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투병 말기에 엄마 아빠에게 썼던 편지 두 통
갑자기 아빠가 보고 싶어져서 올려 보는 편지들. 마지막으로 전했던 내 마음.
아빠. 나는 요즘 추억하는 일들이 슬프다. 찍어 뒀던 땅콩이 영상을 보는데 거기 아빠 목소리가 나오는 거야. 그런데 그런 게 슬펐다. 꿈에서 아빠가 너무 잘 걸어다니는 거야. 그걸 보자마자 제주도 여행 갈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엄마한테 이야기하다 꿈에서 깼거든. 행복할 꿈도 자꾸 슬픈 꿈이 돼서 종종 울었다. 우리 제주도 가야지. 렌트도 다시 하고 내가 운전하는 거 봐 줘야지. 아빠 알고 있는 숙소도 있다고 그랬잖아. 거기서 자야지. 갈치구이 먹고 싶다며. 그거 먹어야지. 같이 밥 먹으러 가서 최후의 1인 해야지, 아빠가. 엄마 나 시은이 다 배부를 때도 아빠는 끝까지 먹어야지. 시은이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빵 포장하고 있으면 아빠가 땅콩이 엉덩이 받치고 기다려 줘야지. 엉덩이 받치고 안는 거 내가 알려 줬었잖아. 새로 이직할 회사도 아빠가 차로 데려다 줘야지. 살아야지.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 힘들어도. 나는 아직 아빠랑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고, 이제야 너무 많아졌고, 겉으로는 덤덤한 척해도 매일매일 마음이 무너져. 말라가고 삶을 부지할 힘이 없어지는 아빠를 볼 때마다. 누가 봐도 나는 아빠 딸이라는데 아빠가 없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나는 생사의 기로에 서 본 적 없어서 아쉬운 소리밖에 못 하지만, 아빠는 이제 면회 오는 사람들에게 살아 달라 이런 소리 듣는 게 지겨울 수도 있겠지만, 다 몰라서 그러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내가 아빠를 사랑하는 방식이니까. 조금만 더 살자, 아빠. 어떻게든. 사랑해.
엄마. 나는 요즘 당연하던 일상과 관계들이 하루아침에 달라져 버리는 게 두렵다. 가장 가깝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나를 차단하고,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고. 미움받고도 나 혼자 그 사람을 용서하고. 나 혼자 내 마음을 달래고. 매일 반복되던 출근길이 갑자기 사라지고. 무슨 잘못을 했길래 세상은 이렇게 나를 가만 두지 않는 것일까 생각하고.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그런데 엄마는 어떤 기분일까. 미운 점 참 많은 아빠였을 텐데 몇십 년의 시간 동안 몇백 번의 용서를 더 했을까. 기어코 이렇게 아파 버려서, 엄마 아님 간병인도 싫다면서 병실에 있는 게 엄마 하나라서, 아프다는 이유로 별것도 아닌 일로 엄마를 탓하고. 조금만 달라져도 무서운데 아빠는 금방이라도 가 버릴 것처럼 휙휙 다른 사람이 돼 버리고. 나는 감히 헤아릴 수 없고 같은 크기로 슬퍼할 수도 없겠지만 비슷한 길을 걸으면서 자주 엄마의 뒷모습을 생각해. 나는 아직 잘 모르겠어. 뼈밖에 안 남은 아빠를 보면 사람이 이렇게까지 마를 수도 있구나, 애써 덤덤한 마음으로 이젠 정말 이별을 준비해야 하나 보다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리는데, 아빠가 있던 당연한 일상이 사라지는 생각을 하면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흐른다. 재미없는 TV 소리. 재미없는 개그. 하던 이야기 끊고 딴소리. 할아버지 댁 가는 길. 운전대 잡고 있는 손. 눈치 없는 소리. 차로 데려다 주니 편하니? 아빠가 데리러 가니까 더 빠르니? 계속 내색하는 소리. 이런 게 그리워질 것 같아서 무섭다.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여행 가는 꿈을 자주 꾸다 깨는데 깰 때마다 그걸 악몽이라 생각하는 게 슬프다. 슬픈 꿈이 되어 버리고 괴로운 꿈이 되어 버려서. 시은이까지도 그래서. 그리고 나는 아빠가 아픈 것보다 아픈 아빠를 보는 엄마가 힘든 게 더 슬프고 힘들 때도 많았어. 그만큼 엄마를 많이 걱정하고 신경 써. 우리 가족 모두 덜 아팠으면 좋겠다. 엄마 아빠를 생각하고 편지하는 게 고작 내 표현의 전부이지만 이 마음이라도 닿기를 바라며.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