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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서툴던 내가, 어쩌다 발표를 가르치고

230502

by StarCluster

나는 조용한 학생이었다. 말수가 아주 없는 편은 아니었지만, 사람들 앞에만 서면 목소리가 달라졌다. 음량은 작아지고, 표정은 굳어졌다. 입 안이 바짝 말랐다. 어떤 이들은 약간 어눌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부터 치음(ㅅ, ㅈ, ㅊ)이 들어간 발음을 어려워했었다. 혀끝과 윗잇몸 사이의 공기를 마찰시켜 내야하는 그 자음들이 들어간 단어를 말할 때면, 내 혀는 늘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생각한 말들이 입 안에서 부서지고 뭉개져 나왔다. 학창시절 조그만 약점이나 모난 부분을 가진 이가 대체로 그렇듯, 발음 때문에 관련된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면, 내 의견보다는 ‘어떤 단어를 어떻게 말했는가’에 관심이 쏠릴 것 같다는 불안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그리고 그건 어느 정도 현실이 되었다.


어린 마음이었음에도 '이제는 그냥 이런 나를 받아들여야 하나-' 하는 체념 같은 감정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누군가 나를 따라하는 말 한마디, 혹은 내가 말하는 모습을 담은 녹음이나 영상을 다시 듣게 되면, 밀려드는 수치심에 마음속 표현들은 줄줄이 도로 숨어버렸다. 이런 나를 바꾸고 싶었지만, 어떤 방법으로 발음을 교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해 답답했다. 속상해서 집에 들어온 날에는 다른 사람들이랑 신체구조가 달라서 그런가 싶은 마음에 거울 앞에서 그저 혀만 쭉 내밀어볼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숨고 싶던 순간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던 때도 분명 있었다. 친구가 이해하지 못한 수업 내용을 조심스레 물어올 때, 내가 천천히 설명해주던 순간들. 내 말이 닿은 친구의 얼굴에 ‘아- 알겠다’는 빛이 떠오를 때, 그 순간만큼은 발음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여러 번 설명하는 것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면, 그 이유를 먼저 내 안에서 찾곤 했다. 그의 이해하지 못함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싶었다. 그 마음이 어쩌면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사범대 졸업 학기에 나간 교생 실습을 떠올린다. 아직 학교에 교단이 남아있던 시절, 그 위에 올라서서 짧은 소개를 하던 그 때의 울렁거림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구두를 신은 발바닥이 나뭇 바닥을 쿵쿵 울렸다. 지도 선생님의 소개로 내가 앞으로 나서자,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쏠렸다. 교단에 서니 펼쳐지는 기대에 찬 눈빛들과 고요함.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그들에게까지 들렸을지가 궁금했다.


그렇게 시작된 교육 실습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툴렀고, 어느새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싶은 아쉬움이 남았다. 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날의 다 형용하지 못할 감정들의 조각은, 꼭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으로 남았다.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더는 내 약점을 외면할 수 없었다. 성인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발음 교정을 해주는 곳을 찾아갔다. 교습소의 다른 방에 앉아 있는 여러 어린이들이 선생님들과 함께 발음을 배우는 것이 보였다. 그 틈에서 나 역시 아이들이 사용하는 교재를 그대로 사용하며 처음부터 다시 고쳐 배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부끄러워 감춰왔던 내 혀와 입모양의 움직임을 교정해주는 선생님을 만났다. 바뀌고 있는지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뀌어갔다. 혀끝을 제자리에 두고 발음을 내는 그 단순한 동작 하나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30분 언저리의 연습 훈련을 하고 나면 집에 돌아와 임용 공부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저리고 피로가 쌓였다. 그래도 멈추고 싶지 않았다. 매일 발음숙제를 연습하고 녹음해서 선생님께 보내드렸다. 제대로 말하고 싶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부끄럽지 않게 하고 싶었다.




어느덧 들어줄 만한 발음을 내뱉는 사람이 됐다. 임용 공부 내용도 차곡차곡 쌓아갔다. 몇 번의 고배를 마셨지만, 결국 그렇게나 바라왔던 도덕 교사가 되었다. 수업이라는 것은 나에게 이렇게, 너무나 소중하게 주어진 것이었다.


‘학생들이 나에게 배우는 내용을 누군가에게 다시 배울 기회는 잘 없을테니 지금 최선을 다하자.’

‘내가 아는 것들, 내가 준비한 것들을 아이들에게 모두 다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수업을 준비하고, 최대한의 것들을 꾹꾹 눌러담았다. 그러나 45분의 수업 시간은 짧았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는 없었다. 그런 수업들, 잔뜩 힘이 들어갔던 그 시간들을 보냈다.


수업하며 나처럼 말하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나와는 다른 이유들이 있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 자체가 긴장되는 학생, 내용을 구성하거나 발표 기술 자체를 어려워하는 학생, 경험이 부족해서 발표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학생. 이유야 달라도, 안타까운 마음은 같았다.


‘나도 그랬었는데.’


발음이 별로일 수는 있어도 말하는 것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에, 혼자 공부하며 모아두었던 글과 자료들이 있었다. 인상 깊었던 영상들, 책을 읽으며 밑줄 치고 남겨두었던 메모들이 떠올랐다. 이런 자료들도 아이들에게 전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도덕 시간에 그런 내용을 다루기엔 어딘가 어색하고 망설여졌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형 자유학기제 선도학교에서 근무하던 중에, 주제선택 프로그램 수업 개설 제안을 받았다. 이때다 싶어 제안을 수락했고, 평소 시간이 없어서 아쉽다고 생각해왔던 ‘발표와 소통’이라는 교육과정을 직접 제작해 열게 됐다. 아이들과 함께 말하는 것에 대해, 말을 하는 방법에 대해, 말이 가진 힘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서로 배우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자유학기제 교육과정이 계속 이어져오면서, 이 수업도 여러 해를 거듭해서 가르치게 되었다.




가르침의 시간이 서서히 흘러 지나가면서, 그리고 경력이 쌓여가면서 점점 더 알게 된 것이 있다. 가르친다는 것은 전부를 주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예전엔 아이들의 질문에 늘 빈틈 없는 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묻기도 전에 다 준비해두는 사람이 좋은 선생님이라 믿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꼭 내가 아니더라도, 내가 지나간 뒤에도, 더 많은 배움의 시간 속에서, 더 좋은 분들과 만나며 충분히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다 알려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함께 긍정적인 가치들을 나누고, 그 기억으로 아이들이 다시금 나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제는 힘을 좀 빼고, 아이들에게 틈을 내어주는 유연한 수업이 진정으로 학생들을 자유롭게 함을 느낀다. 아이들은 그 틈을 자신만의 언어로, 그들의 의미와 방향으로 조금씩 채워 넣는다.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점점 더 확실히 알게 됐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어서, 오히려 가르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이 서툴러 조심스럽게 표현을 고르던 날들이 나도 몰랐던 나를 깊게 돌아보게 했고, 그러다보니 아이들의 망설임이나 주저함 앞에서도 쉽게 판단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었던 것 같다고.




매년 다시 시작되는 자유학기제 주제선택 프로그램. 발표와 소통 수업의 첫 시간이 되면, “선생님도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아요. 그렇지만, 우리 그런 사람들끼리 잘 해보자고 모인 것 아니겠어요?”하며 아이들과 함께 너스레를 떨곤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꼭 부탁한다. “발표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끼리 서로 실수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어요. 조금만 용기 내도, 잘한 부분을 크게 칭찬해주어요. 박수도 아끼지 말자고요.” 아이들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다정하게 반응해준다.


짧고 긴 발표들을 몇 번에 걸쳐 준비하고 실습한다. 몇 번의 격려 끝에, 부담감을 이겨내고 용기 내어 친구들 앞에 선 아이를 본다. 어렵지 않은 발표임에도 여러 번 멈추고 다시 시작하는 친구에게 “할 수 있어!”하며 마음 써주는 아이들. 작은 응원들이 모여 그 학생의 목소리를 다시 나아가게 만든다. 조금씩 조금씩, 결국 발표를 마무리하고 자리로 들어온 학생과 격려해준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끝까지 해낸 그 자체로 대단해. 그리고 그것을 지켜봐주며 잘 해내기를 기다려 준 너희에게도 많이 칭찬해주고 싶어.”


그렇게 서로를 향해 코 끝이 찡해지는 박수를 쳤던 수업의 한 장면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배움의 시간이 흐르고, 발표반 마무리 수업을 할 즈음이 되면, 다음 텀에 만날 학생들을 위한 피드백을 요청한다. 몇몇 아이들은 꽤나 정성스레 자신의 마음을 적어준다. 하나씩 읽어보며 생각했다. ‘아,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런 말이었구나-’


수업이 재밌었다는 말도 참 좋지만, 스스로가 달라졌다고 느낀다는 말이 마음을 많이 건드린다. 말하는 것이 덜 두려워졌다는 말, 남 앞에 서는 부담이 약간은 줄었다는 말, 조금은 실수해도 괜찮아졌다는 그런 말. 아이들의 정성이 담긴 피드백 내용을 읽으며, 말하는 방법보다 더 귀한 것을 서로 나누고 있었음을 비로소 실감한다. 도전하고, 깨닫고, 그 안에서 작게나마 기쁨을 발견하고, 자신에게 “느린 걸음이더라도 괜찮아-”라고 말해줄 수 있게 된 마음. 이렇게 너희 스스로를 격려하는 그 성장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나는 이 길을 걸어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의 표현들 속에서 문득 깨닫는다.

이것은 어쩌면, 아주 오래 전 어린 시절의 내가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던 말이었을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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