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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수업

240829

by StarCluster

수업 시작하는 인사를 하고 나니 몇 명의 학생들이 요청해왔다.


"선생님~ 재밌게 수업해 주세요."


일주일 시간표에 고작 2번 들어 있는 도덕 수업이라, 차마 놀자는 말은 못했구나 싶었다. 그래도 수업에 대한 기대를 표현해 준 것이 고마웠다. 수업을 재미있게 하는 것은 교사 인생의 숙제이자, 매번 고민하는 일이기에 평소에 했던 생각을 들려주었다.


"글쎄, 재미있는 수업이란 건 사실 없는 걸지도 몰라."


아이들의 수많은 물음표가 담긴 반응들을 본다.


"실은, 너희가 재미있어하는 수업이 있는거야."


이번에는 물음표 속에 하나 둘 씩 느낌표가 솟아오르는 반응들을 보며 살짝 웃었다. 그 짧은 대화를 선문답처럼 남기고 이제 진도 나가자며 학습목표를 같이 읽었다. 힘차게 읽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래도 마음은 잘 전해졌나보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어지는 수업도 아이들의 마음에 들기를 바랐다.




재미있는 수업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늘 느낀다. 많은 수업이 진도를 따라가느라 내용을 전달하는 데 집중되곤 하지만, 그런 기초가 어느 정도 쌓이고 나면 아이들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힘으로 주제를 스스로 고민하고, 자기만의 생각으로 수업의 빈틈을 채워나가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함께 만들어가는 수업이 실현되기도 한다. 이런 수업은 종종 예상하지 못한 재미와 울림, 그리고 감동을 함께 안겨준다.


이런 수업을 마치고 나면, 내가 아이들에게 무언가 좋은 것을 건넨 사람처럼 보람이 밀려온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감정은 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꺼내고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교사만이 누릴 수 있는, 아주 특별한 행운일지도 모른다. 일방적으로 내용을 전달한 수업이 아니라, 아이들이 각자의 목소리로 수업을 완성해 주었을 때에야 비로소 '잘 가르쳤다'는 마음이 들곤 한다.


교직에 첫발을 디뎠을 무렵, 나는 수업 중에 '틈'이 생기는 것을 잘 견디지 못했다. 중간에 시간이 비거나, 아이들이 잠시 생각에 잠긴 그 정적이 어찌나 어색하고 불안하던지. 그래서 나는 늘 흐름을 놓지 않으려 했고, 칠판 앞에 서서 무엇이든 계속 설명하며 알려주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속에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나는 수업의 통제권을 놓는 일이 두려웠던 것 같다. 내가 한 마디라도 하지 않으면 수업이 멈춰버릴까 봐, 계획한 것에서 벗어나면 실패처럼 느껴질까 봐 걱정이 앞섰다. 어쩌면, 아이들을 온전히 믿지 못했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잠시 틈을 주었을 때, 과연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주제 안으로 자연스레 들어와 줄까, 아니면 멀리 어디까지 가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 늘 따라붙었다.


하지만 수업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시도할수록, 아이들은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깊은 이야기를 꺼내놓고, 내가 의도한 것 이상으로 수업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경험은 수업을 철저히 일방적으로 통제하는 방식보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하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구조와 환경을 잘 마련하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수업을 유연하게 설계하고, 엉뚱하거나 모난 답에도 열린 마음으로 반응하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수업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각자의 표현 방식으로 자기 삶의 고민을 다루는, 작지만 아주 소중한 출발점 앞에 서는 모습을 여러 번 보게 되었다.


이런 시간이 쌓이면서 조금씩 깨달아갔다. 수업 속에 그런 '틈'이 있어야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그 틈에서 질문이 생겨나고, 서로 다른 의견이 부딪히며 생각이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을. 정해진 교과서적 결론을 향해 가는 수업이라 하더라도, 그 길을 아이들 스스로의 사유와 물음으로 찾아갈 때, 그 결론은 훨씬 더 깊은 울림을 갖는다는 것을. 아이들의 생각이 숨 쉴 수 있도록 수업에 여백을 남기고, 예상치 못한 질문에도 열린 마음으로 반응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함께 수업을 만들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 이는 단순한 수업 방식의 변화라기보다는, 교사인 내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였다.


이제는 그런 틈을 보물찾기처럼 미리 마련해두기도 한다. 수업 준비를 하며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순간, 말없이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 수 있는 그 여유와 조용한 틈을 수업 속 어딘가에 심어두는 즐거움이 있다. 그렇게 교사의 안내 속에서,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고 그 생각들이 맞물려 더 깊어지는 수업의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그 당시에도 참 반가운 일이지만, 시간이 지난 뒤 문득 떠올릴 때면 가만히 웃게 되는 기억으로 남는다. 유난히 마음에 남는 수업, 정말 좋았던 하나의 장면이 된다.


어떤 하루, 가정에서 겪은 갈등을 각자 털어놓고, 선정된 사연을 반 친구들이 청취자가 되어 함께 고민해본 수업의 한 장면처럼, 고맙게도 아이들이 재미있다며 좋아해준 여러 수업들이 몇몇 있었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 느꼈던 보람과 성취감의 결을 하루의 끝자락에 조용히 갈무리한다. 그것들은 교사로서의 길을 계속 걷게 해주는, 감정의 교류이자 따뜻한 마음을 담은 기록이 된다.


그런 순간들이 쌓여간다. 수업은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가진 존재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자신의 마음으로 상대를 비추어주는 시간이라는 것을 점점 더 실감한다.




수업을 돌아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 또한 오롯이 혼자만으로는 빛을 낼 수 없겠다는 생각.


만약 누군가가 빛나 보인다면,

그 빛은 바라보는 이의 마음에 있을 것이다.


어떤 이의 삶이 빛난다면,

그것은 누군가가 그 사람을 진심으로 대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정해 주고, 우러러봐 주고, 조용히 박수를 건네주고,

반짝이는 눈으로 그 사람을 바라봐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를 빛나게 해 주는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나와 함께하는 이들이 나로 인해 더 빛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교사의 보람은 없을 것 같다는 것 또한.






ⓒ 2024. StarCluster / 갈등 사연 라디오 수업에서 학생 청취자 사연 및 답변 등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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