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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grace Mar 24. 2024

4화. 안녕, 하나.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1부 4화

우재 오빠와 나란히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편의점으로 걸어갔다.

좁은 도로를 지나, 좌측으로 조금만 돌아 들어가니 조용한 주택가 골목이 나왔다.

유난히 밝은 편의점 간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도카니 서 있는 작고 오래된 편의점을 보니 안도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제야 살짝 취기가 돌았다.

작고 긴 숨을 내쉬자 하얀 구름 같은 것이 입 안에서 새어 나왔다.

말이 되지 못해 어색하고 창피한 감정들이 뿌시식 구멍을 비집고 몰래 도망치는 모양 같아서 입김을 보고도 웃음이 났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우재 오빠의 입가에도 참지 못한 웃음이 보였다.


편의점 문 앞에 도착하자 우재 오빠의 핸드폰이 울렸다.

동시에 나는 편의점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편의점 안내음이 들렸다. 우재 오빠는 먼저 들어가라 내게 손 짓하고 전화를 받았다.


나는 아이스크림이 있는 매장 뒤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두어 걸음도 채 가지 못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긴 머리카락을 장식 없는 검은 고무줄로 한데 묶은 교복을 입은 여자 아이의 뒷모습이 내 시야를 가렸다.

때 마침 편의점 안으로 담배를 사려는 손님이 들어왔다. 그 순간 아이는 급히 무언가를 코트 안으로 집어넣고 뒤돌아 섰다. 나는 그 앞을 망부석처럼 막아섰다.

아이의 안 주머니에 감춘 양주의 모서리가 보였다.

아이의 눈빛은 흔들리는 듯하다가 이내 입술을 꽉 깨 어물고 나를 노려봤다.


여자 아이는 제법 독기 어린 눈으로 신경 끄고 꺼지라는 눈빛을 보냈다.

살기 위해 젖 먹던 힘을 내는 어린 사슴 같았다.

나는 미간을 찡그리며 한 치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를 막아섰다.

한 참을 대치하다 여자 아이는 기가 죽어 '제발 그냥 가주세요' 하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나는 여자 아이의 코트 안과 CCTV, 양주가 있던 코너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눈썹을 움직여 보였다.

경고였다.


여자 아이는 결국 포기한 얼굴로 양주를 제자리에 두고 계산대 앞으로 가 껌 하나를 계산하고 나갔다.

여자아이가 열고 간 문을 다시 잡고 우재 오빠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나의 시선은 줄곧 편의점 통창 넘어 어깨를 늘어트리고 걸어가는 여자 아이를 쫒았다.


내가 저 아이를 구한 것이 아니라 어쩜 곤경에 빠트리는 건 아닐까 겁이 났다.

얼른 아이가 놓고 간 양주를 계산대에 올려놓고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건네며 계산을 재촉했다. 아이가 점점 멀어져 갔다. 나는 아르바이트생의 "영수증 드릴까요" 하는 말을 뒤로하고 편의점을 나가 여자 아이를 불렀다.


"얘!"

여자 아이는 내 말을 듣지 못하고 걸어갔다.

"얘! 거기 좀 서봐!"

여자 아이가 뒤돌아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이의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나는 양주를 아이 앞으로 내밀었다.

"이거"

여자 아이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가지고 가야 할 것 같은데.... 누가 시킨 거니?"

아이는 아무 말도 없이 양주만 쳐다봤다.

"친구들? 선배들?"

여전히 아이는 말이 없었다. 아이는 얼른 양주를 낚아채고 코트 안으로  감췄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급하게 돌아 서려는 아이를 나는 다시 불렀다.

"중학생?"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이 필요해?"

아이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나는 아이게게 핸드폰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열어 아이에게 들이밀었다.

"네 번호 찍어봐"

아이는 망설이다 번호를 찍었다.

나는 다시 핸드폰을 받아 들고 통화 버튼을 눌렸다. 아이의 주머니에서 핸드폰 벨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폰을 꺼내 확인했다. 내 번호가 화면에 떠있었다.

"내 연락처야. 이 설. 내 이름이야.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 알았니?"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네 이름은 뭐야?"

"..... 하나. 정하나요."

"꼭 연락해"

아이는 대답하지 않고 뒤돌아 뛰어갔다.


우재 오빠가 내 카드를 들고 내 등 뒤로 다가왔다.


"괜찮아요?" 카드를 내게 주면 우재 오빠가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괜찮은지..."

나는 하나가 사라진 빈 골목을 보며 말했다.


"당장 배고픈 사람에게 기도는 허세니깐"

우재 오빠의 말을 나는 잠시 곱씹어 보았다.


"우리 이제 진짜 아이스크림 사러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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