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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깔처럼 흘러가는 감정의 열차

Trem das Cores

by 송영채

둘째에게,

엄마가 오늘 소개할 노래는 ≪Trem das Cores≫(색깔의 기차)라는 노래란다. 노래의 도입부는 기차의 바퀴가 굴러가는 듯한 소리, 그리고 경적 소리가 아름다운 화음으로 이어진단다.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가는 기차, 알지? 전기로 부드럽게 가는 기차 말고 석탄을 태워서 얻은 동력으로 칙칙폭폭 흔들리며 가던 기차 말이야.


이 노래는 바로 그런 기차를 타고 가면서 만나는 풍경의 향연이 이어져. 언덕 끝의 오렌지빛, 눈동자의 꿀빛, 산의 금빛, 달과 별의 빛… 이렇게 색과 빛깔들이 춤추듯이 흐르며, 공간과 시간, 그리고 풍경과 기억이 잔잔히 얽혀 흘러간다. 언덕, 산, 별, 아이들, 집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랑하는 이의 머리와 입술까지…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이미지들이 차례로 흘러가며, 듣는 사람의 기억과 감정들까지 불러 일으킨단다.


기차의 은빛

달과 별

터키석 반지


세상의 모든 원자가 춤추고

새벽은 빛나고, 안개는 아른거려

석류색 피부의 아이들이 기차 칸에 타고


올리브색 회색 구름이

아침 풍경 뒤로 물러나고

사과를 감싸는 파란 종이의 비단결 같은 감촉


≪Trem das Cores≫ 가사 중




듣다 보면 우리가 사는 인생도 이렇게 기차를 타고 만나는 장면들의 연속이 아닌가 싶어. 우리는 보통 색깔을 하나하나 구분하여 이름을 부르지만,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색은 흐름이라는 거, 아니? 하늘에 피어오르는 무지개도 자세히 보면 문질러 놓은 듯한 희미한 경계로 색들이 함께 흐르고 있잖아. 기차를 타고 바라보는 풍경도 색깔처럼 서로 얽혀서 시작도 끝도 없이 함께 흘러가고 있는 게 아닐까?


둘째야, 엄마가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엄마는 사랑스러운 네 얼굴, 그중에서도 눈물이 고여 있는 네 얼굴이 떠올랐단다. 감수성이 풍부한 너는, 가끔 어떤 슬픈 생각이나 감정이 떠오르면, 그 감정에 사로잡혀서 힘들 때가 있어. 엄마도 그랬던 적이 많아서 네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한단다. ‘엄마 슬픈 생각이 계속 떠올라서 힘들어요.’ 하고 말하는 너에게 엄마는 푸른 하늘을 떠올려 보라고 말을 해주곤 했지.


어떤 날은 하늘이 구름으로 가득 차서 푸른 하늘이 보이지 않는 날도 있지만, 그 구름도 다 흘러가 버리고, 결국 푸른 하늘은 다시 맑은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주잖아. 먹구름이 잔뜩 끼어서 슬픈 날에도, 구름을 자세히 보고 있으면 그 구름도 어디론가 조금씩 흘러가고 있는 게 보일 거야. 그 구름을 네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과 걱정이라고 상상해 봐. 구름은 언젠가 다 흘러가 버릴 테고, 그 구름 뒤에는 너만의 푸른 하늘이 변함없이 펼쳐져 있을 거야. 언제나 푸른 네 하늘 아래에서 구름은 찾아왔다가 이내 흘러갈 뿐이지.



둘째야, 이 노래를 들으면서 이번엔 이렇게 한번 떠올려 볼까? 우리에게 찾아오는 생각이나 걱정, 견디기 힘든 감정들도, 우리가 기차를 타고 마주치는 다양한 풍경 중 하나라고 말이야. 차창 밖의 풍경과 색깔들이 서로 얽히고 섞이며 흘러가듯, 우리 마음속에 피어나는 생각과 감정도 그렇게 이어져서 흘러가고 있는 거야. 그 흐름 속에서 슬픔은 결코 끝이 아니라, 어딘가에서는 기쁨으로 연결되어 있어. 마치 밤의 어둠이 아침의 밝은 빛과 이어져 있듯이 말이야.


너는 지금, 이 세상의 멋진 풍경들을 구경하러 기차를 탄 여행객이야. 어떤 날은 먹구름이 잔뜩 끼고, 쉼 없이 비가 오는 날도 있겠지. 하지만 기차는 계속 달릴 거야.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비의 끝에서 안개가 걷히고 무지개가 피어나고, 따스한 오렌지빛 햇살을 만나게 되겠지. 그리고 그 햇살 뒤에 올리브빛 잔디밭이 펼쳐지다가, 다시 컴컴한 밤의 어둠을 만나게 되겠지. 세상에는 단 하나의 끝없는 색깔이나 풍경은 없을 거야. 늘 서로 이어지고 섞이며 흘러갈 테니까.


그러니까 지금 먹구름이 하늘을 가득 덮었더라도, 그 어둠에 압도되거나 영원할 것처럼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 먹구름 뒤에는 늘 밝은 햇살이 비춰올 거고, 어떨 때는 형형색색의 무지개가 너를 맞이할 거야.


그렇게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광경은 늘 순환하며, 너를 찾아왔다가 또 떠나갈 거란다. 슬픔과 기쁨, 그리고 희망과 좌절이 모두 연결된 다양한 빛깔의 풍경들을, 언젠간 우리 둘째가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어. 촉촉하게 적셔진 네 크고 검은 눈동자와 함께, 옅은 미소가 번진 예쁜 네 얼굴이 왠지 엄마 머리속에 선명히 그려지는 것 같아.




≪Trem das Cores≫(색깔의 기차)는 Caetano Veloso가 만들었어. 보사노바와 삼바의 색채는 유지하면서도, 더 다채로운 화성으로 완성된 MPB 곡이지. 엄마는 색소폰 연주자인 Gaia Wilmer와 첼로 연주자인 Jaques Morelenbaum이 카에타누에게 바치는 헌정 앨범 Trem das cores(2023)에 수록된 버전을 들으며 편지를 쓰고 있어. 다양한 악기의 앙상블이 더해져서 더 환상적인 기차 여행이 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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