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그 상황에서 무엇 때문에 속상했을까요?"
그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해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생각이 깊어진 그의 곁에서 차분히 기다리는 동안, 상대를 바라보던 시선을 잠시 거두는 것은 습관인지, 혹은 그를 편하게 배려하려는 마음일지를 가늠해보면서.
잠시 침묵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사실… 너무 사소한 거라서 누군가에게 말하기에도 부끄러울 때가 있잖아요." "아, 맞아요. 오히려 그런 사소한 것들이 자주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기분 탓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남은 하루를 버겁게 보내기도 하고요."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어느 저녁이 있었다.
살다 보면 아주 사소한 한마디에 마음이 속절없이 흔들릴 때가 있다. 평소 나를 잘 안다고 믿었던 사람, 친근하다고 여겼던 사람에게서 나온 말일수록 더욱 그렇다. 차라리 낯선 이의 명백한 악의나 무례함이었다면 '당신의 태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면 그만일 텐데. 의도나 태도가 모호한 경우에는 상대를 이해해보려 애쓰다, 그 '이해'라는 것이 잘 되지 않아 답답한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나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게 된다.
'나는 왜 이런 말을 가볍게 넘기지 못하고 이토록 기분이 나쁠까?'
돌이켜보면 그런 사소한 말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때로는 내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서, 심지어는 나를 향한 말이 아닌 대중매체 속 한마디에도 감정이 요동치곤 했다. 고작 그런 사소함에 반응하는 내가 싫었고, 내 그릇이 이것밖에 안 되나 싶어 쉬이 잠들지 못했던 자괴감의 밤을 보낸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단지 잊어버리려고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지러운 상념이 들 때 무작정 '잊자'고 다짐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할수록 자꾸만 머릿속에 코끼리가 등장하는 것처럼. 애써 외면한 감정은 마음 한구석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더 짙은 얼룩을 남기곤 했다.
결국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회피가 아닌 직면하는 용기였다. 그것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적절한 종결 의식을 치러 감정을 흘려보내는 과정. 그것을 시작할 수 있는 힘.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혼잣말을 하듯 내가 느낀 것들을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그 상황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당황스러웠어.' '억울하네. 그런 말을 듣고 싶진 않았는데.' '그 얕잡아보는 듯한 말투가 유난히 날카롭게 찔렀지.'
누가 듣는 것도 아니지만, 감정을 구체적인 언어로 꺼내놓으면 묘하게 마음이 정돈되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캄캄한 방 안에 촛불 하나를 켠 듯했다. 어둠 속에 묻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윤곽을 드러냈다. 그러다 보면 그 감정 너머에 숨어 있던 나의 욕구와 마주하게 된다.
'사실은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이 내게 있었던거야.'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무안을 당하는 게 나는 유독 싫은 사람이구나.'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여지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네.'
타인의 마음도, 벌어지는 상황도 내 뜻대로 통제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늘 나름의 이유와 상처가 있었다. 그것은 굳이 남에게 설명할 일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내어놓으려 생각해보아도 선뜻 내키지 않는 종류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나 스스로를 알아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품고 다독이며 말을 건넨다.
'그래, 그것 또한 나야.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겠어. 나는 다음에는 분명 더 나은 모습이 되어 있을 거야.'
이것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돌보는 내적 대화가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깨닫는 것들이 있다. 내가 느끼고 싶은 감정만으로 '나'라는 사람이 완성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생경하고 불편한 감정이 밀려오더라도 외면하지 않는다면, 그 감정과 나란히 걷는 법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부정적인 감정에 그저 휘둘리거나 끌려다니는 시간이 점차 줄어드는 것만으로도 나를 더 지켜낸 하루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떤 마음은 자신이 온전히 받아들이고 용납해야만 비로소 완결되는 일종의 과제와도 같다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화를 내고 실망했던 스스로와 비로소 화해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외면하면 할수록 미완으로 남아 나를 괴롭히는 마음. 그 사소한 말과 행동에 상처 입은 마음을 결코 사소하게 다루지 않고 직면할 때 우리는 한 걸음 더 성숙한 방식으로 다음 장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어본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날것 그대로의 욕구를 마주하는 건 여전히 어색하고 낯선 일이니까—
그날 밤, 함께 대화 나누었던 소중한 이가 흔들리는 감정 앞에서 자신만을 너무 탓하지 않기를 바랐다. 지난 시절의 나처럼 스스로를 괴롭히며 밤 지새우지 않기를, 한 발 뒤로 물러나 더 깊이 이해하게 된 자기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기를 바랐다.
내 마음을 요동치게 했던 그 사소함. 그 안에는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낯선 세계로 향하는 작은 문이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문의 손잡이를 잡을 용기, 문을 열고 걸어갈 힘을 그에게 건네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