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왜 이렇게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걸까. 거대한 질량은 시공간을 뒤틀어 시간을 늦춘다고 하던데, 어째서 사람의 마음은 사랑이라는 커다란 인력 앞에서 찰나의 순간으로 수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마음 다해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과의 교류는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렇기에 아끼고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무엇이든 내어주고 싶다는 마음의 진실됨을 믿는다. 그러나 모든 진심이 언제나 실현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돕는 사람의 필연적인 딜레마가 시작되는 지점이 있다. 소진의 경계 앞에서 상대를 선택해야 할지, 나를 선택해야 할지 갈등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를 챙기느라 당신이 지칠 때는 누가 당신을 챙겨주나요."
이런 질문을 받은 적도, 건넨 적도 있었다. 이 말은 종종 사랑의 마음이 가득하여 도움에 몰입한 나머지 과열되고 지친 이들을 향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돕는 존재이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 또한 상기시켜 주었다.
체력도 마음씀도 무한하지 않다는 당연한 현실을 사랑의 감정이 가득 넘쳐나는 시점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곤 한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지속 가능한 사랑의 방식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오늘만 사는 사람이 아니기에, 그리고 내일을 살아갈 자신도 물론 소중하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감정적 짐을 나누어 짊어지는 일, 애쓰고 함께 싸워주는 일. 누군가를 돕는 마음은 그 자체로 참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되면 때로는 자기 마음을 갉아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나를 돕던 이들이 스스로를 잃지 않기를 바랐던 적이 있다. 그가 가진 빛이 바래지 않기를, 그의 삶 또한 온전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 적이 있었다. 도움을 받는 수혜자였음에도 오히려 돕는 사람의 안부를 걱정해야 했던 그 역설적인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다.
한때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아보라'는 말을 열정의 상징으로 여겼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찬란해보이는 말 뒤에 숨은 소진의 깊이도 함께 생각해보곤 한다. 밑바닥까지 장작을 다 써버린 후에 찾아오는, 흩어진 재와 같은 시간들을 말이다. 그 공허를 겪으며 정작 더 중요했던 다음번에는 차마 내밀지 못하고 손을 거둘 수밖에 없었던 경험도 있었다. 이로 인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절제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곁의 아끼는 존재를 향한 도움이 '불'이라면, 그것은 순간의 작열이나 번쩍이는 불꽃이기보다는 긴 여정의 등불이라면 좋겠다. 불꽃을 크게 만들겠다고 다 태워버리면, 결국 어둠 속에 남겨지는 것은 자신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돕는 마음에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 선(線)은 관계를 차단하는 장벽이 아닌, 너와 나의 연결을 오래도록 지켜주기 위해 여닫을 수 있는 문이 되어준다. 그것은 내면의 결심을 넘어, 관계 속에서 소통하며 함께 조율하고 다듬어가는 숨 고르기의 지점이 되어준다. 시간과 공간, 능력에 있어서 유한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무릅쓰더라도 자신을 지키는 연습이 꼭 필요하다.
"지금은 더 이상 들어줄 힘이 남아 있지 않지만, 잠깐 회복의 시간을 갖고 나서 꼭 네 이야기를 들을게."
"내 힘만으로는 어렵지만, 우리는 함께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네 말이 분명 옳아. 그와 동시에 내 마음도 옳다는 것을 알아줘."
이런 말들은 당장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용기 있는 솔직함이다. 자신을 지키면서도 상대를 버리지 않겠다는 이 소통의 약속은 소진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단절보다 훨씬 깊은, 장기적인 신뢰를 쌓아간다.
도움에도 서로 발을 맞추는 리듬이 필요하고 사랑에도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따뜻한 사람이, 그렇게 귀한 마음을 가진 이가 스스로에게만큼은 모질지 않기를 바란다. 그 선한 마음이 마르지 않도록, 쭉 이어질 수 있도록, 넓게 퍼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먼저 돌볼 줄 아는 '선의의 이기심'과 '지혜의 이타심'을 겸비하기를 소망한다.
나 또한 소중한 이들을 계속해서, 그리고 더 깊이 사랑하고 싶다. 그렇기에 나의 유한함에 맞닥뜨리게 되고, 한계를 겸허히 인정해야 하는 과정을 매번 겪게 된다. 다만 고백하는 것은 앞으로도 지금 나의 '한계만큼만' 사랑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 때때로 그 선을 위태롭게 넘어서곤 하는 것이겠지만-
한계라는 벽에 부딪혀 무력하게 멈춰 서거나, 한계를 무시하며 나를 태워버리면서 공허하게 스러지고 싶지만은 않다. 그 울타리를 조금씩 뒤로 밀어내며 넓어지고 단단해진 땅에서 그들을 만나고 싶다.
오늘도 사랑 속에서 살았던 나는 여전히 유한한 존재임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 한계를 가만히 알아차리고 지친 숨을 가다듬는 일, 스스로를 돌보는 일은 결코 뒷걸음질 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결국 더 오래, 더 따뜻하게 사랑할 수 있는 미래의 나를 준비하는 일이다.
소진의 경계를 지혜롭게 확장하며, 그 너른 땅에서 내게 허락된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내게 주어진 시간만큼 끝까지 품을 수 있기를.
나는 이것이 길고도 깊은 사랑의 방식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