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정 엄마가 집으로 오셨다. 적당히 날씨가 따뜻하여 우리 둘은 밖으로 나갔다. 원래 이런 저런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우리 엄마는 나가서도 나를 붙잡고 수다로 열변을 토하셨다. 우리는 정신 없이 웃으며 다 져버리고 아주 조금 남은 아파트 벚꽃나무 사이로 지나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길에 한 쪽 모퉁이에서 벽을 맞대고 뒤돌아 있는 아이를 보게 되었다. 한참을 엄마의 이야기로 웃고 있던 나는 뒤도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웃지 못했다. 아니, 깜짝 놀라다 못해 발걸음도 같이 멈추었고 내 손은 내 입으로 올라가 입을 막았다.
아이였다. 초등학생으로 보였다. 피부도 여렸고 볼은 분홍빛이었으며 들고 있던 담배가 한눈에도 어색했다. 입가에는 침이 한 가득히 흘러 턱까지 흐르고 있었고 자꾸만 아래로 늘어지는 침들을 한 번씩 소매로 쓱 닦아가며 담배를 물었다 떼었다를 반복했다. 담배를 짧게 짧게 빨았다가 다시 내뿜는 모습에서 능숙하지 않음이 보였다. 그리고 그보다 나를 더 충격적이게 한 것은 그 아이의 표정이었다.
무언가에 심히 홀렸다. 아니, 호(好)에 너무 솔직하다. 같은 아이를 기르는 입장에서 우리 아이를 떠올렸을 때 저런 표정이 나올 때를 고르라고 한다면 너무 배고픈 상태에서 이제 막 튀긴 치킨을 허겁 질겁 먹을 때, 깨울 수조차 없을 만큼 잠 속에서 꿀 같은 꿈으로 헤맬 때라고 하겠다. 아이는 분명 담배를 피우는 중이었지만 내 눈에는 담배가 아이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아이는 한 번씩 손바람으로 연기를 날리고 그 손으로 흐르는 침도 닦아야 하며 바쁘게 또 은밀하게 할 일을 하는 중이었다.
저 아이에게 가보아야 할 것 같았다. 가자. 이미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나. 가보자. 우리 아이가 아니면 지나가도 되는 건가? 그러면 나는 놀랄 필요도 없는 것이고? 아이는 담배연기를 빨아들이는 것 처럼 자기 자신을 담배에게 빨려 들어가게 하는 중이었다. 이를 목격한 내가 저 아이를 잡아 줘야 할 것만 같았다. 나는 그 아이를 마주한 아주 짧은 찰나에 고민을 했고 멈추지도 나서지도 못하고 있는 발걸음이 되었다. 어른들이 이렇게 라떼가 되는구나, 내 모습이 꼰대로 보이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정말 걱정이 되어서..
" 다 그렇지 뭐~ 얼른 와 "
그 아이를 자세히 보지 못한 우리 엄마는 멍해있는 나를 잡아끌었다. 나는 무겁게 끌려가면서 내가 본 그 아이의 모습을 엄마에게 설명했다. 우리 엄마는 요즘 애들이 어른이 나서서 말하면 듣겠냐고 하시며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나를 채근하셨다. 하지만 나는 초등학생의 흡연 장면은 듣기만 했지 생전 처음 마주했었고 꾸밈없던 아이의 표정은 '순수하게 중독되어 있는' 그대로여서 잊어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이 장면에서 화보다 안타까움이 먼저 앞섰던 이유였다.
내가 머뭇거리고 아이에게 다가가지 못한건 역시 나조차 꼰대나 라떼같이 보여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가장 컸다. 나는 아닌데 하지만 그럼 어떤 라떼나 꼰대는 본인이 그렇다고 인정한다는 말인가. 그들도 나에서 출발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아이를 지나치길 잘한 걸까? 왠지 마음이 쓰였다. 혼 내려는거 아니라고, 길게 말 안 할 거라고 사실은 말하고 싶었다. 단 한 번만, 너의 구석구석을 아끼시는 엄마와 아빠를 떠올려 달라고 말하고 싶었고 침을 닦아주고 싶었다. 이런 부분은 우리 아이만 소중한 게 아니다. 당연히 내가 이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나는 그냥 반발심 사기 좋은 어른인지도 모른다. 정말 모르겠다 이건..
나는 다음부터 그쪽 부근을 지나갈 때마다 그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될까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다시 또 벽을 맞대고 있는 그 아이를 만나게 되면 이번에는 지나치지 않으려 한다. 다가가서 한눈에도 어렵게, 머뭇거리며 한 마디를 떼고 싶다.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괜찮은지, 아줌마가 사실 이전에도 너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마음이 좀 그랬었다고. 이제 이런 모습으로 여기에서 만나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손에 물티슈를 여러 장 쥐여주는 아줌마의 모습에서 아이가 창피함보다는 진심을 전해 받을 수 있다면 너무나 좋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