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cê vai ver
셋째야, 너는 항상 엄마아빠와 언니들은 큰데 자기는 왜 계속 작으냐고 투정을 부리곤 한다. 귀여운 너의 투정에 웃음이 나곤 하지만, 너무나도 진지한 표정에 엄마는 웃음을 꾹 참으며 이렇게 대답해.
“우리 셋째, 아기 때 사진 본 적 있지? 그때보다 얼마나 많이 컸는데! 키도 많이 자라고, 이제 숫자도 셀 줄 알고, 얼마나 똑똑해 졌는지 알아? 지금도 무럭무럭 크고 있으니까, 곧 언니가 되고, 엄마아빠 같은 어른이 될 거야.”
그러면 너는 “그래요?” 하고 대답하면서도 표정은 어딘가 계속 뾰루퉁했지.
생각해보니 엄마도 어렸을 때, 아직 어리다고 여기는 주변의 시선이 얼마나 답답했는지 기억이 나. 어린 나였지만, 마음속에는 이미 다 컸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가득했거든.
기다리다 보면, 그냥 시간을 지나다 보면, 크는 것도, 어른이 되는 것도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일이지만, 그런 시간의 간극을 느끼면서 현실을 견디는 건, 정말 쉽지 않을 거야. 땅에 떨어진 씨앗이 봄이 되면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고,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고, 마침내 열매를 맺지. 그러다 낙엽이 지고, 겨울이 오고, 다시 봄이 오는 자연의 순환은 우리는 한 발 떨어져서 보게 돼. 이렇게 드문드문 멀찌기서 지켜보면 오히려 그 빠른 속도에 깜짝깜짝 놀라게 되지. 하지만 그 과정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나무 입장에서는 정말 오랜 기다림과 분투의 결과일 거야.
사람들은 흔히 현재를 ‘선물’이라고 하면서 지금 이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해. 그런데 사실 사람이 현재에만 존재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큰 고통일 수도 있어. 왜냐하면 사람은 늘 무언가를 원하고, 아직 오지 않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존재잖아. 그런 사람에게 현재라는 시간은 언제나 채워지지 못한 불만족의 연속처럼 여겨지기 쉽거든.
그래서 사람이 그 순간의 부족함에만 골몰하게 되면, 현재의 굴레, 현재의 감옥에 쉽게 갇혀 버릴 수도 있어. 내가 꿈꾸는 미래와는 너무 멀리 동떨어진 것 같은 ‘지금’ 속에서만 허우적거리게 되는 거지. 그런 현재의 굴레 속에서는, 지금의 내 행동이 과거나 미래에 연결되지 못한, 파편화된 현존 감각만 남게 되는 거야.
그래서 우리에겐 오늘을 내일로 이어지는 긴 시간의 흐름 안에서 느끼는 연습이 필요해. 마치 자라나는 나무를 멀리서 언뜻 바라보듯이, 자신의 삶도 가끔은 듬성듬성 바라볼 필요가 있는 거야. 그러면 조금씩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좀 더 자유로워진 현재의 나를 느낄 수 있을 거야.
네가 태어나고 아주 어렸을 땐, 배가 고파도, 졸려도 ‘엥엥’ 울었단다. 그러면 엄마는 곁에서 네 울음을 듣고, 곧장 달려가 도와줬지. 그 시기의 아기에게 그런 경험은 정말 중요하대.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가 즉시 채워지는 경험을 통해, 세상은 믿을 수 있는 곳이라는 첫 신뢰를 쌓아가게 된다는 거야.
하지만 아이가 한 살, 두 살이 되어가면서, 이제 자신의 욕구를 참고 지연시켜 가는 것을 배워 가야 해. 배가 고파도, 엄마가 먹을 것을 준비해 주는 동안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하고, 친구의 장난감이 아무리 궁금해도 무작정 빼앗기 보다는 참는 법도 배워야 하지. 지금 내가 놀고 싶어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먼저 마친 다음에 놀 수 있게 욕구를 조절하면서 현실을 충실히 사는 방법도 배워야 해.
그런데 아이가 커가면서 기다림의 리스트는 점점 길어지고, 그런 기다림의 시간도 더욱 길어진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삶이란 이런 끝없는 기다림으로 가득 차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그런 기다림에 지쳐 그냥 손 놓고 있다면, 우리는 현재의 굴레에 갇히게 될 거야.
우리 일상을 채우는 기다림도, 물을 주고, 볕을 쬐어주고, 영양분을 주고 바람을 쐬여 주어야 싹을 튀우는 식물처럼,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단다. 그래서 삶이라는 건, 기다림으로 가득 찬 지금의 시간을, 어떻게 잘 가꿔나가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아. 채워지지 않는 욕구의 틈새를 불만족이나 불평, 불행이 파고들지 않도록, 눈은 비록 저 먼 내일을 바라보고 있더라도 다리는 계속 오늘을 걸어야 하는 거야. 삶은 바로 그런 모순된 이중의 시간을 견디며 채워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
≪Você Vai Ver≫ 는 오직 기다림에 대한 노래는 아니야. 너무나 보사노바스러운 짝사랑 노래지.
너는 수많은 입맞춤을 해볼지 몰라
하지만 네 마음은 결국 나를 떠올릴 거야
다른 누군가가 너의 곁에 있을 때에도
그 순간은 잠깐일 뿐, 나를 잊지는 않을 거야
너도 결국 알게 될 거야
≪Voce Vai Ver≫ 가사 중
그런데 잔잔한 어쿠스틱 반주 위로 “Voce vai ver 너도 곧 알게 될 거야”라고 차근차근 속삭이는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되는 곡이란다. 아마 이 노래는 ‘시간’이 가지는 마법의 힘을 알고 있는 것 같아. 이 노래처럼 우리가 기다림의 괴로움에 발버둥 칠 때, ‘시간의 힘’은 항상 우리를 위로해주거든.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알 수 없는 내일 사이에서 불만족과 불안에 떨게 되는 오늘을 느끼는 날, 너에게 늘 축복처럼 시간이 함께 한다는 것을 기억하렴. 시간의 손을 잡고 오늘의 흐름을 잘 느껴며 살아보는 거야.
네가 원하는 것들이 아직 없는 오늘이라도 더 아끼고 사랑해주렴. 그 기다림의 시간이 바로 너를 너의 꿈으로 이끌어 줄 징검다리라고 생각해. 그 기다림을 잘 보살피며 지내다 보면, 기다림의 시간은 곧 끝나고, 네가 꿈꾸던 미래에 도착할 거라는 걸, 너도 곧 알게 될 테니까.
≪Você Vai Ver≫(너도 곧 알게 될 거야)는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이 만든 곡이야. 엄마는 2000년에 발표된 조앙 질베르투(João Gilberto)의 João Voz e Violão에 수록된 곡을 감상 중이야. 이 곡은 70대에 접어든 조앙의 속삭이는 보컬과 기타만으로도 큰 울림을 줘서, 마치 그의 음악 인생을 집대성한 곡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