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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Nov 19. 2024

퍼머컬처 입문하기-(3)

7농삿일이란 모기의 밥이 되는 과정 


“여름에 모기 장난 아니에요… 모기향을 허리춤에 달고 다녀야 해요.”


이 때문이었을까, 7월에 허브연고를 만든 것이. 살균과 염증완화에 좋다는 서양 톱풀과 세인트존스워트를 각각 올리브 오일에 진하게 추출해 온 후, 가열한 밀랍과 섞어 연고를 만들었다. 2주 동안 추출한 허브오일에서는 특유의 풀 향이 솔솔 났다. 특히나 세인트존스워트는 스트레스 완화 효과가 있어서, 마사지 오일로 쓰면 좋다고. 나는 이 연고들을 어디에 쓰면 좋을까 싶었는데, 여름 내내 정말 유용하게 사용했다.


뜨거운 햇빛을 피해 아침 어스름에 밭에 나가면 어찌나 모기가 극성인지, 특히나 여름 장마가 지나고 나니 10분만 있어도 엉덩이가 따끔따끔하다. 왜 하필 긁기도 애매한 엉덩이 쪽인지… 밭일을 하려면 필연적으로 쭈그려 앉아야 하는데, 헐렁한 몸빼바지가 앉으면 유독 타이트해지는 엉덩이 쪽을 모기들이 신나서 달려든다. 수분을 머금고 무성하게 자라있는 풀들 사이사이 몰래 숨어있다가 먹잇감이 나타나자 이 때다 싶어 총출동하는 듯하다. 


잡초와의 전쟁, 더위와의 전쟁, 허리 통증과의 전쟁은 어찌저찌 참을만하다고 하더라도, 모기와의 전쟁은 하, 정말 쉽지 않다. 이 무더위에도 얇은 냉장고바지가 아니라 오히려 두꺼운 카고바지를 입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이미 시작해버린 밭일, 일단 풀은 잡아야 하고 수확도 해야 하니 부지불식간에 모기한테 왕창 뜯기고 집에 와서 연고를 듬뿍 떠서 펴 바른다. 일반 물파스의 알코올 냄새가 없고, 향긋한 풀 향이 가득하니 연고를 바르면서 상처도 마음도 치유가 되는 기분이다. 왠지 다음 날 보면 벌건 모기자국은 가라앉은 것 같고, 가려움도 덜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모기자국이 없어지기 무섭게 또 모기에게 뜯기러 밭에 나간다. 


농삿일이란 무릇 모기의 밥이 되는 과정이구나. 그래, 모기도 밥이 있어야 살고, 그 모기를 먹이로 삼는 곤충이 또 있을 테니까. 생태계의 고리를 상상하며 나는 기꺼이 모기밥이 된다.




8꽃향기가 톡톡 터지는 허브에이드   주세요. 



장마에 습도는 하늘을 찍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른다.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지 못한 날에는 밭에 나갈 엄두를 낼 수 없다. 습기를 머금은 몸이 축축 처지고, 점점 밭에 가기가 싫어진다. 


그럼에도 숲밭에 나가게 만드는 것은 그때만 볼 수 있는 꽃들의 향연. 관행농 밭에서는 잘 몰랐지만 수십 가지의 허브와 식용작물이 심어진 숲밭에 오면 꽃들의 색이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갯빛이다. 예쁘고 향 좋은 풀과 꽃들을 잘라 깨끗이 씻고 바람에 말린다. 풀꽃을 병에 가득 채운 뒤 청귤청과 비정제설탕, 물을 자작하게 넣고 하루이틀 정도 지나면 달콤한 향이 폭발하는 에이드 원액(일명 코디얼)이 된다. 타라곤, 오레가노, 쐐기풀, 서양톱풀, 참취꽃, 삼립국화, 베르가못, 원추리꽃, 차조기잎, 개망초꽃, 가우라, 민트 등등. 각각의 맛도 모르면서 일단 예뻐 보이는 꽃들을 잔뜩 넣었다. 어떤 허브를 어떤 비율로 블렌딩 하느냐에 따라 맛이 천지차이라고 한다. 향긋한 원액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밭일을 다녀올 때마다 얼음 가득 넣어 에이드로 마셨다. 크으– 여름의 고된 노동을 싹 보상받는 기분이다. 




9숲 속 오두막 커튼 한 장을 상상하며



여전히 햇빛은 뜨겁지만, 밭일을 하다 허리를 펴보려 일어나면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온다.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농삿일이 한결 수월해진다. 이번엔 풀그림을 그린다기에, 역시 세밀화를 배웠어야 했나.. 고민을 하던 나의 눈에 띈 건 정말 말 그대로 풀을 고대로 새긴 손수건 한 장. 천 위에 꽃잎이나 풀잎을 놓고, 그 위에 필름지를 깔고 딱딱한 물건으로 긁어 잎의 즙을 새기는, 왜인지 어릴 적에 한 번 해봤을 것 같은 놀이였다. 미술을 배웠지만 규칙을 좋아하고 일탈을 싫어하는 나는 역시나 규칙적인 배열과 정형적인 패턴을 만들었다.


이십 대 중반부터였나, 옷가게에 가면 뭐부터 봐야 할지 모르게 저 끝까지 늘어서있는 옷걸이를 스캔하면 꼭 꽃무늬가 내 레이더망에 걸린다. 꽃무늬를 좋아하면 나이 든 거라고, 친구들이 농담 삼아 얘기하면 웃어넘기며 속으로 반박했다. 자연스러운 ‘진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거라고. 기분 좋은 날 꽃다발을 선물하고, 꽃의 향을 따서 향수를 만들고, 봄이 오면 꽃을 찾아 나들이를 떠나듯, 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자연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 자연의 일부라는 것이 아닐까. 자연스럽다는 말도 거기에서 비롯된 것 같다. 사람도 자연과 함께 할 때 자연스럽다.


나는 유독 자연의 아름다움을 동경하곤 했다. 풀그림을 그리고 나니 빨강, 노랑, 초록의 풀꽃 물감들이 한동안 머릿속에 맴돈다. 찾아보니 외국에선 이미 에코프린팅이라며 꽃을 그대로 옷감에 찍어내는 천연염색을 하는 사람이 많이 보인다. 너무 예쁘다며 남편에게 호들갑을 떨었다. 인위적인 꽃무늬에도 눈이 돌아가던 나인데, 자연의 꽃이 옷감에 그대로 새겨진다니. 흐드러진 꽃밭에 놀러가서 느꼈던 황홀함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천연염색 퍼머컬처 밭을 꿈꾸게 된 것이. 내년에는 염색하기 좋은 식물들을 심어보고 이런저런 실험도 해봐야겠다. 나중에 살게 될 숲 속 오두막의 커튼은 꼭 내가 염색한 천으로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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