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24
교사라는 자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외로운 곳이 되었을까.
며칠 전 제주에서 한 중학교 교사가 생을 마감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학생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누나에게 잘해라.", "아프면 병원 들러서 학교 와라." 누군가는 그를 말도 안 되는 민원에 시달리고 지친 사람이라 부르겠지만, 나는 그를 끝까지 학생을 놓지 않은 사람이라고도 기억할 것이다.
부산에서는 초등학교 교사가 싸움을 말리다 학생에게 폭행을 당했다. 그 뒤에 아동학대 신고가 따라왔다. 그가 다친 것은 몸뿐만 아니다. 교사는 교권보호위원회를 요청했지만, 되레 학부모로부터 가해자로 몰렸다.
우리는 아이를 지키려다 자신을 잃는 자리에 서 있다.
이런 사건이 도무지 끝나지 않고 반복된다. 교사들은 무력함, 허탈함을 느낀다. 2년 전, 뜨거운 여름, 광장에서 그렇게 외쳤건만, 무엇이 변했을까. 모두가 지켜보았고, 목소리를 냈고, 법이 바뀌었다 했지만.
학생 인권이 중요하다는 말. 너무도 당연하다. 또한 모두의 인권이 소중하다. 교사들은 학생의 인권을 소홀히 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렇게 당연한 인권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도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고, 우리의 감정과 노동도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이제 '교권'이라는 단어를 점점 꺼내지 않게 되었다. 예전의 교사의 지위를 말한다거나, 잃어버렸다고 생각되는 뭐, 무슨 그때의 '교권'을 되찾자는 것이 아니다. 교사도 사람이라고, 우리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이마저도 오해할까봐 말을 고르고 고른다. 서로의 '교육활동'을 보장하자고. 학교는 학생도, 교사도 안전하게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 당연한 말마저 설득이 필요한 세상에서, 교사는 점점 자신을 숨긴다. 감정을 조심하고, 표정을 관리하고, 말 한마디도 녹음되며 기록될 것을 염두에 둔다. 교사는 더 이상 한 치의 실수조차 허용되지 않는 자리에 서 있는 것만 같다.
이른바 진상 민원은 이 틈을 파고든다. 그들은 상황보다 사람을 문제 삼고, 의도적으로 확대하며, 감정으로 밀어붙인다. 무엇보다도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누군가를 짓누르고 상처 주려는 감정의 발산이 우선된다. 말도 안 되는 어떤 민원일지라도 들어야만 한다. 일선에서 모든 거센 바람을 다 맞고 서 있어야 한다. 때로는 상대의 감정을 받아내는 오물통이 되어, 쏟아지는 말과 분노를 흡수하는 처리 기계처럼 느껴진다. 우리의 감정은 그 앞에서 점점 말라간다. 존재는 지워져 간다.
내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그 사람은 단지 자기 자녀가 무언가 '당했다'는 것에 기분이 나빠했다. 부모 입장에서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아이가 상처를 받았다고 느끼는 순간, 이성적인 판단은 멀어지고 감정은 분노로 바뀐다. 그리고 그 분노는 온전히 자기 편만 들어주기를 바랐던 학교가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더 격렬해진다. 결국 그 더러운 감정을 누군가에게 묻혀야 분이 풀리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인지, 그 방향은 만만한 교사를 향하게 된다.
그는 내가 일처리를 자기 기준에 맞추지 않았고,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불쾌해했다. 교양 있는 말투로 교사로 살아온 내 양심을 싸잡아 모욕했다. 교과수업이나 생활지도 방식을 직접 본 적도 없으면서, 나를 부정하는 말을 해댔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와 문자가 왔다. 긴장을 해서 그런지 휴대전화가 울릴 때마다 놀라기도 했다. 내가 하는 설명과 해명 하나하나가 곧 새로운 꼬투리가 되었다. 말투도, 절차도, 때로는 침묵까지도 문제 삼았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교사’가 아니라, 그저 그가 무너뜨려야 할 ‘목표물’이 된 것만 같았다.
나를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부분은, 다음에도 또 이런 일이 언제든지 다시 생길 수 있다는 확신이 마음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위축된 어깨로 걷는다. 교육은 멀리 보고, 긴 안목으로 인재를 기르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일, 즉 교육백년지대계(教育百年之大計)라는 말은 진작에 어떤 구호처럼만 남아 있고, 말라버린 껍데기 같은 표현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우리는 이제 살얼음 위에서, 언제 깨지고 빠져버릴지 모르는 숨 막히는 시린 발 밑을 보고 내딛을 뿐이다.
다시 설명하고, 다시 의심받고, 다시 스스로를 검열하는 나날들. 모든 교사가 어찌 같은 마음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우리의 노력을 부정하고, 마음을 후벼파고, 마침내 우리 스스로조차 자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나날들. 그런 감정을 일으키는 '그'들은 이미 우리 곁을 지나갔거나, 지금도 마주하고 있거나, 앞으로 만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그늘을 드리운다.
교실이 점점 좁아진다. 교사의 자리는 점점 희미해진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비슷한 일로 마음을 끌어안고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 우리의 교육이라는 것이 유지되고 있다는 아이러니를 느낀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붙들어야 한다.
비록 완벽할 수 없지만, 충분히 성실했던 스스로를 믿으면서.
이 고립의 끝에서, 우리는 어떻게 다시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떤 희망을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