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며 만나는 나, 쓰던 나를 만나게 해주는 글

브런치북 연재 완결 | *편지글

by StarCluster

하루의 힘을 대부분 소진하고, 무언가에 더 집중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은 적막한 시간. 마냥 눕고 싶지만은 않아, 의자에 걸터 앉은 채 내 몸의 무게를 덜어낸다. 글을 쓰는 계정을 열고서 예전에 올렸던 글들을 천천히 다시 되짚어보곤 한다. 아울러 이런 생각도 해본다. 나의 글을 가장 많이, 그리고 깊이 빠져들어 읽는 독자는 결국 나 자신일 것이라고.


썼던 문장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하나 하나 단어를 고르던 순간의 감각이 되살아난다. 글을 쓴다는 것은 흩어지기 쉬운 경험과 감정을 내 안의 언어와 표현으로 단단히 붙잡아두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 묶음 속에서 그때는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굳게 믿었는지를 떠올려본다.


그렇게 과거의 나 자신과 조용히 재회하는 밤. 지금은 그때와 다른 시간을 살고 다른 시선을 갖게 되었지만,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었던 마음만은 문장들 속에 선명히 남아 지금의 나를 이끌어온 흔적이 되었다.


여러 시간이 지났음에도 글은 감정의 형상을 품으며 곁에 머물러 있다. 변하는 것은 그것을 읽는 시선이라는 것도 문득 깨닫는다. 같은 문장을 읽어도 매번 조금씩 다른 마음이 드는 것은 사건과 상황을 바라보는 내가 그만큼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윽고 글을 쓴 자아와 글을 읽는 자아 사이에 깊은 대화가 시작된다. 과거의 내가 남긴 미숙했던 다짐들은 현재의 나를 일깨워주기도 하고, 더 많은 시간을 통과해온 지금의 나는 서툴렀던 과거의 나를 너그럽게 토닥여준다. 글을 쓰던 과거의 나와 그것을 읽는 현재의 나. 이 둘은 시간을 뛰어넘어 서로에게 위로를 건넨다.


문장이 아름답다거나 글이 완성도 있어서 내가 쓴 글에 이토록 깊이 빠져드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을 쓴 '나'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 차마 말하지 못했던, 다 담지 못했던 행간의 속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 여백에 한때의 망설임이 서려 있다. 솔직히 다 드러내지 못한 내용 안에 부끄러움이 숨어있다. 쓰다 멈춘 문장에 끝내 꺼내지 못한 고백이 담겨 있다. 과거에는 미처 몰랐던 감정이 지금에 와서야 선명한 의미를 얻고, 현재의 시선으로 완성되는 문장도 있다. 그 모든 입체적인 배경을 아는 필자이자 독자이기에, 자신의 글을 읽는 경험은 언제나 특별한 일이 된다.


오늘도 하나의 글을 세상에 띄워 밀어보낸다. 언젠가 다시 읽게 될 미래의 자신을 위한 기록이자, 나와 비슷한 사색을 하던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서. 나를 떠난 글이 훗날의 나, 그리고 타인의 마음속에 잠시 머무를 때, 비로소 문장은 다시 숨을 얻는 것만 같다.


나에게 글쓰기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넘어, 그 사이에 숨겨둔 마음까지 돌보며, 현재의 나를 새롭게 길러내는 과정이 되어준다. 그래서 오늘도 마음을 다해 내어놓은 문장 앞에 앉았다. 이 시간이 또 다른, 더 나은 나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마주할 미래의 내가 가만한 안부를 물을 것이다.


그때의 진심을 잊지 않고, 잘 살고 있느냐고.



© 2025. StarCluster




*편지글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작가님들, 독자님들 안녕하세요.

이 글을 마지막으로 '헤아려보는 삶의 태도들'의 계획했던 브런치북 연재를 모두 마치게 되었습니다.


2025년 봄, 브런치 작가로 승인을 받으면서 단순한 취미였던 글쓰기가 제 삶의 일부가 되었음을 실감합니다. 관심을 갖고 찾아와 읽어주신 여러분 덕분에 한때 바랐던 에세이 크리에이터 선정의 기쁨도 누리고, 썼던 글들을 브런치북으로 묶어서 공모전에도 응모해보고, 새로 시작한 이 브런치북 연재도 두 달 반의 기간에 걸쳐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해를 건너 새해의 며칠이 조용히 흘러가고 있네요.


실은 쓰고 싶은 장편의 소재가 생겼습니다. 아이디어가 생겨 몇 주 전에 단편을 써 보았다가, 점차 이야기가 확장되고 그 흐름에 빠져들어서, 가볍게 시작했던 마음과는 달리 쉽게 놓을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네요. 글쓰기의 즐거움과 몰입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글을 쓸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여전히 많지 않다는 것은 늘 아쉽습니다. 건강과 일상 생활에, 그리고 맡은 역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만 쓰자고 마음 먹어보아도, 머릿 속에 둥둥 떠다니는 말과 생각들을 선명하게 적어내는 과정은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니까요. 한편으로 아이들이 놀아달라고 저의 팔을 이끄는 그 소중함 또한 놓칠 수 없는 것이기에 책상에 앉은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바로 일어나곤 했던 기억도 많습니다.


때문에 당분간은 새로운 소재에 제게 주어진 남은 시간을 할애하고자 합니다. 메모해두었던 다른 글감들이 가득이지만, 아무래도 이와 병행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마음에 드는 글을 완성하기까지는 언제 글을 다시 올릴지 기약 없는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작가'라는 호칭에는 커다란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그만큼 여기서 서로를 존중하며 일컫는 마음과 함께 글을 쓰고 또 읽었던 시간이 좋은 기억으로 남습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라고 생각해보아요.


이제는 세상에 나올지, 아니면 저에게만 머무를지 모를 글을 어디선가 쓰고 있겠지만, 그 동안에도 이곳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으며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에는 댓글로 만나고 교류도 나누면 좋겠습니다. 저 또한 더 읽고, 더 경험하고, 더 쓰고, 더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바라요.

여러분들께서 소망하는 선한 일들에 매일 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사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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