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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Nov 10. 2024

퍼머컬처 입문하기-(2)

5고들빼기의  맛을 보여주마.


내가 좋아하는 하얀 데이지꽃이 활짝 피는 5월, 이제는 밭에 가는 발걸음도 즐겁다. 날씨도 온화하고 선선하거니와 각종 꽃들이 그 향을 내뿜으며 아름다움을 뽐내는 모습을 보자니 피크닉을 따로 갈 필요가 있으랴. 밭일이 곧 소풍이거늘. 


그날도 어김없이 잡초를 잡고 있는데, 무언가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나있는 풀이 보인다. 두둑 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고랑에도 쏙쏙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풀을 보니, 어지간히 잘 자라는 풀이구나 했는데, 알고보니 고들빼기였다. 누군가 캐나다 이민생활 중 고들빼기 김치가 너무 먹고 싶어서 민들레 뿌리로 대신 김치를 만들어 먹었다는 말을 듣고 그저 흘려 들었는데, 막상 내 밭에 있는 고들빼기를 보니 그 기억이 되살아났다. 고들빼기 김치 만드는 법을 찾아보니 대부분 소금물로 그 쓰디쓴 맛을 뺀다고 하는데, 어떤 유튜버의 ‘고들빼기 김치, 소금물에 삭히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고들빼기의 쓴 맛은 비타민-E 성분과, 홍삼, 인삼에 들어있는 사포닌 성분 때문에 몸에 좋고, 활성산소를 제거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쓴 맛, 매운 맛, 시큼한 맛 등은 식물이 해충의 공격과 혹독한 환경에 살아남기 위한 방어기제라고. 그래서 노지에서 자란 과일들이 못생겨도 더 맛있는가보다. 요즘 자주 회자되는 스마트팜에서, 필요한 양분을 죄다 공급받으며 자란 식물들이 맹맹하고 별 맛이 없다고 하는데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아무튼 나는 고들빼기의 쓴 맛이 궁금해서 바로 김치양념을 버무렸다. 한국인은 뭐든 김치로 만들면 잘 먹는다더니, 역시나 감칠맛 도는 김치양념 속 고들빼기는 쌉싸래한 맛 조차 매력적이었다. 물론 자주 손이 가지는 않지만, 밥에 조금씩 곁들여 먹으니 쓴 맛이 단맛, 매운 맛과 어우려져 입 속의 하모니가 풍성해진다. 쌉쌀한 맛이 일품인 갓김치도 처음 먹었을 때 놀랐는데, 아무래도 나, 쓴 맛을 좋아하나 보다. 


그 때 먹었던 고들빼기 김치의 쓴 맛이 가끔 생각나서, 밭에 한없이 퍼지는 고들빼기를 반만 정리하고 반은 남겨놓고 있으니 고들빼기는 번식력이 어마어마해서 꽃이 씨앗을 맺기 전에 다 잘라버려야 한다고 한다. 게으르고 무지한 농부인 나는 하얗고 조그만 고들빼기 꽃도 예뻐서 그냥 두었더니, 그 꽃은 어느새 민들레 홀씨처럼 돌변해서 툭 하면 흩날려버리는 무서운 번식력을 자랑하는 것이 아닌가. 아, 이래서 고들빼기가 밭 이곳저곳에 무질서하게 자라고 있었구나. 이미 흩날려버린 고들빼기 씨앗들은 어쩌나, 내년에 김치로 담가서 싹 먹어버려야지.




6허브의 향에 취하는 계절


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살이 따가워지기 시작하는 6월이 되면 밭은 화려한 색의 꽃들과 허브, 그리고 잡초들로 풍성해진다. 보리수 나무는 새빨갛고 통통한 작은 열매를 맺고, 나물들은 무성해지니 조금만 더 있으면 뻣뻣해져서 못 먹을 판국이다. 허브들은 하지 즈음이 되면 효능이 제일 강해지기 때문에 오일이나 식초로 추출하거나, 연고를 만들어 사용하기 좋은 때이다. 


허브오일과 허브식초를 만들기 위해 좋아하는 허브를 따오라는 미션을 받았다. ‘좋아하는’ 허브라고? 이제서야 풀이름을 외우기 시작했는데 좋아하는 허브가 있을리 만무했다. 그냥 ‘아는' 풀을 따기 시작했다. 조그맣고 하얀 꽃이 다발로 피는 서양톱풀은 예뻐서 금방 이름을 외웠으니 따고, 쐐기풀은 스치기만 해도 따가운 그 매운맛에 한번 호되게 당해봤으니 얼마나 몸에 좋을까 하며 따고, 데이지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꽃이니까 땄다. 오레가노는 요리할 때 가루로 많이 사용하니까 따고, 버베인은 핸드크림 향 이름으로 들어본 적이 있어서 땄다(알고보니 그 핸드크림 향은 버베나였다). 다섯 가지 허브를 병에 넣고 한 병은 식초, 한 병은 올리브 오일로 채운 후에 2주 정도 우려내면 허브식초와 허브오일이 된다. 2주 후에 열어보니 콧속을 찌르는 식초 향, 그리고 고소한 올리브유의 향에 허브의 향이 은근하게 퍼진다. 샐러드에 다른 드레싱 없이 허브식초와 허브오일만 넣었다. 이거 참 과하지 않게 딱 신선하고 향긋한 향과 샐러드 야채의 고유한 맛이 어우러진다. 고급 레스토랑의 식전 샐러드를 먹는 기분이랄까. 


내년에 또 할 일이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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