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이 없는 거리
엄마가 살해당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네가 죽은 그날, 시작됐다.
타임루프 장르의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나만이 없는 거리>(2016)는 12화라는 짧은 분량 안에 탄탄한 서스펜스를 담아낸 작품이다. 원작 만화에 충실하면서도, 영화적 연출이 돋보이는 애니메이션으로 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된 성공 사례이기도 하다.
시간을 되돌리는 ‘리바이벌’ 능력이 있는 사토루는 엄마를 살해한 용의자로 쫓기다 1988년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이 비극의 시작이 당시 발생한 연쇄아동납치살해사건과 연결돼 있음을 깨달은 사토루는, 첫 번째 실종자였던 동급생 히나즈키 카요를 지켜내지 못하면 엄마도,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청년 유우키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렇게 카요의 운명을 바꾸려 고군분투하는 사토루. 하지만 그녀를 구했다고 생각한 순간, 정체를 드러낸 범인은 사토루를 위험에 빠트린다.
<나만이 없는 거리>는 타임루프라는 설정을 제외하고는 아동학대, 유괴와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카요는 집에서 지속적인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 사토루가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카요의 목 뒤에서 발견한 멍과 그녀의 침묵은 아동학대 피해자들의 전형적이고도 가혹한 현실을 반영한다.
학습된 무기력과 절망으로 감정조차 억눌린 채, 스스로를 지워가며 버티는 아이.
‘나만이 없는 마을을 생각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녀의 이 말은 벗어나고 싶은 마음의 절규이자, 보호받지 못한 아이가 품을 수밖에 없는 가장 슬픈 희망이다.
또한 카요는 또래 관계에서 벗어나 있는데, 유괴범이 카요처럼 가정에서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학교에서 소외당하는 여자아이를 표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소름 끼치는 현실을 보여준다.
사토루는 카요의 실종을 막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하지만 첫 계획이 실패하고 현실로 돌아온 사토루는 신문 속 카요의 사망일자가 바뀌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경찰에 붙잡힌 찰나, 두 번째 리바이벌이 발동되며 회귀한 그는 또 다른 계획을 세운다. 이번에는 더 치밀하게.
사토루는 범인을 추적하는 탐정보다는 친구를 지켜내려는 히어로의 모습에 가깝다. 과거의 자신이 카요가 홀로 공원에 서 있던 밤을 지나쳤다면, 지금의 그는 소외된 그 누구도 외면하지 않는다.
그리고 두 번째 시도에서 그는 혼자가 아니다. 사토루를 믿고 움직이는 친구들, 서로를 지키기 위해 손을 내미는 아이들. 이 연대는 사건을 둘러싼 어둠 속에서 작지만 단단한 불빛처럼 빛난다.
그들이 보여주는 신뢰와 연대. 이것이 <나만이 없는 거리>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학대받던 아이가 꿈꾼 것은 ‘나만이 사라진 거리’였지만, 긴 혼수상태 끝에 깨어난 사토루는 자신이 없던 그 시간이 오히려 ‘보물’이었다고 말한다. 도망치지 않고 마주하며 친구들의 미래를 지켜냈다는 긍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누군가의 믿음.
작품은 이러한 관심과 연대가 누군가의 내일을 바꿀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희망의 반대편, 아이들을 노린 그림자 같은 존재가 있다.
연쇄아동유괴사건의 진범이자 담임인 야시로 가쿠. 그는 사토루의 엄마를 살해한 범인이기도 하다.
그는 처음 등장할 때부터 어둠 속에 서 있다. 사토루와 교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그는 그림자 속에 존재하며, 카요의 피해사실을 알면서도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는 모습은 찝찝함을 남긴다.
사토루는 담임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의심을 지워버리지만, 바로 그 빈틈을 파고드는 건 끝내 야시로였다.
<나만이 없는 거리>는 촘촘한 사건의 전개뿐 아니라 세밀하게 활용된 영화적 연출로 서스펜스의 밀도를 끌어올린다.
전체적으로 채도가 낮은 차가운 푸른색의 배경은 따뜻한 색을 거의 배제한 채 취약하고 불안정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눈을 밟는 소리와 의도적인 침묵의 사용, 종종 거리를 두고 배치된 카메라의 시선은 감시당하고 있는 듯한 불길함을 느끼게 한다.
특히 카요의 아동학대 사실이 전면에 드러나는 초반부에는 짧은 컷들이 빠르게 교차하며 사토루의 충격과 불안, 카요의 절망적인 감정을 시각적으로 번역한다.
또한 푸른 배경 속에서 카요의 엄마와 야시로의 눈이 붉게 빛나는 연출은 인물들이 가진 폭력성과 위협을 직관적으로 각인시킨다.
이런 시각적·청각적 선택들이 모여 극의 긴장감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의 범주를 넘어선 정서적 압박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나만이 없는 거리>는 단순한 유괴살인범과 어린 주인공의 대결이 아니다. 어른들이 마땅히 지켜줬어야 할 아이들의 내일을, 결국 아이들이 서로의 손을 붙잡아 지켜냈다는 이야기다.
사토루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히어로가 아니다. 그저 ‘과거의 자신’이 지나쳐버린 누군가를 외면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끝까지 붙잡았을 뿐이다.
친구들은 그 마음 하나를 믿고 함께 해주었다. 어른들이 어른답지 못한 세상에서, 아이들은 서로의 내일을 지켜내며 스스로를 구원했다.
결국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하나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다.
외면하지 않고 함께 서주는 마음, 그 마음이 어둠보다 먼저 빛을 켜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