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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쿙그민 Jul 23. 2022

제12화 대치동에서 진짜 수험생으로 살아남기

아이들을 학원에 넣고(이상하게 학원에 데려다주는 일은 무슨 물건도 아닌데 이런 표현을 쓰게 되니...) 주차가 해결되고 나면 카페에서 나만의 짧은 휴식이 주어진다. 처음에는 여유 있게 커피 한잔하며 마음껏 휴대전화를 꼼지락거릴 수 있다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하루는 그동안 가지 못했던 병원에 가서 도수치료를 받기도 했고, 그다음에는 가격이 저렴한 헬스장에 등록해서 운동을 1년 정도 다니기도 했다. 책을 읽기도 하고 블로그에 서평을 올리기도 하면서 부지런히 나만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당시 초등생이었던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 생활은 쉽게 끝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대치동, 이곳에 아이들 사교육을 시킬 수 있기만 하면 만족할 것 같던 그 마음에도 무언가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이곳에서 수험생이 되는 것이었다. 수험생 엄마가 아닌 진짜 수험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노어를 신문방송학을 공부했었던, 광고 대행사에서, 외국계 회사에서 일했던 과거는 여기서 리셋하고 다시 무언가를 열망하고 준비하는 설렘이 필요했다. 이곳에서 흔들림 없는 엄마가 되기 위해서...


첫 도전은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것이 상담심리학이었다. 심리학의 분과라 할 수 있는데 간단히 말해 우리가 경험하는 마음의 문제를 심리학을 기반으로 상담이라는 방법으로 치유하는 것에 관한 학문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어려움의 원인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관점과 치료법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는 기분이었다. 처음 시작은 그렇게 나 자신을 바라보는 단계였다. 2년 가까운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대학원 진학을 꿈꿀 수 있었다. 그렇게 또다시 몇 년의 시간을 보내고 대치동 카페에서 논문을 쓰고 나의 첫 책 출간까지 이어갈 수 있었다. 


대치동에서 엄마 수험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엄마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아이들도 사실 부모가 자신들과 같은 과정을 지나 현재의 성인이 되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는데 옆에 있는 부모는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거나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사람의 마음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앞을 보고 힘껏 달려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은 <함께 있어 주는 것>이었다. 수험생 모드로 함께 하는 것. 아이들과 같이 책가방을 챙기고, 모의고사 문제집을 챙기고, 필통에는 언제나 컴싸(컴퓨터용 사인펜)를 챙겨 함께 나서는 것이었다.




그동안 도전했던 많은 시험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한 가지는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을 들 수 있다. 시험 접수부터 정말 어려웠던 시험이었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시험장 운영도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각종 공무원 시험에 가산점 또는 자격조건으로 한국사가 들어가면서 정말 시험 접수부터 전쟁이었다. 

서울에서 응시하지 못해서 강원도까지 가서 봤다는 분들도 있었는데 그마저도 모두 마감이 된 최악의 상황이라 시험 접수부터 실패를 경험했었다. 엄마의 실패를 알게 된 아이들의 도움으로 그다음 시험은 노트북과 휴대전화 모두 동원해서 접속한 끝에 서울의 한 고사장에서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시험 환경과 같이 시간을 재고 모의고사를 계속 풀어도 점수가 나오지 않는 좌절의 순간을 함께 해주는 아이들이 오히려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시험을 마치고 시험지 채점 역시 아이들의 몫이었다. 매번 엄마가 자신의 성적을 평가하는 처지이었다고 믿었던 아이들은 이 순간을 가장 신나게 여겼다. 정말 아쉽게 한 문제 차이로 1급을 달성하지 못하고 2급을 받았을 때 "엄마 괜찮아 "라고 해준 것 역시 아이들이었다. 




공부는 결국 아이의 몫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지 모른다. 인생에서 아이들이 경험하게 될 첫 번째 도전인 입시를 대신해줄 수 없다. 하지만 '누구나 해야 할 당연한 과정이고 이것도 못 이겨내면 인생의 다음의 단계는 없다'는 냉혹한 말들은 아이를 강하게 하는 사랑의 채찍은 분명 아니다. 때로는 자리도 없어 길 한복판에서 헤매기도 하고, 충청권 지역까지 충분히 갈 만큼의 시간을 들여 도착하는 이곳 대치동에서 배우게 된 엄마의 역할은 '그저 함께 존재하는 것'이었다. 공부하다가 지쳐서 옆을 슬쩍 보면 장기기억 장치에 저장되는 정보보다 망각되는 정보의 양이 훨씬 더 어마어마한 한 사람이 머리를 쥐어짜며 그저 앉아있는 것이다. 입시라는 그 과정이 결코 혼자가 외롭게 나아가야 하는 길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잠시라도 위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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