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1부 5화
아이스크림이 담긴 편의점 비닐봉지를 한 손에 걸고 다른 손으론 초코맛 아이스크림 바를 잡고, 우재오빠와 나는 나란히 술집으로 걸어갔다.
나는 손이 쥔 아이스크림을 까서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띵 하니 머리가 얼얼해져 왔다.
관자놀이에 손을 올려 인상을 쓰는 내 모습을 우재 오빠가 가만히 쳐다보다 웃어버린다.
"원래 그래요?"
"오지랖요?"
다시 오빠가 웃었다.
"아니, 아이스크림을 원래 그렇게 먹냐고요"
"아..."
생각보다 말이 앞서는 내 입이 바람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내가 나를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눈을 크게 고쳐 뜨고 허리에 힘을 주며 걸었다.
가게 앞에 다다르자 혼자 서 있는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의 모습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도 해빈. 그 였다.
그는 막대사탕을 입에 넣고 운동화 발 끝으로 맨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의 발 끝으로 내 시선이 집중됐다. 그가 그리는 마음을 집요하게 알아내고 싶은 나의 집착이 낯설고 겁이 나면서도 그에 대한 내 호기심을 멈출 수가 없었다.
"거기서 뭐 해?" 우재 오빠가 그에게 물었다.
그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어 나와 우재 오빠를 쳐다봤다.
"아, 다들 담배 피우러 나가서... 둘이 어디 갔다 와요?"
"아이스크림 사러"
우재 오빠의 대답에 나는 얼른 손목에 걸린 비닐봉지를 들고 흔들어 보였다.
그가 나와 우재 오빠를 '둘이'이라는 말로 엮어 오해 하지 않길 바랐다.
곧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어이없어 어색하게 웃어버렸다.
"아이스크림 하나 먹을래?" 우재 오빠가 그에게 물었다. 온 신경이 그에게 꽂힌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비닐봉지 안에서 아이스크림 콘을 하나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여기" 하는 순간!
내 손에 들려있던, 내가 먹단 만 아이스크림이 그의 하얀 티셔츠에 위에 그대로 꽂혀 미끄러졌다.
"아!"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놀란 우재 오빠가 닦을 것을 가져오겠다며 서둘러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제가 세탁을 해 드릴게요. 아니 같은 걸로 다시 사서..."
수치심에 가까운 당혹감에 그대로 여기를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마음속으로 나는 내 머리를 수십 번 쥐어박았다.
아... 어쩌면 실제로 내가 내 머리를 쥐어 박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설이 씨, 난 괜찮아요"
아이스크림이 묻은 그의 가슴팍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보며 그가 다정하게 말했다.
무대 위에서 낮고 부드럽게 노래를 부르던 그의 목소리가 바로 내 귓가 앞에서 선명하게 울렸다.
그의 입 안에서 내 이름이 노래 가사처럼 흘러나왔다.
그가 내 이름을 허투루 듣지 않고 기억해주고 있었다는 사실과 그것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나 자신이 어이없어 또 웃음이 났다.
나는 참을 수 없이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으려 두 손바닥으로 내 입을 틀어막고 몸을 돌렸다.
"설이 씨 괜찮아요?"
그가 놀란 얼굴로 나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아마 그의 눈에는 내가 술에 취해 오바이트하기 직전의 모습처럼 보였을 것이다.
내가 한 손을 쭉 뻗어 허공을 향해 토닥거리는 시늉을 하며 괜찮다는 대답을 대신했다.
그때 우재 오빠와 희주가 함께 가게 밖으로 나왔다.
희주가 놀란 얼굴로 나와 그를 번갈아 쳐다봤다.
"너 괜찮아?" 희주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그날 따라 나는 여러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고 있었다.
"엄마 전화 오셨어. 너 전화 안 받는다고."
희주의 말에 나는 얼른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엄마의 부재중 전화.
시각은 벌써 자정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아, 너무 늦었지? 내가 데려다줄게. 그러려고 나 술 안 마셨어."
우재 오빠가 나와 희주를 보며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사람들과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희주와 함께 우재 오빠를 따라 돌아서는데
가게 입구 앞에서 그가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의 하얀 셔츠 위로 초코색으로 동그랗게 얼룩진 모양이 그림처럼 박혀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묻히고도 여전히 매력적인 얼굴로 서 있는 그의 모습이 귀여워 나는 또 웃음보가 터졌다.
입을 틀어막아도 "풋" 하고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급하게 도망치듯 가게 밖으로 뛰쳐나왔고, 희주 역시 놀란 얼굴로 내 뒤를 쫓아 나왔다.
허파에 바람이 빠지듯 새어 나오는 웃음이 내 술버릇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