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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May 26. 2021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썸씽로튼! 셰익스피어의 재해석

때로 세상에는 B급 감성이 필요하다.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썸씽 로튼! 셰익스피어의 재해석      


 “나도 주인공 시켜줘요, 독약 원샷 가능!”
 “삶이 달걀을 주거든 만들어 오믈릿!”     


이게 대체 무슨 문장이에요? 라고 말할 수 있겠지. 이 두 문장은 모두 셰익스피어를 주제로 한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과 ‘썸씽로튼’에서 나오는 구절 중 하나이다. 대체 셰익스피어를 어떻게 재해석하면 이런 문장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지난 3월 첫 번째 호에서 연극 <알앤제이>를 소개한 바 있다. <알앤제이>가 셰익스피어의 낭만과 반항적 힘을 가진 작품의 고전적 형식을 잘 살린 작품이라면, 인사이드 윌리엄과 썸씽 로튼! 은 뛰어난 이야기꾼 셰익스피어의 희극적 연출을 매우 잘 살린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두 작품 모두 현재는 공연하지 않지만, 인사이드 윌리엄은 영화관에서 상영할 예정이므로 언젠가 한 번 관람하면 좋겠다. 그럼, 이 작품들이 어떤 방식으로 셰익스피어를 재해석했는지 알아보자.     



<그런 작품, 명작> / <Hard to be the bard>

셰익스피어가 끝없이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음을 많은 작품에서 드러내고 있다. ‘인사이드 윌리엄’이 ‘사랑받는 작품’을 써야 하는 데에 집착하고,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며 고뇌에 찬 셰익스피어의 모습을 첫 장면에 그려낸다면, ‘썸씽 로튼!’에서는 이미 충분히 사랑받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고뇌를 그려낸다는 점이 다른 점일까. 인사이드 윌리엄은 셰익스피어의 다양한 작품들이 바람으로 인해 그 습작들이 완전히 섞여 버렸고, 그 과정에서 플롯이 바뀐 주인공들이 혼란을 겪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성장’에 좀 더 치중하고 있다. 즉, 셰익스피어는 아직 완성형 인간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 삶을 살아가는 우리와 좀 더 닮아있다. 남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쓰고 싶고, 남들 눈에 멋지게 보이고 싶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이야기 말이다. 반면 썸씽 로튼! 의 경우 셰익스피어는 닉 바텀과 나이젤 바텀에 반대되는 반동 인물이다. 성공하지 못한 극작가 닉 바텀에 비해 훨씬 잘 나가는, 대작가 셰익스피어. 그런 그에게도 걱정과 고뇌가 있다는 것을 매우 장난스러운 언어유희로 살리고 있다. 즉, 썸씽로튼! 은 셰익스피어적인 언어유희로 가득 찬 가사들과 우리가 생각한 ‘문학가 셰익스피어’와는 완전히 다른, ‘섹시하고 인기 많고 그 당시의 스타 셰익스피어’의 이미지를 가지고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 폭소가 나와, 미워하지 못하는 사람 말이다. 



이 두 작품이 둘 다 셰익스피어를 재해석하고 있고, 명랑하고 즐겁게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다른 이유는 셰익스피어를 어떤 방향으로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그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 방향성의 차이이므로, 취향대로 골라 보면 좋을 법하다. 그러면 이 작품의 갈등에 대해서 알아보자. 대체 이 유쾌한 뮤지컬에서는 어떤 식의 갈등이 생겼을까.      



<달라진 장르>, <엉켜버린 플롯> / <Something Rotten!>, <Make an Omelette>

인사이드 윌리엄은 ‘윌리엄의 내면’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써 온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의 이야기가 뒤죽박죽 섞여버린다면 어떨까? 단지 한 극본의 이야기를 따라 내가 살아왔다면, 그리고 그것 때문에 죽음으로 이야기가 끝난다는 것을 주인공들이 알아버리면 어떨까? 햄릿은 사실 시인이 되고 싶었고, 줄리엣은 검술을 하고 싶었다면? 이런 생각이 발칙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셰익스피어 역시 그 당시에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 않던가. 앞서 말했듯,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은 정말 ‘재기발랄한 셰익스피어의 사고방식’과 많이 닮아 있다. 완전히 장르가 바뀌어버린 이 작품들에서 주인공은 셰익스피어의 말을 따르기를 거부하고, 셰익스피어는 모두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이유로 작품을 계속 집필하길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자유의지’가 생겼기 때문에,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들을 셰익스피어는 통제할 수 없다. 사실 이렇게 캐릭터가 자의식이 생기고 그들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이 진정한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비극적 사건 앞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이상한, 기묘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셰익스피어는 이 달라진 장르가 매우 불만스럽다. 



유사한 방식으로 ‘썸씽 로튼!’이 전개된다. 셰익스피어라는 폭풍 같은 극작가에 대항하기 위해 닉 바텀은 점쟁이를 찾아가 앞으로 유행할 작품에 대해 질문한다. 이 과정에서 햄릿Hamlet이 오믈렛Omelet 이 되었고, 온갖 뮤지컬 작품들이 뒤죽박죽 섞이면서 ‘뭔가 조금 썩은 것 같은데Something Rotten’,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계속 써내려간다. 동생 나이젤 바텀의 작품Hamlet은 셰익스피어가 채가고, 닉 바텀은 실패한 작품의 작가가 되어 법정에 회부된다. 이 과정에서 <베니스의 상인>,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등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차용한 플롯이 썸씽 로튼! 의 주인공들에게 적용되면서 소소한 재미 역시 찾을 수 있다. 썸씽 로튼이 좀 더 ‘실제로 있을 법한’이야기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섞어둔 것 같다고 느꼈는데, 가사 역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차용한 태가 난다. 여기까지 읽으면 셰익스피어가 악역으로 나오는 건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이 작품에 사실 악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닉과 나이젤 형제의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면 그의 작품을 셰익스피어가 훔쳐 쓴 것이니 악역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국 이 작품의 주제는 뒤에서도 다시 설명하겠지만, 이 작품의 ‘셰익스피어’는 잘 나가고, 멋진 스타가 되고 싶은 모습의 우리들이다. 그런 욕망을 감히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닉의 작품 <오믈렛> 은 생각보다 정말 유쾌하고 재밌는 작품이란 말이다! 어떤 작품이 명작으로 남고, 어떤 작품은 그러지 못하다는 이유로 그것을 졸작이라고 폄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졸작이 당신의 마음에 든다면 그것이 명작 아니겠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인사이드 윌리엄> 과 <썸씽로튼!> 역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소중한 나의 이야기> / <To Thine Own self be true>

엔딩이 결국 이 넘버들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나의 삶을 사는 것,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 남들의 눈치 볼 것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란 참 힘든 일이다. 격정적인 사연도 있어야 하고 아름다운 대사도 있어야 하고, 왜 내 인생에는 잔잔하게 깔려 있는 음악이 없는지 매일 고군분투해야 한다. 몇십 억 명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주인공이 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수많은 이야기가 생기듯이, 우리는 우리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그게 비록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라도, 사람들이 궁금해 하지 않는 이야기라도 우리는 우리의 생을 살아야 한다. 이름이 없어도 돼. 우리 그렇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무대에 오르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백스토리가 있으니까, 무대 밖에서 우리의 운명을 만들어 가면 돼. 그렇게 말해주는 상냥한 이야기. 로미오도 줄리엣도, 햄릿도 스스로 운명에 순응할 것인지 개척해 나갈 것인지를 고를 수 있게 해주고, 운명에 순응하는 자 역시 – 그러니까,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 역시 열등한 것, 혹은 정체된 것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인사이드 윌리엄이 말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썸씽로튼! 의 경우는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전개인데, 이쪽의 경우 남들이 나를 싫어하고 미워해도 내가 행복하면 된다! 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좀 더 가족적인 느낌이고 말이다. 



셰익스피어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 이 작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진지하지 않다!”라는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분명 셰익스피어도 이 작품을 좋아할 것이라는 평가를 내릴 만하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이지, 누가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상업성으로야 문제가 되지만 그것은 차치해 두고,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가 말씀하신 구절이 생각나 인용해본다. 



“내가 70년 넘게 살아보니께, 남한테 장단 맞추지 말어. 북치고 장구치고 너 하고 싶은 대로 치다 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추는 거여.”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의 삶을 재단하는 방식에 대해, 외면적인 것들에 우리는 너무 많이 신경 쓰지 않나. 당장 나도 그렇고, 셰익스피어도 그랬고, 모두가 그런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연애 소설은 안 읽을 거라고’했던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히트를 쳤고 못 배운 작가가 글은 어떻게 쓰냐며 비꼼을 받던 셰익스피어는 영국을 내어줘도 그를 내어주지 않겠다는 여왕의 칭찬까지 받았다. 우리의 이야기가 그렇게 극적으로 나아갈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칼을 잡고 나의 이야기를 쓰겠다며 나아간 줄리엣은 근위병이 되어 이름이 없어졌고, 시를 쓰는 햄릿은 어떤 이야기를 알리는 악사가 되었다. 닉과 나이젤은 가족들과 함께 추방당했다! 하지만 그게 나쁜 걸까? 줄리엣은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칼을 쥐고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러 나갔으며, 햄릿은 이제 누군가를 죽이지 않아도 된다. 닉은 운명에 따라 글을 쓰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이 즐거운 이야기를 쓸 수 있다. 추방당했는데도 말이다! 이제 닉과 나이젤은 가족들과 함께 어떤 억압에 굴할 이유가 사라진 땅에서 자유를 만끽할 것이고, 마음껏 사랑할 것이다. 



때로 세상에는 B급 감성이 필요하다. 깊고 짙은 이야기를 보는 것도, 철학적인 사유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뭔가 애쓰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발자국을 딛어도 괜찮다는, 그런 이야기를 아주 발랄한 멜로디로 감상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뮤지컬 <썸씽로튼!> 의 시츠프로브를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고,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은 전국 영화관에서 개봉할 예정이라고 하니 한 번 즈음 관람하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 같다. 일상 속에서 웃지 못하는 당신이 그저 웃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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