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증명 시대의 글쓰기 250513
정성을 담은 편지를 쓸 때를 제외하고는 손으로 글을 적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머릿속의 문장들을 꺼내놓기에 나의 글씨 쓰는 속도는 느리기도 하고, 자필로 다 쓰고 나면 완성의 뿌듯함은 있을지언정 글씨체가 멋지지도 않아 보관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사용하지 않을 때가 있더라도 꼭 가지고 다니는 블루투스 키보드를 들고 온 김에 굳이 꺼내 몇 문장씩이라도 적어두곤 한다.
요즘에는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쓰는 방식의 글도 언젠가 AI가 학습해서 똑같이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 아니, 어쩌면 지금도 벌써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사람인 것처럼, 경험한 것처럼, 마음을 담은 것처럼.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괜히 한 번은 자필로 글을 남겨보면 어떨까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한다. 손글씨만큼은 분명 사람 냄새가 나는 것이니까. 줄이 없는 종이에는 글씨가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것도, 획이 약간 삐뚤어진 것도, 동일하지 않은 모음과 자음의 크기도, 한 줄의 끝 여백이 애매하게 남는 것도 말이다.
'자필로 쓴 글 만큼은 따라할 수 없겠지?' 싶다가도 마음 한구석에선 '과연?'이라는 생각이 고개를 내민다. 아마 손글씨를 흉내내는 기술도 이미 어디에선가는 진행 중일 것이다. 사람들의 필체들을 학습해서, 'ㄱ' 모양의 기울기, 'ㅣ'모양의 삐침을 표현해내는 일, '사랑해'라고 쓸 땐, 꼭 소문자 v 같은 표시로 작은 하트를 귀엽게 그리는 습관까지 그대로 모방하는 시대가 머지않아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또 새로운 방식으로 '글 뒤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갖은 방법으로 증명하려 하겠지.
종이와 필기구가 만나는 사각사각 느낌을 좋아한다면서.
연필을 꾹 쥐고 쓰는 바람에 종이가 땀에 좀 울었다면서.
쓱쓱 지운 희미한 자국과 지우개 똥을 남겨 보여주면서.
커피 향과 함께 잠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기도 했다면서.
그렇게 며칠을 고심한 끝에 소중한 글을 겨우 완성했다면서.
그렇다 한들 "아시겠죠? 저는 사람입니다."라며 서명을 남기는 존재가 진짜 사람인지를 과연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
기술이 거세게 온다.
의심은 깊어만 간다.
이제는 SNS 계정을 사람이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홍채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는 소식도 들었다. '글 뒤에 사람이 있다.'는 한 문장을 말하기 위해서 자신의 신체정보도 선뜻 내어주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려 애쓰는 걸까.
하지만 우리의 노력이 무색하게, 언젠가는 감정도, 망설임도, 머뭇거림도 인공지능이 설계한 바에 의해 도출되는 날이 올 것이다. 사람의 말보다 따뜻하고, 감동적인 언어를 기계가 만들어 내고, 우리는 점점 무대 뒤로 밀려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감동이라는 것도, 위로라는 것도, 결국 받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라는 생각. 그게 사람의 말이든, 기계의 말이든, 그 순간의 위로는 위로가 되고, 감동은 또 감동이 될 테니까.
이미 누군가는 인공지능과 대화하는 것을 더 편안하게 느끼기도 한다. 상대의 눈치를 보며 그에게 맞춰주지 않아도 되고, 오해도 상처도 스트레스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으니까. 날 선 말, 상처 주는 표현을 하는 이보다, 조용히 들어주고 따스하게 묻는 존재를 더 선호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선택이니까.
나는 언젠가 오리라 예상되는 그런 시대가 되기 전에, 지금을 살아가며 충분히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다. AI가 사람을 정교하게 흉내 낼 수 있게 되더라도, 지금을 살아가는 나의 감정들과 경험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니까. 이 순간의 삶을 마음으로 담은 문장만큼은 아무리 닮아도 완전히 따라하지는 못할 거라고도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누군가가 글을 읽으며 시간을 들였겠다고, 애썼다고 느낀다면.
그 안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고유한 감정의 맥락을 읽어낸다면.
글쓴이가 어떤 시간을 걸었을지를 함께 떠올려볼 수 있다면.
사람이기에 느끼는 슬픔과 분노, 기쁨과 사랑이 담긴 이야기에 몰입하여
고개를 끄덕이면서, 옅은 탄식의 숨을 뱉어가면서 위로를 받는다면.
그렇기에 우리는 여전히 글을 쓰는 이유를 스스로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나의 마음을 담아낸,
오직 지금의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는 것에서.
그런 까닭에 글을 쓴다.
이 글의 뒤에, '나'라는 존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