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호주 워킹홀리데이 찬반이나 관련 정보를 내포하고 있지 않습니다.**
**경험에 의해 작성되었으며, 워홀을 다녀오고서 나의 성격변화에 대해 짤막하게 쓴 글입니다**
12월의 월요일.
매년 이맘 때가 되면 필자는 한 해를 돌아보며 작은 기억의 조각들을 한데 모아 다시금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한다. 적어 두었던 독서기록에 눈길을 주고, 한 편의 영화 감상지를 본다거나, 아무렇게나 적어둔 일기장을 펼쳐지면서 말이다.
오늘 작성해보고자 하는 글은, 나의 성벽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목만 들으면 그것이 무슨 뜻인가, 다시 의아할 수 있겠다. 진부한 이야기가 어떻게 하면 가슴에 와닿을지 고심하며 나의 워킹홀리데이를 엮어보기로 하였다.실제로 필자는 비판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저, 과거를 떠올리며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보고자 하니 부디 흥미가 없어도 차근히 읽어봐 주기를 바란다.
나는 꼬박 22살 만으로는 20살이던 해에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워홀을 생각할 무렵 누구나 아는 대기업을 때려치고 중국으로 유학을 준비할 때 였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이 호주로 빠진 것은 나의 성격이 한몫했을 것이다. 그렇다. 필자는 귀가 얇고 새로운 모험, 그리고 신비한 무언가를 꿈꿨다. 더 높은 이상세계를 원했고,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남들과는 특별한 나만의 경험이 그토록 갖고 싶었다. 이러한 나의 무계획성에 힘을 보태준 호주의 워킹홀리데이. 그래, 나는 그곳에서 아주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처음 호주를 가기 전, 내가 얼마나 영어를 못했는지. 지금 돌아보면 그 때의 나 였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에 스스로 감탄을 금치 못한다. 정말 잘했기 때문이냐고? 결코 그렇지 않았다. 처음 내가 갔던 도시 'Brisbane. 단지 내가 친했던 중국인 친구가 유학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지역을 선택했다. 이력서는 고사하고 기초적인 영어 조차도 못할 정도였으니, 농장에서 근무를 하기 위해 작성해야하는 양식서 마저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었다. (이 정도면 필자의 준비성은 떨어지는 반면, 자신감은 얼마나 높았는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몇 가지의 의문이 들 수도 있다.
1. 필자는 과연, 영어를 어떻게 공부한 것인가?
2. 그래서 결국, 농장에는 갔단 말인가?
여기서 나는 2번의 답을 먼저 하도록 하겠다. 나의 절망 부터 말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농장에는 가지 못했다. 기초적인 영어조차 되지 않는 나를 쓰려는 사람은 없고, 안타깝게도 키도 작은데다 그 당시 내 나이 22살이 아니었던가. 더욱이 어처구니가 없던 것은 버스 시간이었다. 내 기억에 4시 혹은 5시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돌아가는 버스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외딴 섬나라에 영어는 고사하고 운전면허증 조차 없었기에 어딘가에서 차를 빌리는 것도 불가능했다. 히치하이킹(?) 을 통해 겨우겨우 근처 버스터미널에 ㅗ착한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내 인생의 첫 거절 그리고 히치하이킹 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는 결코 내 자신이 부끄럽거나 한심하다고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그랬냐고?
'나는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나의 성벽쌓기.
그래, 나는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꿈꿨고 내가 호주에 도착하여 길을 잃은 행동들도, 대화가 통하지 않아 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면박을 받은 일도, 바닷가에서 수영 하다가 물에 빠진 경험들도, 내 인생의 첫 스카이 다이빙 도전기도,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손에서 피가 줄줄 흘러도 괜찮다고 씩씩하게 말하는 일들도. 나에게는 모든 것들이 신성했었다. 자연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뭉글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 속에서 내게 손 내밀어준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는 계속해서 나의 성벽을 쌓아나갔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 그리고 그 다음의 목적지? 그것은 다음 챕터에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생각보다 필자는 버라이어티한 생을 살았기에 이야기 보따리는 항시 준비되어 있다.) 그렇게 나의 성벽을 쌓아나가며 나 또한, 여느 20대 초반 청년들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아름다움을 꿈꿨던 때가 있었다.
내가 언어의 괜찮은 재능이 있다는 것과, 나 라는 인간은 정말 이기적이며 한편으로는 말랑하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는데 이것이 1번에 대한 답이 되겠다. 사실 나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존재와 움직임에 대해 전반적으로 관심을 가진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관련하여 그곳에서 대학을 나오고 싶었지만 누구나 갈하영주권에는 큰 관심이 없었으며 집에서 유학 학비를 도와줄 형편 조차 되지 못했기에 그 생각은 고이 접어 넣었다. 대신, 호주에 살며 절대적으로 지킨 습관들이 있다.
1. 무조건 영어 라디오를 들으며 기상한다.
2. 매일 1일 1팝송 해석을 한다.
3. 50개의 단어를 외우고 10개의 문장을 익혀 그 중 3개의 문장을 나가서 써먹는다.
말 그대로, 영어로 하루를 시작해서 영어로 끝이 났던 것이다. 당시 나는 영어 보다는 여전히 중국어에 관심이 많았기에 중드를 보면서도 영어에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은 외국에 혼자 버려져도 어떻게든 살것이라는 자신감 하나는 생긴 셈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긴 또 다른 나의 성벽 쌓기. 사람들의 부재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비자만료'를 앞두고 떠나거나, 다른 지역으로 가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떠나는 사람보다, 남겨지는 사람이 괴롭다.'
나는 이 말에 대해 처음으로 공감했다. 나도 언젠가 떠날 사람이었지만, 누군가의 부재. 나의 의지와 노력과는 상관없이 홀연히 흩어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외롭다는 감정을 마주했다. 나보다 성숙한 다른 ㅓ른들의 관심은 그저 '돈'과 '영주권' 뿐이었고 누군가와의 진심어린 교제나 추억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듯 하였다. 문학책을 가까이 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부조리와 소통 단절, 이기주의, 편견과 동정심. 내가 원하는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었지만 다소 자기 파괴적인 면모를 보이는 알 수 없는 작가들의 세상 (처음 책을 접했을 때는 그러했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나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나라에서...
내가 호주를 떠난데에는 역시나 같은 이유였다. 물론 그곳에 계속 있을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외로움이 제였다. 그래, 지금와서 고백하지만 지독히도 외로웠고, 한국에 돌아와서 조금 더 의미있는 무언가를 해보고자 다. 그런데 말이다. 나에게는 것이 화근이었다. 외국에서 단 6개월이라도살다 온 사람이라면 이해를 할 수도있겠다. 6개월 사이 체중도 왔다갔다 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취미를 찾고 도전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내가 외국 다녀온 것에 대해 너무 오바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영어를 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한국에서의 경력이 없고 토익 등의 내세울 자격증이 없으니 취업 장벽에는 한계가 있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나는 그 때부터, 더 높게 더 많은 것들을 이루기 위해 독하게 살기로 작정했다. 몇 푼 안되는 돈을 받으면서도 공부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늘 잘하기 위해 약속이나 모임에도 빼놓지 않고 참석했다. 뒤떨어지는 기분이 싫어서였을 것이다. 나는 만들어온 나만의 성벽을 (여기서 말하는 성벽은, 나의 인생이다) 자랑하고자 했다. 늘 SNS 에 좋은 것들을 올리고, 어떻게든 작은 것들 하나하나 끄집어 내어 사람들에게 나의 당차고 즐거운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그러기를 멈춘 것은 나의 성벽이 무너진 작년부터였다. 지독하게도 길고 외로웠던 작년의 겨울.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와의 이별, 기회의 부재, 사랑도 사람도 무서워졌던 바로 그 시기였다. 겨울이라서 그렇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누구나 인생의 굴곡이 있고, 나에게는 내가 마주할 수 있던 가장 저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지혜를 찾기 위해 더 많은 책을 가까이 했고, 마음의 평안을 위해 SNS를 삭제했다. 철저하게 혼자가 놓여져 나를 마주한 다음에야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세상을 살아가는 이방인이고, 각자가 만드는 멋드러진 성을 자랑하고 싶어한다는 것.
그것은 인간의 욕구요, 본능이다. 나 또한 그러하다. 다른 사람하고 비교하며 더 멋진 성을
더 깨끗하고 더 크고 화려한 성을 쌓고 싶어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뾰족해 지는 그런 성.
다채로운 성을 가진 둥글고 커다란 정원이 뛰놀 수 있는 성 말이다.
나는 그 속에 사는 여왕이 되고 싶었고, 내 성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기꺼이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상처와 실패의 연속이었던 작년의 나는 그 모든 성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폐쇄적인 성향을 보여왔다. 아마 외로워서 그랬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성에 비해서 작고 초라한 데다가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성 문을 개방해두면 너무 많은 이들이 침입할까봐 두려워서 일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말해,만만해 보이지 않도록 더 높은 성벽을 쌓고 문 앞에는 칩입자들을 아프게 할 무기들을 진열해놓고 나는 커튼 뒤로 숨었다. 지금 우리의 세상은 철저한 이기주의를 가르치고 그렇게 나의 성벽을 만드는 것에 대해 관대하다.
호주를 다녀온 것에 대해 후회를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러한 경험들이 없었더라면 나라는 사람은 지금쯤 어디에 놓여있을지를 생각하며 나는 조금씩 나의 성벽을 다시 가꿔보고자 한다.
여러분들은 어떠한가?
'그대들이 원하는 성벽이 과연 이것이 맞는가?'
'과거를 돌아보며 그대가 진정 바랐던 인생 혹은 지금의 모습은 과연 올바른가?'
한번쯤은 생각해보며 따뜻한 연말 그리고 신년 계획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