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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해보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자

by 혼란스러워

너에게 말해줄 게 있어. 내가 어느새 20년 넘게 같은 일을 하고 있잖아. 처음 일 시작하고 몇 년은 누구 못지않게 자신감도 있었고, 모든 일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며 처리했어. 누가 뭐래도 내 방식이 있었고, 내 방식대로 하면 결과도 대체로 나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중간에서 조율할 일이 있으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마음으로 내가 참으며 진행하다 보면 어떻게든 결론은 났고, 일은 마무리됐어.


난 고객 응대 전화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였어. 열정도 있고 체력도 있던 30대엔 무서울 게 없었지. 어떤 전화 통화를 해도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면서 정리하다 보면 일은 끝나기 마련이고, 시간이 지나면 모두 그런 일이 있었지 정도로 생각할 정도로 별것 아닌 일이더라. 그런데 조금씩 변수가 생기는 경우도 있었어. 다윈의 진화론에서 변이라는 개념이 나오잖아. 내가 진행하는 일들의 흐름에 조금씩 변이가 생긴 거지 그런데 처음엔 변이 처리마저 자신 있었고 무리는 없었어.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지쳐 있다는 걸 깨달았어.


사람들이 번아웃이라고 하는 것. 그걸 나도 겪게 된 거지. 전화를 받기 싫어졌어. 전화를 걸기도 싫었고. 사람들하고 통화하는 게 무서워졌어. 조금만 억양이 올라가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어지럽고 팔 다리에도 힘이 쭉 빠지더라고. 처음엔 나도 의식 못했어. 하지만 그게 반복되니까. 이 모습이 맞나 싶더라고. 내가 원래 이러지 않았는데. 막연한 불안 증상도 있고. 어떤 일을 해결하기 전에 불안부터 생기는 증상도 있더라고.


이래선 안되겠다 싶었어. 관련된 유튜브 콘텐츠도 찾아서 들어 보고 책도 많이 읽었어. 심리학이나 정신과 의사들이 쓴 우울과 불안에 관한 책, 유명 작가가 쓴 책을 읽고, 마음에 위안을 주는 성경 말씀도 찾아서 읽고 쓰고, 심지어 반야심경에 관한 책도 읽었지. 그리고 운동을 했어. 주말에 무조건 나가서 등산로를 숨차게 걸었고. 이틀에 한 번은 꼭 근육운동을 했어. 턱걸이와 팔굽혀 펴기, 아령으로 집에서 꾸준히 했어.


1년 정도 하니까 몸에 변화가 오더라고. 그러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유튜브 채널에서 유명인들이 “그냥 하는 거예요.”라는 말을 하는 장면을 모은 숏폼을 봤어. 생각할게 뭐 있냐고. 그냥 하는 거라고. 어떤 유명 연예인이 그랬대. 인생에 성공과 실패가 있는 게 아니라고, 인생엔 성공과 과정이 있는 거라고. 멋진 말인 것 같아. 사람들은 이 실패로 인해 두려워해. 성공하지 못한 상황을 불안해하잖아. 그 과정을 겪으며 배우고 나아진 게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실패했다는 생각만 하는 거지.


그러니까 할 일이 있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앞뒤 재지 말고 그냥 해, 시작하면 반은 한 거야.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일단 시작해. 드럼을 배우고 싶으면 당장 학원을 알아보고 등록해.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금요일 밤이든, 토요일 아침이든 출발해. 다른 여건은 생각하지 마. 어떤 문제가 생긴 고객과 통화를 해서 해결해야 할 상황이라면, 일단 전화를 걸어서 말을 걸어. 그쪽에서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마. 그건 그쪽 일이고 내가 해야 할 얘기를 하면 되는 거야.


오늘도 며칠을 미뤘던 통화를 했어. 정말 하기 싫었어. 상대가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러면 또 말다툼을 해야 할 거고 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할 거라는 생각에 전화하기가 싫었어. 하지만 오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었어. 내일 금요일까지는 처리를 해야 하는 일인데 내일은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니 오늘 꼭 해야 하는 거였어. 전화기를 붙들고 한참 있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어.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왜 전화했는지 물어보고 그쪽 애 해줘야 할 사항을 말했어. 그랬더니 알겠다고 하더라고. 의외로 싱겁게 끝났어. 바보같이 며칠을 고민하고 불안해했던 일인데 그렇게 쉽게 끝났단 말이야. 돌이켜 보면 많은 일들이 이렇게 별일 없이 끝났어.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러니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그냥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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