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1부 6화.
희주는 조수석. 나는 조수석 뒤자리에 앉았다.
우재 오빠는 백밀러를 조정해 가며 나의 상태를 체크했다.
"너, 빈 속에 마셔서 그래"
희주가 걱정하는 마음으로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응" 내가 순순히 인정했다.
동선에 따라 우재 오빠는 희주 집 앞에 먼저 차를 세웠다. 희주는 내리면서까지 우리 집 가는 경로를 몇 번이고 우재 오빠에게 설명했다.
"설이 잘 좀 데려다줘"
희주가 조수석 창문 너머 우재 오빠에게 다시 한번 신신당부를 했다.
"네" 오빠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창문을 열고 희주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시 차가 출발하고, 우재 오빠는 다시 백밀러로 나를 확인했다.
"오늘 공연 어땠어요?"
"아, 너무 좋았어요"
"다행이네요"
"다음에 희주랑 다시 가게로 놀러 와요. 우리 가게 주방장님 요리실력이 엄청난데. 오늘 못 보여줘서 아쉽네"
"네, 꼭 다시 갈게요"
"꼭이요"
"네"
우재 오빠와 띄엄띄엄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집 앞에 도착했다.
나는 데려다줘서 감사합니다.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우재 오빠가 따라 내리면서 "와, 여기가 설이 씨 집이에요? 좋다"
주택 골목가 사이 단독 주택 2층. 빨간 대문집. 내가 태어날 때부터 살던 집.
우재 오빠가 우리 집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제 설이 씨 집까지 아는 사이가 됐네요. 이름도 얼굴도 집도 아는 사이. 연락처는 희주에게 받을게요."
나는 "네"라고 대답하고, "말 편하게 놓으세요"라고 덧붙였다.
우재 오빠는 그럴까, 하며 미소 지었다.
"그럼, 조심해서 가세요"
"응, 다음에 또 보자"
나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 비밀 번호를 눌러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 안으로 들어와 대문을 등지고 서서 길게 숨을 내쉬었다. 고작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긴 여행을 하고 온 기분이었다.
작은 정원을 지나, 다시 한번 비번을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가니 현관 앞에 엄마가 뭉치를 안고 서 계셨다.
예상했던 모습이라 놀라진 않았다.
"술 마셨어?" 엄마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응" 내가 신발을 벗으며 대답했다.
"엄청 마셨는데"
엄마가 내 얼굴에 코를 들이대며 말했다.
"응"
"웬일이래? 좋은 일로 마신거지? 나쁜 일로는 그렇게 마시지 마"
"응"
"어서 씻어, 냄새 진동을 한다"
"응, 미안"
더 묻고 싶은 말들을 애써 삼키는 엄마가 귀여워 놀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원래가 곰 살 맞지 못한 성격이지만 나는 더 모르는 척 건조하게 대답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늘 그런 식이었다.
나는 그저 '필요할 것 같다'라고 생각만 했을 뿐인데 어느새 그것들을 내 책상 위로, 내 옷장 안으로, 욕실 안으로 세팅해두는 사람. 그러면서 나에게는 있는 그래도, 지금 그대로를 자라주길 바란다고 말하는 사람.
어린 학생들 상대로 하는 '영어 어학원' 개원을 준비하던 중에 엄마는 나를 임신하셨다.
덕분에 나는 태어나서 100일 후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엄마의 어학원에 다니게 되면서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부모로부터 사랑을 덜 받고 자랐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부모의 사랑과 동시에 조부모님들의 넘치는 사랑을 덤으로 받을 수 있었던 축복 같은 시간들이라 생각했다. 거기다 나와는 14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 어린 삼촌의 귀여움까지 독차지할 수 있었다.
삼촌은 어릴 적부터 천성이 다정한 사람이었다.
삼촌의 다정함이 좋아 삼촌을 따라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삼촌의 영향을 받았다. 삼촌을 따라 생명공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아빠를 비롯해 할아버지께서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른다.
한편 엄마는 유아기 시절의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지금까지 안고 계신다. 지금의 누구보다 건강하지만 청소년 시절 나는 잔병치레가 많은 아이였다. 엄마에겐 그 조차 약점이 되어 버려 나에겐 늘 아낌없이 퍼주기만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대신 부모로서의 엄격함은 아빠가 담당해 주셨으니 균형이 맞았다고 할 수 도 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바로 샤워실로 향했다.
머리를 말리고 핸드폰을 확인하니 희주에게 톡이 와 있었다.
우재 오빠에게 나 잘 들어갔다는 말은 들었다고.
우재 오빠가 내 연락처를 받아 갔다고.
[미안. 샤워하고 지금 나왔어] 희주에게 톡을 보냈다.
[오늘 우리 해빈 오빠 어땠어?]
나는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좋았어, 로는 한참이 부족해 나는 엄지 척 이모티콘을 두 개 연속으로 보냈다.
희주가 하트를 쏟아내는 이모티콘을 다시 보냈다.
이런 이모티콘을 모두 말로 설명하려면 얼마나 어색하고 재미없을까 생각하니 또 웃음이 났다.
침대 위 이불속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열고 도해빈을 검색했다.
그의 공연 영상들이 끝없이 나열되었다. 그가 나와는 너무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란 것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 그의 거리가 순간 이동하듯 순식간에 멀어져 버렸다.
설레던 나의 마음이 열없게 느껴졌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잠든 내 귓가에 그의 달콤한 목소리가 간지럽게 속삭였다.
"설이 씨, 괜찮아요?"
"... 아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