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윤 Sep 10. 2021

제주 한 달 살이 (27)

2021년 9월 9일 목요일, 가을

  그냥 다 좋았다. 얼른 서울로 돌아오라고, 내가 오기를 기다린다고 연락해 주는 내 곁의 사람들. 처음 본 사이인데도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도민 추천 맛집을 소개해 줄 수 있었다면서 다음 겨울에도 제주에 오라던 네일숍 사장님. 혹시 저번에도 온 적 있지 않냐는 물음에 맛있어서 두 번 방문했다고 하니 그럼 또 오라던 와르다 레스토랑 사장님. 종일 내가 좋아하는 음악만 흘러서 마음 편히 뉘이고 온 카페 길보트. 무해한 사람들의 연대감을 무한히 느낀 비건 커뮤니티 청귤감귤살롱 온라인 밋업.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밋업이 이어졌는데도, 그렇게 서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도 내가 무엇을 말하더라도 걱정이 없고, 무엇을 듣더라도 걱정 안 들던 시간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억지로 한 일도, 억지로 주고받은 마음도 없었다. 빼곡하게 따뜻해진 마음을 연료로 나는 새벽까지 내 Github 프로필을 채웠고, 네 시가 되었을 때 편안히 누웠다. 스탠드 조명을 끄고 확인한 가을이의 메시지에는 나를 걱정해 준 다정한 편지가 있었고. 본인의 계절이 돌아왔다는 귀여운 맺음말에 이렇게 사랑받으며 살아도 되는 걸까 싶었고. 유독 나를 무르게 만들던 가을. 어떻게 하면 내가 단단해질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해답은 사랑이었다. 지나칠 수 있었을 사랑을 하나하나 곱씹어 볼 때, 나는 그 사랑 덕분에 점점 단단해지는 것 같다. 환절기는 언제나 나를 괴롭혔지만 이번 가을은 두렵지 않다.


길보트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 한 달 살이 (2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