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너무 초라하고 마음은 너무 크다
네 이름은 속이 아니고 요엠인데. 요엠 속. 9년 째 네 이름을 틀리는 전산 속 얼굴 없는 사람들이 무심히 0과 1 사이를 오간다. 그래도 나는 알아 너의 진짜 이름을. 내가 첫 편지에서 sok이라고 쓰는 바람에 네가 말했지. 내 이름은 yoem인데요. 그 뒤로 나는 편지에 y,o,e,m을 아주 천천히 신중하게 적곤 했다.
자립. 그 말이 너무 생경해서 사전을 뒤적거렸다. 내가 너의 자립에 도움이 되었나? 이제 진짜 도움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너는 이제 어떻게 될까.
이건 사실 나의 쓸모를 찾기 위한 자기 위로의 한 방편이었다. 꼬불꼬불 알 수 없는 글자와 설명을 읽고 나서야 정체를 알겠던 축구공 그림이 그려진 네 첫 편지. 그걸 받고 펑펑 울었던 열여덟의 나는 일종의 안도를 느꼈던 것 같다. 누군가 저 먼 데서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 그것만으로 나는 나의 존재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곤 했다.
그러니 나 없는 네가 아니라. 너 없는 나는 이제 어떻게 될까. 매달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는 몇 푼의 돈 말고. 9년이라는 시간 동안 본 적 없는 이에게 아슬하게 받쳐져 있던 나의 알량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마음들이 늘어난다. 말은 너무 초라하고 마음은 너무 크다. 언젠가 마지막 편지를 쓰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가을에 편지가 도착하려면 늦봄 무렵에는 펜을 쥐어야 하겠지. 행복하라고 적고 싶겠지만. 그 말은 너무 싸구려같고 사치스러워서 적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네게 구원이 아니라 연명이었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행복하라고, 자주 행복하라고 마음으로 비는 일은 멈출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