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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grace Mar 17. 2024

2화. 도파민의 희롱

2.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1부 2화

희주와 함께 들어선 가게는 평소에는 다양한 술과 음식을 파는 바(BAR)였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가게 안은 스탠딩 공연장으로 변한다고 했다.

무대 중앙 벽 쪽으로 반원 형태의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무대 앞으로는 스피커가 그 위로 드럼, 키보드, 마이크, 각종 전선들이 바닥에 늘어져있었다.

공연이 시작되려면 30분이 넘게 남았는데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사람들 사이로 가게 직원들이 오고 가며 손님들에게 음료를 나눠주고 있었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따로 술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음료를 받아 들고 두리번거리는 희주와 나를 발견한 낯선 남자가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가게 주인 오빠, 최우재.라고 희주가 소개해주었다.

"지성 오빠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 가족끼리도 친해" 희주가 우재 오빠 소개를 덧붙였다.

지성은 희주의 친오빠다.


"이 분이 쌍둥이?" 우재 오빠가 나를 보며 말했다.

희주와 나는 키, 체형, 머리스타일 심지어 피부톤까지 닮아 쌍둥이라고 불렸다.

학창 시절 선생님들마저 나와 희주의 이름을 바꿔 부르기 일쑤였다.

우리는 서로의 핸드폰 연락처에 '쌍둥이'라고 저장해 두었다.


희주가 긍정의 의미로 우재 오빠에게 웃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이 설이라고 합니다." 나는 내 소개를 직접 했다.


"반가워요. 따로 명당자리 빼놨으니깐 이리로 와요."

우재오빠가 나와 희주를 데리고 무대 가장 뒷자리, 바(BAR) 자리로 안내했다.

바 의자 위로 올라타듯 앉으니 무대가 훤히 보였다.

정말 명당이네, 희주가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지성오빠 친구라면 나와는 4살 차이.

젊은 나이에 서울 한 복판에 이런 가게를 운영할 정도면 제대로 금수저구나 싶어 나는 우재 오빠를 괜히 경계했었다.

180이 조금 안되는 키에. 하얀 카라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모든 게 자연스러운 제스처. 누구든 한 번쯤은 시선이 갈 만한 사람이었다.


우재오빠가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고 얼마뒤 가게 안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무대 위로 은색 조명이 내려쬐었다.

희주와 나는 서로를 쳐다보며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남자 한 명이 먼저 무대 위로 올라와 키보드 앞에 앉았다. 관객석에 작은 웅성거림이 들렸다.

그 뒤로 드럼 앞에 한 명이 더 앉고, 베이스기타를 맨 남자 한 명이 더 올라와 자리를 잡고 섰다.

마지막으로 무대 위로 올라온 남자가 등 뒤에 메고 있던 기타를 앞으로 고쳐 메며 마이크 앞에서 섰다.

관객석에서 한 층 커진 함성이 들렸다.

희주도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었다.

희주가 말한 그 보컬 오빠인가 보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말한 해빈 오빠!" 희주가 다시 내 귀에 속삭였다.


"안녕하세요. 빈스밴드의 노래하는 도해빈입니다"

무대에 선 그가 관객들을 둘러보며 인사를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낮은 음성에 나는 순간집중했다.

귀한 금요일 저녁에 공연을 보러 와주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마치고 바로 노래 한 곡을 불렀다.


무대 위의 조명이 더 어두워지고 레이저 같은 파란 조명이 무대 앞에서 쏟아져 나왔다.

기타의 첫 음이 나오고 바로 그의 목소리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은빛 조명 빛이 그의 머리 위로 올라가 내렸다. 은색 빛이 촤르르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덕분에 조명 아래 서 있는 그의 얼굴이 내 눈 안으로 쨍하게 들어왔다.

눈 바로 위까지 내려진 앞 머리와 두 귀가 드러난 헤어스타일에 쌍꺼풀 없는 눈, 적당히 오뚝한 코.

다른 사람과 합을 맞추기 위해 살짝 뒤돌아 볼 때 드러나는 턱선.

기타를 치는 크고 하얀 손. 손 목에는 실을 꼬아 만든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첫 번째 노래가 끝나고, 기타를 메고 있던 스트랩을 벗어 기타를 뒤쪽으로 조심히 내려놓고 그가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두 번째 음악이 흘러나오고 마이크를 가볍게 잡은 그의두 손에 작은 혈관들이 보였다.

스탠드에서 마이크를 뽑아내고 나머지 손으로 건반을 짚 듯 손가락을 움직여 음을 타는 모습을 나는 숨죽여 지켜봤다.


검은 머릿결. 가슴팍에 작게 브랜드가 적힌 하얀 면티에 통이 넓은 밤색바지.

조명 아래 그늘진 곳으로 그의 어깨라인이 제법 듬직해 보였다. 어깨를 지나 팔뚝과 팔목을 시선으로 훑어 내리며 나는 나의 응큼함을 남몰래 부끄러워했다.


관객석 안에서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희주도 간간히 허밍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노래가 한 곡 끝날 때마다 공연장 안에서 나만 동떨어져 외로운 이방인 같았다.

이 나이 먹도록 이런 공연 하나에 마음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자신이 열없게 느껴졌다.

그러다 다시 음악이 시작되면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냉동과 해동을 반복하는 물고기처럼 가슴을 파닥거렸다.

나는 온통 도파민에 범벅이 되어 있었다.


무대의 조명이 꺼지고, 가게 안이 다시 밝아지자 나는 나의 치부를 들키지 않으려 오히려 과하게 미소 지었다.

나의 미소를 보고 희주는 만족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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