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17일차

by 채윤희

집에서도 장녀였고, 23살이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사회에 발을 들인 나는 또래보다 사회인으로서의 고민을 조금 일찍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때때로 외롭기도 했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길인지, 정말 원했던 길이었는지 고민하고 조언을 구하고 싶을 때, 내 주변엔 시험과 취업 준비에 몰두한 이들뿐이었다. 마치 이 길밖에 없다는 듯 그들은 자신들의 앞길에 집중하고 있었고, 그 모습은 나를 점점 더 고립되게 만들었다. 방황하고 있는 사람이 나뿐이라는 착각도 거기서 비롯되었다.


한 가지 직업으로 평탄하게 이어질 줄만 알았던 내 커리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그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길을 다시 찾으려 애쓸 때에도, 나는 이 모든 과정이 나만의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번 주말부터 자기 발견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서른 즈음’의 나이대만을 대상으로 모집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처음엔 ‘나이대가 맞으니까 신청이 가능하겠군’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는데, 막상 첫 수업에 참석하고 나서야 왜 그런 기준이 있었는지 알게 됐다. 이 시기를 통과하는 이들만이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비슷한 고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이십대 후반을 지나며 얻었다고 생각한 ‘대단한 깨달음’이란, 사실은 삼십 대 초입에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하는 통과의례에 가까웠다는 것을.


오늘은 하루 종일 책을 쌓아 놓고 읽으며 보냈다. 개중 선생님이 추천하신 책 <서른이 지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도 있었다. 이 책은 나의 모든 방황이 단지 ‘이 시기’라서 그런 것임을 설명해 주었다. 심지어 진작부터 이런 상태를 부르는 용어도 있었다. 주로 이십 대 초중반부터 삼십 대 중반 사이에 나타나는 삶의 방향성과 질에 대한 극심한 불안을 ‘쿼터 라이프 위기(Quarter-life Crisis)’라 한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내 바운더리가 좁았던 탓에 내 주변 사람들이 그저 잘 참고 버텨내는 듯 보였을 뿐, 나의 고민은 결코 특별하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지금 지극히 자연스러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뿐이다.

나의 고민들이 실로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을 깨닫고 나니 오히려 이 뒤의 일들도 자연히 지나보내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후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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