 계속 다니며 대출금을 감당해 내야 했을 상황을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니 그 삶 또한 만만치 않았겠다 싶다. 숨통 트일 새도 없이 매달 원리금의 압박을 받으며 살기 팍팍한 시간들을 보냈을 수도 있다. 종잣돈이 되는 시드머니 자체가 너무 작아서 아무리 대출을 끼고 집을 산다고 해도 매달 내야 하는 대출금이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매일 아이들에게 짜증 내고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며 힘들지 않았을까. 영끌의 기준이 다 다르겠지만 타이트한 수입 내에서 원리금에 허덕이는 영끌러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걸 생각하니 당시 상황으로는 충분히 포기했을만했다.


지금은 개인 사업을 시작하며 부동산과 대출을 대하는 마인드가 완전히 달라졌지만 그때 당시엔 성실히 회사에 다니며 월급을 받는 평범한 직장인이었기에 그 틀을 쉽게 깰 수 없었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지내던 어느 날 드디어 집주인에게 전화가 왔다. 

이전 11화 신도시 아파트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