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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Oct 27. 2024

퍼머컬처 입문하기-(1)

3황량한 땅의 중심에서 퍼머컬처를 만나다.


서울의 북동쪽을 둘러싸고 있는 수락산 자락에 위치한 퍼머컬처 밭을 처음 방문했을 때에는 3월, 아직은 쌀쌀한 봄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50평이라는 까마득한 땅은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궁금증에 주소를 검색해 보니 주변에 아무 표시도 없는 정말 ‘맨 땅’이었다. 이 주소만 가지고 길을 찾을 수나 있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찾아간 그곳은 역시나 황량했다. 나무와 관목, 허브 식물이 어우러지는 예쁘고 깔끔한 퍼머컬처 밭은 책에서만 볼 수 있는 그림인 걸까. 하긴 3월에 파릇한 모습을 상상했던 나는 정말이지 초보 농사꾼, 아니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씨앗’ 레벨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지난 겨울에 누군가 두둑하게 멀칭해놓은 농사 부산물과 왕겨가 양분이 될 유기물로 보이기 시작한 것도 한 달쯤 후였으니 말이다. 농사를 글로만 배운 내가 맞닥뜨린 현실이었다.


나는 퇴사 후 내 먹을 것 내 손으로 한 번 길러보자며 농사를 지어보겠다는 쉽지 않은 결심을 하고, 퍼머컬처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다. 사람이 힘들게 노동하지 않고 투입하지 않아도 자생하는 숲과 같은 밭을 만든다라… 꽤나 매력적인 이론처럼 들렸다. 기후 우울에 빠진 한 젊은이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듯, 이는 그토록 내가 찾던, 내가 걸어갈 길이 아닌가. 앞으로의 농사 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은 이러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때마침 지인을 통해 ‘수락산 숲밭가드너 양성과정’에 두 자리가 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무지한 농사 입문자의 두려움에 며칠을 고민하다 끝내 지원하였고, 함께하자는 답변이 돌아왔다. 


내 몫으로 할당된 밭에는 내 키보다 작은 나무들이 혹독한 겨울을 버티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며 두둑마다 우뚝 서있었다. 관목과 허브, 지피식물들은 한 해가 지나고 나면 모두 잘라 땅을 덮는 멀칭 재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처음 봤을 때는 식물들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황량한 모습이었다. 타원모양, 땅콩모양, 열쇠구멍 모양, 길쭉한 오이 모양 등등. 뭐 하나 똑같은 모양이 없는 두둑 사이사이를 지나 내 밭으로 가는 길은 미로 같았다. 옆 밭과의 경계 표시도 따로 없으니 내 땅의 경계가 어딘지 도통 모르겠다.


겨울의 퍼머컬처 밭


퍼머컬처에서는 두둑을 유기적이고 다채로운 형태로 만드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연에는 우리의 논밭처럼 일자로 된 땅이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형태로 만들면 그 사이사이 햇빛이 드는 양도 달라지고, 자연스레 그늘이 지는 곳이 생기고, 숨을 곳이 생기기 때문에 동물들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 그늘을 좋아하는 식물은 높은 키의 식물 옆에 자리를 잡을 것이고, 물을 싫어하는 식물은 두둑의 높은 곳에서 잘 자랄 것이다. 다양한 식생이 형성되면 우리의 밭에 해충을 잡아주는 육식곤충이나 포유류 등을 불러올 수 있게 된다. 내 작물을 모조리 먹어치우는 해충 때문에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림으로만 보던 퍼머컬처 밭의 현실판을 보고 나니, 순환의 사이클이 살아있고 흙 속의 우주가 살아있는 그 밭의 겨울 풍경은 내가 상상했던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길을 잃어버리지나 않는 게 다행이었다. 이 밭에서 나는 무엇을 이루어나갈 수 있을까? 설렘 반, 두려움 반의 순간이었다.




4당귀라면을 아시나요?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는 4월, 겨우내 뿌리에 저장한 양분이 처음 잎으로 나오는 때이다. 생기 있고 파릇한 연한 잎들을 따서 봄나물로 해 먹기 딱 좋은 때이다. 개망초, 원추리, 컴프리, 서양톱풀, 제비꽃, 쐐기풀, 선씀바귀 등등... 큰일 났다. 밭 여기저기에 심긴 풀들을 소란 선생님과 함께 돌아보는데 머리가 멍해진다. 아무리 봐도 내 눈엔 길쭉한 풀과 넓적한 풀 정도밖에 차이를 모르겠다. 선씀바귀와 고들빼기는 참 닮은 것 같고, 매발톱은 잘못 먹으면 위험하다고 하는데, 방풍나물이랑 비슷하게 생겼다. 쐐기풀은 잔가시가 많아 손에 스치기만 해도 벌에 쏘인 것처럼 매우 따갑다고 하는데, 생김새는 눈개승마랑 비슷하다. 퍼머컬처를 이론으로 공부할 때는 참 아름답고 이상적인 농사철학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거 실제로 보니 풀 이름 외우는데만 1년이 넘게 걸릴 것 같다. 어릴 적부터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산에서 나물 채취하기를 좋아하는 집안 어르신들이 없다면 알기 힘든 막막한 ‘풀의 세계'에 발을 디딘 것이다.


내가 이방인이 되는 낯선 풀의 세계에서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를 치켜뜬 채로 잡초를 베다가 밭 한 켠에서 무언가 익숙한 모습의 풀이 보인다. 작은 손바닥 모양의 풀, 당귀였다. 친구네 시골집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먹어보고선 반했던 그 당귀. 절로 건강해질 것 같은 한약재의 향에 살짝의 씁쓸한 맛과 달큰한 맛이 떠올라 침이 고인다. 작은 잎들은 남겨두고 적당한 크기의 잎들을 얼른 채취했다. 집에 가서 보니 나물로 해 먹기에는 참 애매한 적은 양이다. 그렇다면 무얼 망설이랴, 라면에 넣어버리면 되는 것을! 작은 잎이 내뿜는 특유의 향은 얼마나 힘든 겨울을 버텼을지 상상이 될 정도로 강렬했다. 단 몇 장의 당귀잎을 넣었을 뿐인데 인스턴트 라면이 하나의 요리가 되는 마법이 아닌가. 앞으로 당귀가 잎을 내는 봄이 오면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지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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