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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온 Dec 28. 2023

연말

연말이 되면 꼭 올해를 돌아보게 된다. 엉망이었을까? 아님 그래도 잘 살아왔던 걸까? 어느 쪽이든 난 행복한 엉망으로 할래. 잘 살아왔다고 자부심 있게 말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너무 엉망이었다기에는 나의 시간들이 너무 아까우니까 행복하게 엉망이었다고 하자.


내년에 쓸 다이어리를 너무 일찍이 사놔서 언제 쓸 수 있을까 바라만 봤던 게 벌써 한 달 전 이야기다. 이제 그 다이어리를 펼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 우리, 다시 차곡차곡 살아갈 수 있을까? 내년엔 내가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거창한 목표 따위 세우지 않기로 했는데 단 한 가지 나와의 약속이 있다면, 그건 죽지 않기야.


너무나 많은 시도로 이젠 어디까지 가면 진짜 죽을 수 있는지 알아버렸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보니 그 길이 너무 쉬워 보이는 건 왜일까? 아무래도 너무 잘 알기 때문이겠지. 잊어버릴 수는 없어도 그 길가의 문을 세워두고 문을 꼭 잠가둬야겠어. 열쇠는 잃어버린 걸로 하자.


연말이라고 또 연초라고 너무 우울해지지 않기로 하자.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는 건 다 똑같이 겪는 일이고 그 시간을 어떻게 생각힐지는 나한테 달려 있으니까. 차곡차곡 쌓아둔 다이어리처럼 한 장씩 채워가다 보면 또 다른 연말이 찾아올 거야. 엉망이어도 괜찮아. 결국 우린 행복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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