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줄거리와 법률 쟁점
1. 영화 줄거리와 리뷰
가. 영화 <어톤먼트>는 제목이 ‘속죄’다. 제목부터 이 영화의 느낌을 알 수 있다. 사전적 의미는 죄를 저지르고 그 죄에 대하여 대가를 치르고 용서를 받는다는 의미인데, 지은 죄에 대하여 대가를 치렀다고 누가 인정하는 것일까.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이 의문은 해소되지 않는 것 같다. 제목이 주는 불편함 때문에 이 영화와 원작이 얼마나 유명하고 평이 좋은지 잘 알고 있지만 선뜻 영화를 보지 못하다가 이번 기회에 영화를 맘먹고 보았는데 반전을 모두 알아서인지 영화가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나. 영화 줄거리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시대를 배경으로 영국의 부유한 저택에서 시작한다. 부유한 집안의 딸 세실리아와 브라이오니 자매와 그 집 집사의 아들로 명문대 의대생 로비 세 사람이 주인공이다. 13살 브라이오니는 소설가를 꿈꾸는 소녀로,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성격이다. 언니 세실리아와 로비는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계급의 차이와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둘 사이에 생겨난 감정을 상대방에게 직접 표현을 못하고 에둘러 울분을 표출한다든가 더 퉁명스럽게 대하는 식으로 표현했다. 어느 뜨거운 여름 오후에 정원의 분수대 앞에서 마주친 세실리아와 로비는 여하간 사정으로 세실리아가 로비 앞에서 옷을 벗고 분수대로 뛰어들게 되면서 둘 사이의 이성적 감정은 고조된다. 마침 그 장면을 건물 위층 창가에서 브라이오니가 몰래 지켜보고 있었는데, 브라이오니는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이 장면을 해석했다.
다. 그날 오후 로비는 세실리아한테 자신의 감정을 넌지시 표현한 편지를 브라이오니한테 세실리아한테 전해주라고 부탁을 한다. 결과적으로 이 행동이 로비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시작이 된 셈이다. 로비는 제대로 쓴 편지가 아닌, 세실리아에 대한 감정을 담았지만 입밖에 내기보단 혼자 상상 속에 담고 싶은 음담패설이 적힌 편지를 브라이오니한테 잘못 건네주었다. 로비가 엉뚱한 편지를 봉투에 넣은 것도 큰 실수지만 그것을 상상력이 풍부해서 자기 세계에 빠져 사는 브라이오니한테 전달을 부탁한 것이 더 큰 실수였던 것이다. 브라이오니는 예상처럼 봉투를 뜯어 편지를 읽어보고 음담패설에 충격을 받고, 마침 자신의 집에 친척인 쌍둥이 형제들과 그 누나인 로라가 머물러 있었는데, 로라한테 그 편지 내용을 말한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이 집안에 손님 한 사람이 찾아오는데, 세실리아 자매의 오빠 리온의 친구 폴 마샬이 방문한다. 음담패설이 적힌 편지로 인하여 브라이오니는 충격을 받지만, 세실리아와 로비는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게 되고, 브라이오니의 오지랖 때문에 두 사람의 정사 장면을 브라이오니한테 들키고 마는데, 정사 장면을 목격한 브라이오니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고 음담패설을 읽고 혼자 만든 상상력에 오해를 더하게 된다.
라. 그날 저녁 집에 머물고 있던 쌍둥이 형제들이 사라진 사실을 알고 온 가족이 쌍둥이를 찾으러 나가는데, 브라이오니도 쌍둥이를 찾으려고 손전등을 들고 돌아다니다가 로라가 강간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강간범은 급하게 도망을 가버린다. 브라이오니는 그날 오후 자신이 목격했던 정원의 분수대 장면, 로비의 음담패설 편지, 로비와 세실리아의 정사 장면으로 인하여 상상력에 오해가 더해지고 어린 소녀의 치기 어린 질투심까지 보태어 로비를 강간범으로 확신하게 되고, 세실리아가 보관 중인 로비의 편지까지 찾아서 수사관에게 제출하며 로비가 범인이라고 진술해버린다. 결국 로비는 강간범으로 감옥에 가는데, 당시 시대 상황에서 감옥과 전쟁 중 하나를 선택받게 되자 전쟁터를 선택하고, 세실리아는 로비의 결백을 믿었기에 그 여름밤 사건 이후 가족과 절교하고 집을 나가 간호사로 일을 한다. 브라이오니도 그 후 캠브리지 진학을 포기하고 세실리아를 따라 간호사로 일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려고 노력한다. 어느 날 브라이오니는 세실리아의 하숙집에 들러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데 마침 세실리아의 집에 있던 로비와 마주치면서 두 사람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를 전하고, 로비의 요구대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런던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로비와 세실리아가 결국 사랑을 이루는 것으로 결말이 끝났다면 영화와 원작이 이렇게까지 평이 높지 않았을 것이다. 즉, 로비와 세실리아의 재회는 브라이오니가 만든 허구였다.
즉, 객관적 진실은 사뭇 달랐다.
2. 법률 쟁점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 비극의 시작은 대체 어디서부터 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브라이오니가 로비의 편지를 허락 없이 개봉해서 열어본 것이 비극의 시발점이다. 남의 편지를 허락 없이 개봉하는 것도 죄가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범죄에 해당한다. 물론 죄가 되기 위해서는 편지를 봉투에 넣고 봉투를 풀로 붙이는 등 봉함을 할 것이 요건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엽서에 쓴 편지는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읽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 이 범죄를 자세히 살펴보면 형법상 비밀침해죄에 해당하는 데, ‘봉함 기타 비밀장치한 사람의 편지, 문서 또는 도화를 개봉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규정 자체로 봉함 기타 비밀장치한 것만 보호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비밀장치를 한다는 것은 꼭 일기장이나 편지를 풀로 붙이거나 자물쇠를 채우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랍에 일기장이나 편지를 넣어두고 서랍을 잠그는 것도 비밀장치한 것으로 본다. 그래서 잠겨진 서랍을 열고 편지를 읽어도 본 죄에 해당한다.
그런데 영화 속에 정말 흔하게 나오는 장치가 남의 일기장과 편지를 읽는다는 설정이다. 의외로 현실에서는 남의 편지나 일기, 다이어리를 읽을 상황이 별로 발생하지 않고 설령 그런 상황에 처해져도 남의 것을 몰래 읽지 않는데 영화 속에서는 왜 그렇게들 남의 편지를 읽고 사달을 내는 것일까. 영화는 꼭 남의 편지를 읽고 사건이 터지거나 오해가 생기거나 그런 식으로 줄거리가 전개되더라는 것이다. 비밀침해죄는 판례를 찾아봐도 현실에서는 많이 발생하지 않는 범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판례가 많지 않은 이유는 사건화가 되지 않았다는 의미인데, 이 범죄가 친고죄이기 때문에 더더욱 사건화가 되지 않은 것이다. 피해자가 고소를 해야 사건이 될 텐데 편지나 일기장을 몰래 읽었다고 고소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브라이오니가 읽은 로비의 편지는 로비가 봉투에 넣어서 봉함을 했기 때문에 비밀침해죄 요건은 충족한다. 그러나 로비가 고소를 하지 않는 한 기소할 수는 없다.
비극의 시작이 편지 읽기였다면 비극의 절정은 로비가 강간범이라는 허위 진술을 한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