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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을 잘 하는 사람

230803

by StarCluster

책상 위에는 학생들 생기부 작성을 위한 각종 서류들이 흩어져 있고, 나이스 화면에는 숫자와 등급, 평균값이 어지럽게 시야를 채운다. 이제 도덕 교과 세부능력 특기사항을 쓸 차례. 학생들의 이름 옆 받은 점수들을 보며 문득 생각한다. 정말 이 숫자들이 아이들을 잘 설명해줄 수 있을까? 성적을 정리하며 교과별 점수를 들여다보다 보자면, 숫자들이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 같다가도, 어딘가 미처 설명되지 않는다는 허전함이 자꾸 남는다.




카페에서 친한 동료 선생님들이랑 대화하던 와중에 이런 생각을 나누었다.

“각 과목별 잘하는 아이들이 있잖아요. 국어 잘하고, 영어 잘하고, 수학 잘하고. 근데 도덕은 ‘잘 한다’는 말이 조금 어색한 거 같지 않아요?”


선생님들이 피식 웃으며 각자의 손에 든 다양한 음료 같이 대꾸를 했다.

“그러네. 도덕을 잘한다는 말, 왜 이렇게 어색할까요?”

“도덕 수행평가 만점 받으면 도덕적인 사람인 건가..?”


내가 답했다.

“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죠.”


짧지만 씁쓸한 웃음이 오갔다. 우리는 음료를 한 모금 마시며 다시 말을 꺼냈다.

“진짜 생각해보면, 이상한 말이기는 해요. ‘그 아이는 도덕을 잘해.’ 그런 말, 잘 안 하잖아요.”




수학을 잘한다는 것은 문제를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답을 찾아내는 힘이다. 계산이 빠르거나 공식을 많이 아는 것도 물론 도움이 되지만, 결국 중요한 건 그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하는가 하는 태도다. 어떤 아이는 문제 한 줄을 곰곰이 읽다 "이렇게도 풀 수 있겠네요?" 하고 새로운 방식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럴 때 수학의 본질을 다시 보게 된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단어를 많이 알고 문장을 정확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그 언어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을 이해하고, 또 마음을 담아 말할 줄 아는 것, 그런 모습에서 영어를 잘한다는 의미가 더 깊어진다.


그렇다면 도덕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가르치는 것에서부터 생각해보았다. 아이들과 만나는 수업에서,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 선한지를 이야기한다. 다양한 가치들을 내면화하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노력을 하자고 말한다. 때로는 공동체 안에서 지켜야 할 규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가 다짐하고 마음 먹은 것을 행동하면서 살아가자고 한다.


결국 도덕이란 외워서 답하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상황을 깊이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줄 아는 능력을 키워가는 과정이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마음 앞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물론 앎이 있어야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배움이 필요하고, 배운 것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는 평가는 중요하다.


하지만 숫자 몇 개로 아이들의 도덕적 성장을 평가하거나 설명하는 일에는 늘 한계가 있다. 성적표에 적힌 등급이나 점수만으로는 그 아이가 타인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어떤 마음으로 행동하려 애쓰는지를 담아낼 수 없다. 교사인 나 역시 그것을 온전히 담아내는 말 한 줄을 쓰는 일이 언제나 쉽지 않다. 그래서 ‘도덕함’은 평가로 재단할 수 없는 영역이고, 배움이라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길러가는 것이다.




조금 무거워진 이야기 뒤에는 늘 우스갯 소리가 따라 붙는다.

“학생들이 잘 하려고 다니는 각종 학원들이 있는데, 옛날 훈장님 계시던 서당은 있었어도, 지금 시대에 도덕학원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네요.”


여러 반응이 돌아왔다.

“도덕학원이라니, 정말 재밌다. 거기선 인내심이 부족하면 보강 수업해주겠지?”

“‘방과후 배려력 향상반’, ‘방학 공감 특강’ 같은 거 열리고 말이에요.”


“아마 그런 학원이 있다면, 저부터 등록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우리는 이런 식의 농담을 던지며 한참을 웃었다.


그런 담소를 나누던 중에 문득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가르침이 제자에게서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지고, 때로는 가르친 이가 미처 닿지 못한 곳까지 이르게 될 때, 그 모든 순간이 스승에게는 가장 뭉클한 보람일 것이다. 도덕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아이들이 얼마든지 멋진 도덕적 인격자로 성장하기를 바랐다.


“도덕이 정말 매력적인 것은, 덕(德)이 있는 학생은 절대 건방질 수가 없다는 점에 있는 것 같아요. 진정으로 도덕적인 학생이라면, 자신이 도덕을 잘 한다고 해서 결코 무례하지 않을테니까요. 오히려 더 존중하고 더 겸손할테니까요.”

그렇게 우리는 ‘가르칠 수는 있어도, 점수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도덕이라는 과목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었다.




아이들도 한 번쯤은 가르치는 사람의 도덕성이 궁금해지는 때가 있는 것 같다.

내 학창 시절 도덕 점수를 알 도리가 없으니, 수업 시간에 직접 묻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선생님— 선생님은 도덕적이세요?”


어느 날 한 아이가 수업 중에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웃으며 넘길 수도 있는 질문이었지만, 단순한 농담 이상의 것이 담겨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도덕을 가르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말하는 ‘옳음’을 얼마나 지키며 살아가는지를 어쩌면 아이들도 알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럴때마다 너무 무겁지도, 또 너무 가볍지도 않게, 웃으며 대답한다.

“그냥, 부끄러울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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