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맞다, 나 이렇게 귀한 딸이었지
난생 처음 아버지와 둘이 보낸 명절. 배 터지게 고기를 먹고 얼큰하게 술도 마셨다. 부른 배를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다 길게 늘어진 물소리를 따라 걸었다. 종알종알 이야기도 보탰다. 쉽게, 빨리, 잘 되고 싶었다고. 그래서 자주 넘어졌다고. 내 것이 아닌 욕망들로 배를 채우면서 늘 허기진 채로 살았다고. 아버지가 작게 미소지었다. 우리 딸 고생이 많네, 재밌게 살아.
아 맞다, 나 이렇게 귀한 딸이었지. 문득 나를 흔들어 깨운 생각. 잘 살아야지. 나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지. 좋은 대접을 받아야지. 나를 알아주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지. 그 누구보다 우리 가족들에게 제일 먼저, 가장 잘하는 사람이 돼야지. 내가 나여서 너무 좋은 사람으로 살아야지.
아버지가 말했다. 우리는 평생 달의 한쪽 면밖에 볼 수 없다는 걸 아느냐고. 생각해보니 그렇네. 사람을 대할 때 늘 내가 볼 수 없는 반대쪽 면을 생각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평생 알 수 없는 당신의 반대편. 어둡고 그늘진 당신의 뒷면. 뒤돌아서 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끌어안고 싶어졌던 것은 어렴풋이 그 어둠의 존재를 알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곁에 앉은 이의 등을 쓰다듬는 나의 습관은 그런 것에서 비롯되었으리라.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비관보단 낙관이 끌리는 계절. 미움보단 사랑이 쉬운 계절. 이 가을도 무탈하게, 누구도 다치지 않고 지나가기를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