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하게 살기, 단정하지 않기

by StarCluster

사회 초년생 시절의 일이다. 분명 알람 소리에 깨어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여전히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스스로에 화들짝 놀라 일어난 적이 있다. 다시 잠들었다가 출근 준비를 하는 꿈을 꾼 것이다. 아침식사는 커녕 물 한 잔 마실 틈도 없이, 용케 지갑 등을 챙겨 정신없이 집을 나섰다.


한참이 지나서야 거울 앞에 설 여유가 생겼다. 옷장 속에 고이 접어두었던 옷을 급히 꺼내 입은 탓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깊은 구김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별것 아니라며 애써 넘기려 했지만, 하루 종일 그 구김이 신경 쓰였다. 결국 퇴근길까지 조금은 불편한 마음을 안고 다녀야 했다. 아마도 그날의 구김은 옷보다 마음에 더 선명하게 남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생각보다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나조차 오늘 같은 사무실에 앉아 있던 동료가 어떤 색감과 재질의 옷을 입었는지, 솔기의 마감은 어땠는지 상세히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저 서로의 대략적인 ‘이미지’만을 떠올릴 뿐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사실이 내 마음을 더 건드렸다.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남은 찝찝함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신경 써서 단정한 차림으로 하루를 시작했더라면, 적어도 나 자신 앞에서는 당당하고 안정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었다.


그날 이후 옷을 입기 전에는 꼭 한 번 더 살펴보고 구겨진 부분을 다린 뒤에야 현관을 나선다. 하루를 시작하며 입은 옷 때문에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만, 충분히 펴낼 수 있을 만큼. 약간은 느리더라도, 조금은 정성스럽게.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일은 단정한 겉모습으로 내면의 질서를 세우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저 타인을 위한 차림이 아니라,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한 최소한의 의식인 셈이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작은 구김 하나에도 하루 종일 마음이 쓰였던 것처럼, 타인의 마음 또한 나의 무심한 말과 태도 하나로 허망하게 구겨질 수 있겠다고. 단정함이란 나 혼자만의 만족을 넘어, 타인의 마음을 대하는 예의이기도 하겠다고.


타인의 의도를 내 멋대로 ‘단정(斷定)’ 지을 때, 상대의 마음에는 깊은 구김이 생긴다. 상대를 함부로 판단했던 날들을 돌이켜본다. 누군가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되었을 말들. 조급함으로 관계를 밀어붙이며, 단단히 채워져 있던 신뢰의 단추를 툭 끊어지게 했던 태도들.


그의 말을 중간에서 끊어버리고, 다 듣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오만함이 내게 있었다.


“아니, 네 말은— 의도는 결국 이런 거잖아.”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

라는 식으로 그의 진심을 구기고 비볐다.


단정 지으며 내 생각의 틀 안에 상대를 가두었다. 미처 다 말하지 못한 수많은 이유를 고려하지 않은 채, 내 판단이 곧 그의 전부라는 확신을 손쉽게 선택했던 것이다. 운 좋게 한두 번은 맞았을지 몰라도, 결국은 틀릴 수밖에 없는 판단들. 그리고 언젠가 사과해야 할지도 모를 울퉁불퉁한 흔적들. 그러한 태도는 그 무엇보다도 상대에게 ‘억울함’이라는 지워지지 않는 자국을 남기는 일이었다.


물론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살아가며 축적된 경험과 직관이 가리키는 ‘느낌’은 무시할 수 없는 삶의 지표라고. 나도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발동하는 본능적인 판단이나 경험에서 비롯된 확신은, 때로 효율적인 방어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판단이 내 안에 머무는 것과, 그것을 밖으로 꺼내 표현해버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속으로 드는 생각은 어쩔 수 없더라도, 그것을 성급하게 말과 태도로 드러내지 않는 것, 그것이 관계의 예의일 것이다. 내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두는 태도. 여전히 그것이 단정한 관계의 핵심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단정하지 않는 태도란, 단순히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행위 그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상대가 자신의 진심을 제 속도대로 펼쳐 보일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시간의 미덕’인 것이다. 기다림은 상대가 마음의 결을 스스로 정돈할 수 있도록 틈을 내어주는 배려가 되며, 그 여백 위에서 관계는 비로소 반듯해질 기회를 얻는다.




서두른다고 다림질이 잘 되지는 않았던 시간들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관계의 단정함 또한 그랬던 것도 생각해본다. 시간 위에서 천천히 펴내는 과정을 겪으며 비로소 부드러운 결로 남았던 그것들. 때문에 말과 단어, 입술과 호흡 사이에 의도적인 여유를 남겨두는 삶을 살고 싶었다.


“조금 더 잠자코 들어볼게.”

“네가 말을 충분히 할 때까지 기다릴게.”


이 약속은 상대를 쉽게 판단하는 대신, 그가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차려입을 수 있도록 곁을 지키겠다는 다짐이 되었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서로의 마음을 구기는 날카로운 ‘단정(斷定)’이 아닌, 서로의 구겨진 삶을 다정하게 펴주는 단정(端正)함 그 자체가 되기를 바랐다.



201507.JPG © 2015. StarClu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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