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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랭릭Langlic Sep 15. 2023

책 읽는 팀장이 알려주는 '망한 이력서의 정석'

'어쩌다 팀장'이 된 당신에게 들려주는 오피스릴러 - 4편

젊은이여, 자존심은 접어두고, 젊은이여, 스스로 박차고 일어나

- Village People, <YMCA>

오래되었지만 흥겹고 기운찬 노래라 노동요로 좋습니다.


원래 4편으로 야근에 대한 글을 먼저 쓰고 있었는데, 말이 씨가 된다고 연속으로 초과근무를 하게 되면서 심신이 지쳐서 못 썼습니다. 글 발행이 느린 건 보통 그 때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을 많이 하는 건 건강과의 스파링일 뿐이지 자랑은 못 됩니다. 일은 열심히 말고 잘하는 게 중요하기도 하고요. 대신 요새 사원급 팀원 면접을 보다가 이 글이 쓰고 싶었습니다. 23~40세 분들의 수많은 이력서를 보는데 가지각색의 개성에 눈이 힘들었어요. 어릴 적부터 지독한 독서량으로 교열과 작문에 강한 편이어서 엉망진창인 반 친구 자소서를 대신 고쳐주던 기억도 나더랍니다. 고쳐줘서 합격했지만 고맙다는 말조차 없을 때부터 사회생활의 진수를 깨닫기 시작하고... 아무튼 최소한 '일단 면접관이 읽어보는 이력서', 나아가 '면접을 고려하는 이력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력서를 수천 개 보고 채용 경험이 수회 되는 면접관 입장에서 첫눈에 걸러지지 않을 만한 기본적인 요소들만 소개할까 합니다. 열심히 썼는데 3초 보고 닫기 버튼 누르는 대상이 되면 안타깝잖아요. 채용난 시기이기도 하고, 면접관 입장에서도 수많은 이력서를 검토하다 보면 1차적으로 빠르게 훑어보면서 꼼꼼히 볼 이력서를 골라내게 됩니다. 더불어, 면접관을 처음 맡으셔야 하는 분들도 이런 이력서를 고를 경우 함께 근무하기 곤란한 분이 걸릴 '확률'이 높다는 점을 어느 정도 참고하실 수 있을 듯합니다.


1. 화보 안됩니다.

제가 근무하는 업계가 콘텐츠 쪽이라 더 그렇겠지만, 의외로 기본 증명사진을 사용하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안전한 선택은 무조건 [기본 흰색/회색/연푸른색 바탕에 정면을 보고 단정한 셔츠를 입은] 사진입니다. 외웁시다. 그래야 일견 신뢰감이 듭니다. 잘생기고 예쁜 것보다 호감 가고 깔끔한 것이 중요합니다. 받은 이력서상에 다양한 분들이 계셨는데, 측면을 보고 계신 분, 몸은 옆을 보고 얼굴만 정면인 분, 캐주얼한 옷을 입고 귀여운 포즈를 취하신 분, 화보처럼 화사한 옷에 흩날리는 긴 머리를 선보이신 분, 화질 깨져서 유튜브 240p처럼 보이는 분, 사진관 말고 외출해서 찍은 사진을 잘라 넣으신 분, 한쪽 팔을 팔짱 낀 청바지 사진 크롭하신 분, 본인 유아기 사진 보여주시는 분 등을 보았습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안 넣는 게 낫습니다. 예뻐 보이는 프로필 사진이나 자신의 개성 있는 사진은 인스타그램에 올리거나 연예기획사에 내면 됩니다. 아니, 연예기획사도 연예인 프로필 받을 때 제외하면 동일합니다. 미모만 보고 채용하면 모델 직무가 아닌 이상 그 상사가 이상한 상사입니다. 10만 원 주고 찍은 화보로 탈락하는 것보다는 5만 원짜리 증명사진으로 합격하는 것이 이익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일하는 곳은 가죽 바지를 입든 머리를 빨간색으로 하든 규정상 무방하고, 저도 오늘 7부 청바지에 과일 양말 신고 출근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사진이 너무 기본과 어긋나면, 이력서를 열었을 때 부정적인 인식으로 시작하여 내용과 경력이 마음에 들더라도 면접 명단에 올리는 것을 망설이게 됩니다.


2. 튜닝도 안됩니다.

1번과 비슷한 이야기인데, 이력서 양식은 기본값이어야 합니다. 애매하면 인터넷에 있는 기본 양식이나 채용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양식을 사용하면 됩니다. 영문 이력서일 경우 표준 레쥬메 양식도 있고요. 이력서 파일을 열고 면접관이 놀라는 딱 3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1) 컬러감: 이력서에 굳이 색깔을 넣는 분들이 있습니다. 핑크색 글자 배경, 붉은색 상단, 황토색이나 하늘색 등 색깔 있는 배경 다 봤습니다. 기본 흰 바탕이 좋습니다. 기본 양식은 밋밋한 것이 아닌 본인의 경력과 실력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무채색 배경일뿐입니다. 직무상 영상이나 작품을 보여줘야 하는 분들은 포트폴리오를 별첨하고 포트폴리오에 개성을 자랑합시다. 단, 포트폴리오도 감각적인 것이 좋지 무조건 화려하게 꾸미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2) 맞춤법: 제가 책벌레라 과민하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한국어능력시험 1급 수준의 글이 아니어도 좋으니 기본적인 맞춤법은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괜찮다 싶다가 자기소개에 치명적인 오타가 있으면 갑자기 지원자의 역량을 의심하게 됩니다. 맞춤법 검사기라도 추천합니다. 또한, 회사 이름은 꼭 두 번 확인합시다. 가끔 A 회사에 지원하면서 B회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탈락 확률이 단숨에 높아집니다.

 3) 성실함: 국문 이력서의 경우 자기소개 정도는 써 줍시다. 경력도 한 줄로 단순하게 작성해 놓거나 자기소개도 없는(혹은 항목당 4-5줄인 자기소개를 포함한) 이력서일 경우 무성의하게 보입니다. 면접관은 지원자의 인생을 모르기 때문에 본인의 진심이 포함된 스토리가 있으면 도움이 됩니다. 또한, 개인 포트폴리오, SNS주소나 인스타그램 계정 는 분들은 링크 연결과 공개 여부를 꼭 확인합시다. 20%는 링크 연결 오류, 50%는 비공개 계정이라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기에 탈락합니다.


3. 과몰입 정말 안됩니다.

이건 요새 몇몇 젊은 분들의 이력서에 나타나는 특징인데, 1) 자기 자신의 포지션을 부풀려 표현하거나 2) 자신의 감수성 내지 자신만의 세계를 과하게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해서 묘사한 이력서와 본인의 실력을 과대평가한 이력서 등이 무더기로 들어와 힘들었습니다. '메타인지'라는 단어가 최근 유행인데, 단순하게 말하면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기반으로 한 인지입니다. 학술적으로 정확한 표현은 아니나 이력서를 쓸 때 고려하면 좋은 부분이라 언급하였습니다. 만약 너무 젊은 분이면 아무리 경력이 있어도 베테랑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연차는 있으나 애매한 경력을 부풀려 쓰더라도 그 깊이는 면접관의 눈에 보입니다. 자기애와 개성 다 좋지만 객관적으로 자신을 판단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예시로 단순한 보조 업무를 하거나, 너무 저연차이거나, 리딩하는 업무가 없는 막내로서 근무하였는데 본인을 'PM', 'PD', '팀장', '전문가' 등으로 지칭하면 안 됩니다. 또한 본인이 잘한다고 자신하는 부분이 비대한 자아에 가려진 오류일 수 있으니 타인의 시선으로 검토하는 것도 좋습니다. 업계를 전환하거나 직무에 대해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경우, 솔직하게 잘하는 부분과 보완할 수 있는 부분, 앞으로의 구체적인 계획을 이야기하면 됩니다. 분명 누구든 지원하는 직무에 대한 강점 한 가지는 있을 테니 그걸로 승부를 보고 단점은 포장이 아닌 보강을 하길 추천드립니다.


4. 마지막으로 산문 안됩니다.

여기서 산문은 구체성이 떨어지고 길기만 한 경력기술서 및 자기소개서를 뜻합니다. 경력을 기술할 때 본인이 수행한 업무와 프로젝트 내용, 기여한 정도를 정확하게 쓰는 것이 좋습니다. 부족한 경력은 치부가 아니며, 작더라도 괜찮으니 이뤄낸 성과를 구체적인 숫자로 서술하면 잘 보입니다. 또한 성격과 인성에 대한 서술은 단순히 '책임감 있다'거나 '성실하다'보다는 실제 예를 들면 좋습니다. 저는 저 자신에게 밥을 먹이고 꾸준히 덕질을 하고 있음으로써 저의 책임감과 성실성을 매주 입증하고 있지만 이력서엔 더 사무적인 예시를 씁니다. 가끔 반대로 대하서시처럼 나의 삶에 대해 일기 쓰는 분들이 있는데 중간이 딱 좋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현실적이고 깔끔한 서술이면 좋겠습니다.



이 정도만 되어도 읽힐 확률이 높은 이력서가 됩니다. 충분한 경력과 실력이 있는데도 세상이 어렵고 경쟁이 치열해 떨어지는 사례가 부지기수지만, 세상을 탓하기보다는 진인사 대천명의 정신으로 할 수 있는 바는 다하고 운을 기다리는 게 맞습니다. 경험상 기본을 지키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도 다음 이직을 검토하기 전 이력서 업데이트를 해야 해서 굉장히 귀찮아하고 있긴 하지만요. 평소엔 뭘 하고 사는지 저번주 먹은 밥도 기억이 안 납니다. 그럼에도 팀장은 팀장의 일을 하라고 월급 받으니, 이 글 쓰는 동안 들어온 이력서 6개를 보러 가야 합니다. 또 위와 같은 이유로 놀라는 경우가 없길 바라며 마저 이력서 읽으러 갑니다. 아니, 한 번은 놀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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