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쿙그민 Jun 19. 2022

제11화 대치동에서 놓치기 쉬운 한 가지

성공적인 입시전략을 위한 조건이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조부모의 재력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날 대치동의 주말을 바라보면 일단 아빠의 무관심은 아빠의 전폭적인 조력으로 바뀐 것처럼 보인다. 과거나 현재나 변치 않고 중요한 것은 분명 엄마의 정보력일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풍부한 정보력은 효율성이리는 명목하에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만들기도 한다.




"오늘 학원은 어땠어? 선생님이 뭐래?"

"선생님이 나 멍청하댔어"

.............

”진짜? “


카페에 도착해서 음료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예고 없이 훅 들어온 옆자리의 대화 내용을 의도치 않게 듣게 된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느새 마음속으로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 아이의 어머니 역시 매우 당황한 눈치였다.


"진짜 그랬어? 대놓고 그렇게 말했단 말이야? “

당황하는 마음은 다그치는 듯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아이 역시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내가 분명히 그렇게 느껴졌어"

"그랬구나. 그 학원은 좀 아닌 것 같다. 학원 옮기자. 틀린 문제는 아빠랑 다시 풀어봐"

라며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초등 입학 전으로 보이는 그 아이는 영어유치원과 문*원, 사고력 수학으로 이어지는 대치동 키즈 코스를 충실히 밟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뭐든 잘하는 아이였을 것이다. 영유에서도, 책을 읽고 토론하는 학원에서도... 그러나 정답이 딱딱 떨어지는, 맞고 틀리는 것이 명확한 수학 문제를 풀다 보면 아이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경험을 하게 된다. 아이가 느낄 좌절과 실망을 바라보는 것이 편한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외부 요인으로부터 자녀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일 것이다. 그와 동시에 아이의 갈등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고 싶어 하는 마음도 부모에게는 자주 일어난다. 어린 시절 아이가 돌에 걸려 넘어지면 일으켜 세우면서 ‘에잇 돌이 잘못했네. 나쁜 돌. 떼끼’ 하면서 아이를 달래주는 경우도 있었으니 말이다. 


앞서 대화를 나누었던 아이와 어머니 역시 다른 학원으로 옮기자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늘 잘했던 아이가 다른 아이들은 맞고 자기만 틀리는 상황을 경험하고 좌절하는 아이의 감정을 충분히 다루지 못한 채 ‘선생님이 잘못했네~ 이상한 학원이네’로 급히 종결되어 버린 것이다. 학원을 갈아타고 선생님을 바꾸는 것이 학원가에서 그리 큰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아이의 감정에 바라보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아이는 스스로 말했다. 선생님이 직접 자신에게 멍청이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고 자신이 그렇게 느꼈던 것이라고... 사실 대치동 학원가에서 자기 머리가 좋지 않다고 느끼는 것, 다른 아이들은 척척 풀어내는 문제를 모를 때 느끼는 좌절감은 사실 일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어떤 학원을 가도, 초등학생이 되어 수학 선행의 속도가 붙을수록 매일매일 드는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그 좌절과 실망을 다시 딛고 일어서는 경험을 온전히 경험하는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고무줄, 용수철의 탄성처럼 튕겨 나는 힘. 기존의 위치보다 오히려 더 뛰어올라 성장할 수 있는 힘을 회복탄력성이라 한다. 회복탄력성은 충분히 아픔과 고통을 경험한 후에 자신을 바라보고, 약점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다. 그후 맞이하는 성공경험은 삶에서 꼭 필요한 회복탄력성을 단단히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학원을 옮기고 환경을 바꾸어 줘야 한다면 아이가 느꼈던 열등감을 극복하고 적어도 한 번은 만족스러운 경험을 한 후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느낀 좌절감은 선생님을 탓하며 감추어야 할 부정적인 감정이 결코 아니다.



아이가 넘어지지 않도록 미리 돌을 치워 길을 닦아주려는 마음에서 아이가 실패를 피할 수 있도록 하는 부모를 ‘잔디 깎기(Lawn mower) 부모’라고 부른다. 입에 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이야기지만 몇 년 전 미국 명문대에 입학한 후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이러한 양육 방식의 약점이 지적되기도 했었다. 명문대 진학을 위해 부모가 닦아 놓은 길을 안전하게 걸어 성인이 된 아이는 대학에 입학한 후 비로소 거친 벌판을 만나게 된다. 처음으로 만난 돌부리에 넘어진 아이가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일어날 힘을 잃게 되는 현실은 비단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 어떤 지역보다 소위 말하는 입결(입시결과)이 보장되는 곳, 이곳 대치동에서는 최신 입시정보와 최고의 강사진이 포진되어 있다. 발 빠른 엄마들의 정보로 아이들은 누구보다도 효율적으로 공부하고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온전히 실패를 경험하고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어갈 시간은 낭비이자 사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는 이곳에서 시행착오를 줄여 최상의 정보들만 제공하는 어머니들의 지혜는 당연히 자녀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지 모른다. 부모 역할의 성패가 아이의 입시 결과로 좌우되는 현실에서 아이의 삶은 대학 합격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된다. 하지만 내 아이가 살아갈 인생의 항로에서 그곳은 종착점이 아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라는 계급장을 떼고 세상과 맞붙게 될 아이의 인생에 꼭 필요한 회복탄력성이 어쩌면 이곳 대치동에서 놓쳐버리고 있는 한 가지 일지 모른다.



이전 10화 제10화 학원가의 중심에서 깨달음을 외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