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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윤 Jan 02. 2022

미움받는 날들

  착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미움받으며 살고 있었다.


  나는 미움받는 게 죽도록 무서웠던 사람이다. 이전 직장 대표는 나를 실컷 미워하고 나에게 <미움받을 용기> 독후감을 써 오라 종용했었다. 이 사람은 나를 얼마나 미워하면 이러는 것이냐며 화장실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울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처음으로 마주해서 겁이 났다. 구 애인에게도 미움받아 봤다. 뒤에서 내 욕을 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내가 그렇게 잘해 줬는데 뭘 잘못한 것이냐며 열을 올렸다. 미움받아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소중한 친구의 여자 친구에게도 미움받았다. 나랑 연락할 것이라면 헤어지자고 했다고, 자기 앞에서 나랑 연락 끊는 모습을 보여 달라 그랬다고, 그래서 그런 전화를 걸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대체 내가 왜 이렇게 미움받아야 할까 싶었다. 크리스마스 아침부터.


  착하게 살았는데. 내 이름 뜻도 마음 곱게 쓰고 살라는 의미인데. 잘 지키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나, 대다수가 말해 주는 나와 나를 미워하는 타인이 생각하는 나 사이에 생기는 인지부조화가 나를 괴롭혔다. 그건 오해인데. 나는 그렇게 나쁜 애가 아닌데. 잘하고 싶고, 잘해 주고 싶을 뿐이고, 내가 아끼는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만큼 나를 보듬는 일이 또 없는데. 대체 내가 왜 미움받아야 하는데.


  대체 내가 왜 미움받아야 하냐는 물음이 핵심이었다. 이 생각은 나를 끊임없이 갉아먹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착한 사람이고, 착한 사람이라면 미움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제와 결론 모두 틀렸을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못된 사람일 수 있고, 아마 그럴 것이고, 설사 착한 사람이더라도 모든 착한 사람이 미움받지 않을 이유는 없다. 사람은 누구에게든 미움받을 수 있는 것이고, 역으로 누구든 미워할 수도 있다. 무슨 오해가 있든, 얼마나 억울한 일이든 마음을 쓰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니까.


  지나온 세월 동안 나도 숱한 사람을 미워했을 것이다. 다만 미워하는 마음을 겉으로 티 내지는 않았다. 이에 또 억울함이 받쳤다. 나는 누구 미워해도 티 하나 안 내고 속으로 삭혔는데,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나 보란 듯이 나를 미워하지. 사실 이것 또한 개인의 자유. 내가 누굴 속으로 미워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전부 사람을 미워할 때 속으로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인간은 매우 다양하니까.


  예전에는 억울한 오해가 생기면 그것을 풀려고 부단히도 노력했었다. 말이 좋아 노력이지, 나를 두둔하기 위한 항변과 호소였다. 나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제발 좋은 사람으로 봐 달라고 악을 썼다.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 한다. 그럴 힘도 없거니와, 미움받는 일은 내 인생에서 빅 이벤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누굴 미워할 때 속으로 미워하는 나처럼 누군가는 나를 또 몰래 미워하고 있을 수 있겠지. 내가 아는 것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훨씬 더 많겠지. 겉으로 티 난 것만 몇 명이었겠지. 내 귀에 들어온 사람 고작 몇 명 안 되는 것 보면 그래도 나는 역시 제법 착한 사람이군.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음을 안다. 그러니 미움이 무서워질 때에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생각하고 사랑을 쓰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세어 보자. 내 인생의 한 부분을 채워 놓았던 것을 떠올리자. 그 부분이 없었더라면 내가 얼마나 지금과 다른 사람이었을지 생각하자. 그 마음으로 친구에게 크리스마스 엽서를 썼다. 네가 없었다면 나는 얼마나 메마른 사람이 되었을까. 나는 네 덕에 몇 번의 숨을 더 쉬었을까. 그런 말들을 썼다. 좋아하는 구문을 빌려 적었던 마지막 말로 글을 마무리한다.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내 인생에 네가 차지한 부분은 전부 따뜻할 거야. 그냥 그런 확신이 드네. 좋아하는 구문을 빌려 말하자면 살아남자는 살아서 남자는 건지 남았으니 살자는 건지, 뭐든 상관없이 긍정적인 절망으로, 절망적인 긍정으로 살아서 남아가자.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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