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동네 놀이터가 온통 모래밭으로 되어있던 시절, 나와 친구들은 ‘엄마놀이'를 한다며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서 한 상을 차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뭇잎은 밥그릇이 되고, 넓은 돌은 도마가 되고, 모래를 푸면 밥이 되고 쑥을 뜯어서 돌로 찧으면 알 수 없는 반찬이 되곤 했다. 비오고 난 뒤엔 나뭇잎 사이에 숨어 있는 달팽이를 찾으러 다니고, 민들레 홀씨를 누가누가 더 쎄게 부나 경쟁하고, 강아지풀로 친구들을 간지럽히며, 삭막한 아파트 단지에서도 어린 아이의 상상력 속에서는 놀거리가 풍성했다. 하지만 그때는 상상이나 했을까, 쑥, 민들레, 강아지풀이 밭에 퍼지기 시작하면 골칫덩어리가 된다는 것을. 퍼머컬처를 배우면서 나는 쑥과 민들레와 강아지풀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생태농업에 대해서 공부하다가 게으른 농부가 하는 농사가 퍼머컬처라는 말이 내 귀에 꽂혔다. 태생이 게으르고 느긋한 나는 몸을 쓰는 일도 좋지만 하루에 반은 차도 마시고,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책을 읽는 여유를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주 40시간만 딱 일하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노동시간이 너무 길다며 주 32시간 혹은 주 4일 노동의 필요성을 외치곤 했다. 그런 내가 농사를 지을 거라고 했을 때 지인들은 정말 의아했을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노동 시간이 어느정도 정해져 있는 도시의 노동자들과는 달리, 농부의 노동은 미리 계산해볼 수도 없는 까마득한 일이었다. 날씨에 따라 흥망이 정해지고, 내가 얼마나 관리하고 풀을 뽑고, 물과 비료를 주느냐에 따라 수확량이 달라진다. 수확을 한 다음에도 갈무리를 해서 작물을 부지런히 요리해서 먹어야 하고, 한꺼번에 너무 많이 수확이 된 작물은 말리거나 장아찌나 김치 등으로 오래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오죽하면 어른들이 자식들에게 농사만은 안 시키려고 악착같이 돈을 모아 서울로 유학을 보냈을까. 어른들은 그 힘들었던 기억에 ‘농사가 얼마나 힘든지 느껴보면 너가 그런 소리를 다시 하나보자.’ 는 표정으로 나에게 한 번 해보라고 한다.
하지만 나 같은 도시인에게조차도 기후위기가 피부로 와닿는 날이 점점 많아지자, 나는 이 일을 더는 늦출 수 없었다.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20%대로 매우 낮은 편이고, 많은 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인도까지 밀 수출을 금지하면서 밀을 수입하는 나라들이 타격을 받고, 전세계가 인플레이션에 고통받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일시적으로 생긴 현상일 뿐일지 고민했다. 가뭄과 홍수가 빈번해지면 생산량이 더욱 더 요동칠 것이고, 식량 물가는 한 없이 오를 것이다. 내가 농사를 시작하는 것은 어찌보면 숙명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겁도 많이 났다. 힘든 노동에 허덕이며 살고 싶지 않았는데, 농사를 짓는다고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은 아닌가, 내 삶이 여유를 잃고 피폐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이런 걱정을 깨버린 것은 생태텃밭 관련 서적에서 본 한 장의 일러스트였는데, 바로 지렁이가 노동을 하고 농부는 옆에서 낮잠을 자는 모습이었다. 조금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결국 똑똑한 농부는 땅이 일을 하게 하고, 익충을 끌어들이면서 해충도 잡는 생태계를 설계해서 자생하는 텃밭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탄소가 공기로 배출되고 땅이 피폐해지는 기존의 농법과 달리, 땅을 점점 더 비옥하게 하는 지속가능한 농법이었다. 그렇게 나는 퍼머컬처를 만나게 되었다.
퍼머컬처란 Permanent + Agriculture 의 합성어로, 직역하자면 영속적인 농업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저 농사를 넘어서, 농업이 인류의 역사에서 문화를 만들어냈기에 culture라는 말이 붙었듯, 퍼머컬처 또한 삶의 전반에서 지속가능한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하나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땅 속에는 미생물로 이루어진 또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고 한다. 땅 속의 모습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한 영상을 보았는데, 식물의 복잡한 뿌리들 사이사이 붙어있는 크고 작은 미생물들과 공기 구멍들, 그 관계에서 오가는 영양분들이 단단한 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땅 속의 우주를 막상 시각적으로 보고 나니, 땅을 한 번 파헤치는 행동조차 조심스러워졌다. 내 손짓에 의해 하나의 우주가 파괴되어 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퍼머컬처에서는 잡초를 뽑지 않고 베어서 멀칭한다. 잡초의 뿌리가 뽑혀 나오면서도 땅 속에 숨어있던 탄소가 배출되고, 미생물들이 파헤쳐지기 때문이다. 또한 퍼머컬처 밭에는 나무와 관목, 허브류와 작물 등의 초본류, 클로버 같은 지피식물과 마늘 양파 등의 뿌리작물이 어우러진다. 땅 속 깊이 뿌리내리는 다년생 식물들이 땅 속에 풍부한 영양분을 공급하고, 미생물들을 키워 일을 하게 한다. 그래서 퍼머컬처 밭이 성숙해지기까지 약 3년 정도는, 다년생 식물과 나무가 잘 자리잡도록 잡초를 잡고 다층적인 구조가 정착이 될 수 있게 사람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인간의 노동은 줄어들고, 풍부하게 조성된 먹거리 숲에서 우리는 채집하는 정도의 노동만 하면 된다.
하지만 농사를 지어보고 알게 되었다. 잡초가 자라는 속도는 내가 심은 작물이 자라는 속도의 제곱 그 이상의 속도라는 것을. 내가 막 뿌린 씨앗의 생명력은, 땅 속에 수년 동안 숨어있다가 그 땅의 환경에 최적화된 잡초 씨앗이 최고의 타이밍을 잡아 땅을 뚫고 햇빛을 향해 싹을 틔우는 그 생명력에 비할 것이 못 되었다. 야생에서의 약육강식이라는 것이 이 조그만 땅에도 적용이 되는 것인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내가 뿌린 씨앗이 이 땅에 적응해서 언젠가 싹을 틔우는 그 날까지 잡초의 생명력을 잡아주는 것이었다.
봄에는 쑥이 지천이었다. 쑥 아이스크림, 쑥 파운드 케익, 쑥개떡 등, 쑥 맛있는 것은 알았지만 쑥이 밭에서 골머리를 썩히는 존재라는 것은 몰랐다. 모르는 풀로 가득한 밭에서 쑥을 발견했을 때 반가운 마음은 이내 원망으로 바뀌었다. 쑥은 뿌리가 옆으로 퍼져 그 뿌리에서 새 잎이 나고, 또 잎이 나고 또 잎이 나면서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퍼진다. 그래서 다른 풀은 다 그냥 베어도 쑥 만큼은 어느정도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한다. 쑥 뿌리가 끊기지 않도록 땅 속을 손가락으로 더듬거리며 그 뿌리가 뻗어나간 곳까지 따라가 쑥을 뽑아내고 있자니 손가락이 저려온다. 평소에 쓰지 않던 손가락 사이사이의 소근육이 쑥 뿌리찾기 운동을 통해 발달되고 있었다.
민들레는 김치나 뿌리를 갈아서 차로도 마신다고 하니, 일부러 키우는 사람도 몇 있다. 다행히 내 밭에는 민들레가 많지는 않았지만, 남편이 들려준 일화가 생각난다. 어렸을 적 시골에 가서 민들레 씨앗을 재미삼아 훅 불었더니, 옆집 농부 할아버지가 소리를 빽 지르면서 ‘왜 그걸 불고 앉아있냐, 그거 불면 씨앗 날려서 농사 다 망친다!’며 혼이 났다고 한다. 어렸을 적 민들레가 시멘트 틈 사이에 싹을 틔우고, 사람들이 아무리 밟고 다녀도 끝끝내 자라서 꽃을 피우는 것을 보고 농담삼아 ‘한국에서 살려면 민들레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러니, 밭에 민들레가 보이기 시작하면 꽃대를 올리기 전에 얼른 뿌리쪽을 베어버린다.
여름이 되니 바랭이와 강아지풀이 말썽이다. 벼 같이 생긴 씨앗을 세 가닥 씩 뻗어내는 바랭이와, 포슬포슬 부드러운 강아지풀은 여름 시작부터 가을까지 쉬지 않고 싹을 틔운다. 처음 싹이 나올 때는 그저 잔디같이 생겨서 몰랐는데, 장마 때 시원한 물을 쭈욱 빨아들이고 나면 바랭이와 강아지풀이 거의 허벅지까지 자라버린다. 한 번은 바쁜 일상에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 2주만에 밭에 간 적이 있는데, 말 그대로 풀지옥이었다. 바랭이와 강아지풀은 따로 꽃이 피지 않고 바로 씨앗이 나버려서, 이미 씨앗이 맺힌 풀들을 그 곳에 다시 두면 내년에 또 미친듯이 자란다고 한다. 조금 과장된 표현으로 강아지 풀 하나에 씨앗이 10만개 정도 들어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떡하고 입이 벌어졌다. 그럼 실수로 씨앗 맺힌 강아지 풀 하나를 떨구면 내년엔 10만개의 새싹이 올라오는 것인가.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아침 일찍 밭에 나가 엉덩이 의자에 앉아 톱낫으로 풀들을 하나씩 하나씩 베다가, 점점 어깨와 목 근육이 굳어가고 톱낫을 든 손에 굳은살이 베긴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이미 해는 중천에 떠있고, 옷 안은 땀이 범벅이고 집에 가서 보면 목덜미는 까맣게 타버렸다. 아무도 없는 밭 한가운데에서 혼자 잡초를 베다가 힘들 때면 문득 생각이 든다.
‘나 여기서 뭐하자고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