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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른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삶으로 배우는 가르침

by StarCluster

학창시절에는 ‘촌지’라는 것이 아직 있었다. 본래의 의미에서 변질되어, 뇌물과 유사한 형태로 건네지는 은밀한 금품을 지칭하는 말. 내놓으라는 것이 먼저였을지, 보내는 것이 먼저였을지. 어쨌든 그 시작은 알 수 없지만, 다들 주는 것 같은데 우리 집만 안 주는 것은 아닌가,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억울한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싶어 울며 겨자먹는 식으로 보냈던 그것.


내가 교사가 되면, 이런 촌지는 절대 받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공부를 했다. 그러나 일하기 시작할 때쯤의 학교문화에서는 이미 촌지라는 단어는 거의 쓰지 않는 용어가 되어있었다. 또한 사회적 인식이 점차 달라져가며 청탁금지법이 논의되고 있었다. 음지에서 주고 받는 것들은 대부분 사라졌으나, 감사와 정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대외적으로 드러나도 문제 없다고 여겨지는 수준에서의 무언가를 주고 받는 정도만은 남아있었다. 그렇기에 당시에는 고마운 마음이나 호의를 표현하는 선물을 주고 받는 일이 명백히 나쁘다고 말하기도, 마냥 옳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시기였었다.


그 즈음에는 학급회장의 학부모님들께서 체육대회 같은 행사가 있는 날이면, 반 아이들과 선생님에게 먹고 힘내라고 햄버거 세트를 돌리는 일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학부모 상담기간에 학교에 방문하시는 학부모님들이 병음료 박스를 사 들고 오시곤 했었다. 연말이면 그동안 감사했다며 선생님들에게 책 몇 권씩 선물하는 분들도 간혹 있었다.

*10년도 더 지난 지금은 이런 것조차 전혀 받지 않는 게 지극히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 개인 비용으로 아이들 챙겨주는 교사는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많지만.


고마운 마음만을 전하는 거라고, 무엇을 바라는 것이 전혀 아니라고 하시니 곤란하고 애매한 것이었다. 선생님들이 정말 고생하신다고, 그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감사한 마음을 꼭 받으시라고 거듭 말씀하시며 건네시는 그것들. 마지못해 받아 들고 오시는 그 시절 동료 선생님들의 난처한 표정이 지금도 떠오르곤 한다. 용기를 내어 마음은 감사하지만 사양하겠다고 표명하는 교사도 더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두고 '유난을 떤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그랬기에 청탁금지법을 반기는 선생님들이 주변에 대다수였음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 무렵, 나의 첫 담임 시절의 일이다. 우리 반의 한 학생이 2학기쯤에 유럽으로 긴 기간 동안 체험학습을 다녀왔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는 밝고 성실하던 아이였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체험학습 보고서와 함께 내게 티팟 세트가 담긴 커다란 상자를 건넸다.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노끈으로 묶어 손으로 잡기 쉽게 만들어 온 묵직한 그 상자.


"여행하면서 부모님이랑 선생님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선생님 드리려고 열심히 골랐어요."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교사가 되기를 희망하며 내가 지니고 싶던 정체성, 늘 생각해왔던 이상(理想)은 그런 마음 앞에서 가을 바람 앞의 잎사귀처럼 흔들렸다. 나는 그 선물을, 아니 그 마음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나도 해외여행을 몇 번 다녀온 경험이 있었다. 그랬기에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또 공항에서 수하물을 맡겨가면서 이렇게 부피가 큰 물건을 싸들고 고생했을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정성인지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 평소에는 학생이나 학부모님이 주시려 했던 크고 작은 선물 앞에서 마음만 받겠다고 잘도 말해왔으면서, 이번에는 거절하지 못했다. 받을 수 없다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일단은 받아둔, 책상 옆에 잠시 놓아둔, 정성 가득 담긴 선물을 보고 있자니, 자꾸만 뱃속 어딘가가 쿡쿡 찔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다시 생각해 보았다. 다시 그 상황이 온다면? 역시나 바로 거절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 물건을 그대로 받는다는 것 또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어떤 부분도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놔두었다. 이 교무실에서 티팟 세트 상자가 채운 부피만큼 교사로서의 자부심이 어둡고 짙게 덜어져나간 것 같았다. 작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유독 그 상자만이 커다랗게 느껴졌다.


제대로 결정하지 못한 어정쩡한 태도는 무슨 일도 손에 잡히지 못하게 만들었다. 고민에 빠져 허우적댔다. 다시 돌려드릴까? 어떻게? 아니야, 학부모님이랑 학생이 같이 독서를 잘 하시는 것 같던데 책을 몇 권 사서 답례할까? 티팟 가격을 찾아서 그에 합당한 선물을 골라볼까? 무엇 하나 속시원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괴로운 마음을 가득 안고만 있다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내가 멘토로 생각하던 선배 교사를 찾아가 이야기를 꺼냈다. 그분은 내 말을 조용히 다 듣고 난 뒤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은 어때요? 그렇게 하고 나면 정말 마음이 후련해질 것 같아요?"


나는 당연히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만약 그 티팟을 돌려드리지 않는다면, 마지못해 꺼내 쓰다 보면 꼭 그 아이가 생각날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가 한 것 보다 더 무언가를 챙겨줘야 할 것 같아요. 뭐라도 해주지 않으면 한 구석이 계속 불편할 것 같아요."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선배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그렇죠. 내 마음이 편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나는 그런 일이 생기면 늘 돌려드리기는 했어요. 그런데 그냥 돌려주면 오해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그러니까 내 입장을 담은 편지를 꼭 써서 같이 드렸어요. 하지만 결국 결정은 선생님이 하는 거예요. 잘 고민해봐요."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을 생각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감당하기 어려운 정성을 조심스럽게 거절하는 방법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밤이었다. 그날 밤, 심사숙고하여 마음을 정리한 끝에 편지를 썼다.


학부모님 안녕하세요. 학부모님과 ○○이가 여행을 잘 다녀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학습태도도, 교우관계도 훌륭하여 제가 평소에 정말 기특하다고 생각하는 ○○이, 그리고 늘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시는 학부모님께서 저를 생각해주셔서 먼 곳의 여행지에서도 귀한 선물을 챙겨와주신 마음을 생각합니다. 처음에 이 선물을 보고 당연히 거절했어야 했지만, 그 마음이 너무나 크게 느껴져 바로 이 물건을 돌려드리지 못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보답을 해드릴까 생각도 했지만, 그렇게 제가 이 물건을 받게 된다면, 앞으로 ○○이에 대한 저의 자세를 어떻게 취해야 할지에 대해 많이 고민이 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어른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 스스로가 바르고 떳떳한 뒷모습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 물건을 다시 댁으로 보내드립니다. 다만 ○○이와 학부모님께서 저와 교육활동을 생각해주시는 마음은 고스란히 간직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이와 함께 즐거운 학교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날 학생을 불러 잘 설명하고, 자필로 꾹 눌러 쓴 편지와 함께 티팟 세트 상자를 다시 가정으로 돌려드렸다. 그리고나니 정말 선배 선생님의 말씀처럼, 마음에 어떠한 찝찝함도 남지 않았다. 교무실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상자가 없어진 만큼 너무나도 후련해진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 또한 그 학생 및 학부모와도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작지만 중요한 순간의 선택 하나하나가 교사의 태도를 바꾼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교사의 말보다 뒷모습을 통해 아이들이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말이 단지 그럴듯한 문장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진실이라는 것을 짧지 않은 시간을 근무하면서 배웠다. 내가 하는 표현과 선택으로 살아내는 삶의 결이 아이들에게 어떤 달변가의 말보다 깊은 하나의 문장으로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수많은 상황 앞에서 흔들리고, 고민하고, 때론 실수도 많이 했다. 그렇지만 그 시절의 티팟 세트를 떠올리며, 지금도 살아 있는 편지 속 하나의 문장을 다잡고 살아보자 다짐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걸어온 길을, 그 뒷모습을 보며 따라 걸을지도 모를 소중한 아이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지만, 스스로를 의식하며 올곧은 자세로 발걸음을 디뎌보자고 오늘도 마음 먹어본다. 나 역시 복도 끝을 묵묵히 걷던 그 선배의 뒷모습을 따라 여기까지 오게 되었으니까.




ⓒ 2016. StarClu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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