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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수련회

by 혼란스러워

내가 속한 교회는 매년 여름 수련회를 간다. 지방 어느 소도시 산자락에 땅을 사서 연수원 건물을 짓고 축구장 크기 운동장도 만들었다. 밭도 있어서 감자를 심고 포도를 심어 수확한 뒤 성도들이 골고루 나눈다. 아무튼 이번 여름에도 그곳으로 수련회를 간다. 교회 1년 행사 중 가장 큰 행사다. 전교인 수련회에 앞서 초등부 수련회, 청소년부 수련회를 먼저 한다. 정말 헌신적인 분들은 앞선 두 수련회에 교사로 참여하거나 봉사자로 참여하고, 이어서 전교인 수련회 2박 3일까지 일주일 정도를 연이어 참여하기도 한다. 무더운 여름에 단체 생활하는 것에 불편함도 많지만 신앙으로 이겨낸다.


“이번 수련회 가시죠?” 지난주에 우리 소모임 리더 분이 나에게 물었다. “아. 그게 이번엔. 다른 계획이 있어서..” 난 말끝을 흐렸다. 그분은 표정이 약간 달라지며 “수련회는 신앙생활 1년 농사 결실을 맺는 시간이에요. 요즘같이 힘든 시기에 수련회 참여해서 성령을 체험해야 해요.” 수련회 참여를 권하는 그분의 마음을 모르지 않지만 이미 마음을 굳혔기에 계속 듣기가 힘들었다. 난 어쩔 수 없이 작년 수련회 때 좀 힘들었던 얘기를 했다.


작년 수련회 때 난 회사 일정으로 1박만 참여했다. 금요일 오후에 도착해 약간 뻘쭘했지만 수련회를 위해 짠 조가 있어서 그분들과 조별 모임에 참여하면서 그럭저럭 적응해 갔다. 하루 일정이 끝나고 밤에 주택에 들어와 씻고 자려는데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방은 방대로 거실은 거실대로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여자 성도들은 연수원 건물 3, 4층에 있는 각 방에 몇 명씩 배정되어 자지만 남자들은 달리 방이 없고, 식당 한편에 각자 돗자리 등을 깔고 자거나 좀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연수원 밑에 주택에서 알아서 자야 했다. 난 그 주택으로 들어와 잠자리를 찾아본 것이다.


식탁에 두어 명이 앉아 있는 걸 보고 나도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서너 명이 오더니 과자와 과일 등 주전부리를 놓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들 친해 보였다. 난 1명 빼곤 그리 친분 있는 사람이 없어서 뻘쭘했다. 일어나기도 계속 앉아 있기도 애매해서 몹시 불편해졌다. 기회만 엿보다가 슬그머니 일어나 거실 구석진 자리로 왔다. 소파가 있고 바닥에 사람들이 누워 자고 있었다.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밑에서 자는 사람들이 코를 골았다. 에어컨 바람이 너무 차가웠다. 소파에 누워 자려니 멀미 나는 느낌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기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내 차에 올라 시동을 켰다. 에어컨을 적당하게 맞추고 의자를 젖혀 누웠다. 역시 잠이 오지 않았다. 운전석에서 일어나 뒷자리를 접어 평평하게 한 후 누웠다. 불편했다. 얼핏 잠이 들었다가 빗소리에 잠이 깼다. 소나기가 쏟아지는지 굵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잠을 잘 수 없었다. 한참 비가 쏟아졌다. 잠깐 눈을 붙였을까 날이 밝았다. 매미가 울었다. 주택에 들어가 보니 사람들은 이미 연수원 건물로 올라갔는지 아무도 없다.


수련회니까 편한 것을 바라고 참석하지는 않았다. 불편한 게 당연하다. 여름이니까 더울 수 있고, 사람들이 모였으니 좁고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 모여 있는 곳에서 뻘쭘한 느낌만은 견디기 어려웠다. 이 교회를 그래도 7~8년 다닌 것 같은데 아직도 그렇다면 내가 문제일까. 이 얘길 하니 옆에서 듣던 다른 집사님이 그런 분들 꽤 많다고 했다. 그래도 작년에 그것 때문에 다음 수련회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이번엔 아들과 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수련회 기간에 몽골 패키지여행을 가기로 했다.


하나님께서 이런 나를 벌하실까. 힘들 땐 살려달라고 기도하면서 살만하니까 수련회 안 가고 여행이나 가는 죄를 나는 짓고 말았다. 하나님을 믿는 참된 신앙인이 되긴 참 어렵다. 아이들 캠프와 수련회에 교사와 봉사자로 참여하시고 전교인 수련회까지 참여하시는 분들이 존경스럽다. 그분들을 위해 기도한다. “주님 영광을 위해 늘 헌신하고 봉사하는 영혼들에게 복을 주소서. 이번 수련회에 참여하지 않는 저를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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