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우당탕탕 강릉여행

(2) 다시 오지 않을 오늘

by 하온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풍경은 바다였다. 침대에서 일어나 보면 베란다 창문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강릉에서의 두 번째 날은 날씨가 매우 좋았다. 오늘의 목적지는 안목해변. 무엇을 할지, 무엇을 먹을지 정하지 않고 책 그리고 헤드셋을 들고 무작정 택시에 올랐다. 택시 창문으로 여름 햇빛의 조각이 있었다. 바다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그 조각들은 내 무릎에 머물러 있었다.


본격적인 해변을 들어서기 전에 있는 도로에는 작은 선물 가게 하나가 있다. 여러 가지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팔고 바다와 관련된 그리고 강릉과 관련된 물건들을 선물용으로 파는 곳이었다. 함께 오고 싶었던 이들이 생각났다. 바로 선물 가게에 들어가 함께 오고 싶었던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생각하며 신중하게 선물을 골랐다. 머리가 길었던 친한 동생에게는 그 당시 유행이 시작되었던 곱창머리끈과 집게 핀을, 작은언니에게는 집에서 쓸 수 있는 귀여운 감자가 그려진 컵을 골랐다. 그 외에도 내 곁이 되어주는 사람들의 선물을 하나씩 골랐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곁이 되는 일은 조금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좀 더 들여다봐야 하고, 연락이 되지 않을 땐 걱정하고, 계속되는 울증과 조증의 반복 속에서 많은 감정을 같이 소모했을 것이다. 그런 나의 곁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생각날 때마다 이렇게 작은 선물과 내가 안전히 잘 있다는 무소식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잠잠하게 나의 곁이 되어주고 있다.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며 조금은 미안한 마음과 다시 돌아가 이 선물을 전달할 때의 설렘을 안고 안목해변으로 향했다. 시원했다. 마음속으로 그 말을 여러 번 되뇌었다. 뻥 뚫린 민트색 바다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시원했다. 그렇게 한참을 바다 가까이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다. 친구들과 함께 보트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까지 시원하게 달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연인끼리 조용히 요트를 타고 바다를 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 바다에게서 많은 것들을 얻어가고 있었다. 즐거움이던지 짜릿함이라든지 쉼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나는 무엇을 얻고 있었던 걸까? 그렇게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바다에 앉아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대답. 대답이었을 것이다. 바다는 늘 파도로 나에게 대답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바다는 태어나서 한 번도 침묵한 적이 없다. 늘 같은 자리에서 자신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파도를 치며 속삭였다. 사람마다 찾아오는 이유는 다양했기에 각자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자기 삶으로 돌아왔겠지. 바다는 한 번도 우리에게 침묵한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그곳에 앉아있을 때도, 내가 그곳에 없을 때도.


한 시간을 넘게 바다에 앉아 눈을 감고 파도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되뇌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흔하디 흔한 위로 한마디. 난 이 말을 항상 주문처럼 외우고 중얼거렸으며 토해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파도와 함께 외운 주문은 그런 슬픈 주문이 아니었다. 조금은 따뜻하고 마음의 작은 먼지를 쓸어내려 주는 주문 같았다. 마음이 편안할 때, 처음으로 이 주문을 말해보았다. 괜찮다. 그것이 무엇이든, 괜찮다. 여름 바람이 제법 따뜻하면서도 시원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매년 여름 다시 이곳을 찾아오자 무슨 일이 생겨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자'


그렇게 정말 매년 강릉의 안목해변을 찾아갔다. 바다가 들려주는 대답이 듣고 싶어서 그리고 그 대답이 나를 살리고 살아가게끔 만들어줘서. 죽을 것 같고 내가 나조차 힘들어할 때 바다를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남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갈 이유 하나를 붙잡고 살아간다. 바다는 한 번도 침묵한 적이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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