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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모든 3월을 축복해

Águas de Março

by 송영채

첫째야, 엄마가 오늘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는 소꿉장난 같은 노래란다.

엄마가 ≪Águas de Março≫(3월의 물결)을 처음 들었을 때,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워서 엄마는 바로 이 노래와 사랑에 빠져 버렸어. 포르투갈어를 잘 모르는 엄마는 노래를 들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봤단다. 물론 제목에 3월이 들어있으니까, 막연히 봄의 새싹이나 희망 같은 노래인가? 하고 들었지.


우리나라(북반구)에서는 3월이 되면 추운 겨울이 끝나고 얼어 있던 강물이 녹으면서 봄이 시작돼. 봄의 계곡물이 졸졸 흘러 산과 들판을 깨우고, 생명이 움트기 시작하지. 그런데 이 노래가 만들어진 브라질은 남반구에 위치해서 반대로 3월이 여름의 끝이자 가을의 초입이라고 해.


열대기후인 브라질의 여름엔 긴 우기가 있는데, 3월의 비는 이런 여름의 끝자락에서 내리는 우기의 마지막을 의미한다고 해. 땅을 푹 적신 오랜 우기가 끝나면, 비옥해진 땅에서 새로운 싹이 돋아나기 시작한대. 우리나라에서는 가을은 모든 걸 성숙시킨 후 겨울의 끝을 향해 마무리하는 계절이잖아? 그런데 우기의 끝에 오는 열대의 가을은 우리의 가을과는 다르게 만물을 비옥하게 기르기 시작한다는 거야.


가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엄마 마음속에 박혀 있던 3월, 그리고 계절의 이미지가 한순간 반전되는 게 느껴졌어. 엄마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에 갇혀 있는지, 단어에 담긴 단편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 깨닫게 되었단다.


두 가수가 주고받는 아기자기한 가사들도 가만히 들여다보니 예상과는 달리 조금은 처량한 감성이 배어 있었어. 나뭇가지, 돌맹이, 길의 끝… 사실 노래 가사에 들어가기엔 너무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이었지.

나뭇가지고, 돌이고, 길의 끝이야

잘려나간 나무토막, 그리고 약간의 외로움

깨진 유리 조각, 인생, 태양

밤이고, 죽음이고, 밧줄이고, 낚시 바늘

여름의 끝을 닫아버리는 3월의 비

그리고 너의 마음 속에 깃든 생명의 약속

≪Águas de Março≫ 가사 중


세상과 삶을 이루고 있는 아주 작은 조각들을, 우리는 평소엔 제대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리곤 해. 그런데 이 노래의 가사에 담긴 풍경을 떠올리며 듣다 보니, 작은 조각들이 재잘거리며 빗물에 흘러가는 기분이 들었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라도, 바로 그게 삶의 한 부분으로 함께 흘러가고 있어.’ 노래는 그렇게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지.




이 노래를 네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삶을 이루는 작은 조각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었어. 나뭇가지, 발자국, 돌멩이, 유리 조각 같은 사소한 것들을 보는 시선이 왜 중요하냐고?


첫째, 그런 시선을 갖게 되면 세상이 훨씬 더 깊고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이야. 평범하게 흘러가는 하루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갖 색과 질감, 온기로 가득 차 있었다는 걸 알게 되거든.


둘째, 네 마음이 지금 순간에 더 온전히 머물 수 있기 때문이야. 마음이 복잡할 때는 주변이 흐릿하게 느껴지지만, 눈앞의 작은 것들을 하나하나 느끼다 보면, 현재가 더욱 또렷하게 살아 숨 쉬는 걸 느끼게 되거든. 그러면 네 마음속 불안이나 초조함도 조금씩 옅어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작은 관찰이 바로 창작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야. 그냥 흘려보내면 사라질 순간이지만, 애정이 담긴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 순간은 네 삶의 일부가 되어 너만의 이야기로 자라난단다.



우리 첫째는 봄이 시작되는 3월에 태어났어. 그래서일까, 노래 제목에 3월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처음에 자연스럽게 네 생각이 났단다. 그런데 노래를 듣다 보니, 같은 3월이라도 장소에 따라 봄이 되기도, 가을이 되기도 하는 계절의 역설이 선명하게 다가왔어. 그리고 계절은 다르지만, 봄과 가을 모두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라는 점에서는 똑 닮아있더구나.


어릴 때는 인생이 한 가지 색으로만 그려진 단순한 그림 같았어.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위에 알지 못했던 색들이 겹겹이 덧칠되면서, 생각보다 복잡하게 여겨지는 순간이 온단다. 하지만 엄마는 알게 되었어. 그 복잡한 무늬와 색들 속에서도, 변치 않는 단순한 진실이 늘 숨 쉬고 있다는 걸 말이야. 이제 너도 조금씩 이런 인생의 다층적인 의미를 알아갈 나이가 되어가는 것 같아.

첫째아, 앞으로 네가 맞이할 모든 3월에, 서로 다른 계절이 존재한다는 걸 느낄 수 있길, 그리고 그 안에서 언제나 새로운 시작의 희망이 움트고 있다는 것도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또 네 곁에 함께할 삶의 작은 조각들을 소중히 바라보며, 마음껏 자라나고 꽃피우길 바란다. 엄마는 앞으로 네게 찾아올 모든 3월을 언제나 응원할게.





≪Águas de Março≫(3월의 물결)는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Antônio Carlos Jobim)이 1972년에 만든 노래야. 1974년 Elis & Tom 앨범에서 엘리스 레지나(Elis Regina)와의 듀엣 버전이 큰 사랑을 받았어. 계속 반복되는 리듬과 함께 둘의 하모니가 점차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면서, 마치 빗줄기처럼 음악이 흘러가는 느낌을 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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