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들의 연례행사 중 가장 중요한 일정은 Annual Recurrent Training(정기 안전교육)이다.
매년 입사일 즈음에는 입사 교육을 받았던 Aviation College(항공 교육원)으로 돌아가 이틀간 운항 기체, 보안, 소방훈련 및 응급처치에 관한 교육을 받게 된다.
사실 중요한 만큼 달갑지 만은 않은데, 이유인 즉 ‘시험’이 있기 때문이다. 절대평가로 채점되는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재시험은 물론, 인사고과에도 기록이 남아 승진에도 영향을 준다.
시험문제는 매년 9월을 기점으로 바뀌는데, 마치 대학교처럼 시험 문제 ‘족보’ 뿐 아니라 1,400여 장에 달하는 매뉴얼의 요약본도 승무원들 사이에서 돌아다닌다.
국적을 불문하고 족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다국적 동료들에 미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항공 승무원을 단순 서비스직으로만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정기 안전교육이 생소할지도 모르겠다.
승무원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웃으며 ‘Chicken or beef?’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비행 중 발생하는 모든 응급상황으로부터 승객과 동료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상탈출 시 승객들을 대피시키는 방법뿐 아니라, 폭력적인 승객을 제압할 수 있는 호신술도 배운다.
기내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승객이 아니라 승무원이다. 승무원에게는 미소를 지키는 것 이상의 무거운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교육이 돌아왔다. 어느새 일곱 번째다.
앞서 교육을 끝낸 동료들이 올해는 공부를 안 해도 풀 수 있을 만큼 시험이 쉽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험이 쉽다고 한들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인지라 나는 또 1,400여 장의 매뉴얼을 정독했다. 아는 것도 다시 보며 복기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교육 첫날은 Group Medical Training으로 시작했다. 이 시간에는 CPR부터 기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응급상황에 빠르게 대처하는 방법을 배운다.
사실 메디컬 트레이닝은 내게 트라우마(?)를 안겨준 수업이기도 하다.
2019년 첫 정기안전교육에서 나는 동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모의 응급처치를 제대로 해내지 못해 극도의 수치심을 느꼈다. 그리고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야 전신에 붉은 두드러기가 돋아난 것을 발견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 알레르기 증상은 약을 처방받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가라앉았다.
이제 내 앞에서 뚝딱 거리는 신입 동료들을 보니 7년 전의 내 모습이 겹쳐 보여 왠지 애틋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 이후의 일정도 별 일 없이 진행되었다.
승무원들의 교육을 위해 실제 항공기처럼 만들어진 시뮬레이터에서의 모의 비상 훈련은 영상자료시청 및 토론 수업으로 대체되었다. 시뮬레이터 중 하나가 해체된 탓이다.
하루에 12시간씩 교육을 받는 것이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특히 파일럿들과 함께 하는 수업은 졸음과의 싸움이다.
이 연례행사의 좋은 점은, 승무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자각할 수 있는 데 있다.
승무원은 안전 요원이다. 기내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응급상황에 우리가 얼마나 침착하게 대처하는지에 따라 상황은 극적으로 바뀔 수 있다.(물론 승객들도 승무원의 안내에 잘 따라주어야 한다! 승무원의 “안 돼요”는 당신의 안전을 위한 말이다.)
비행기에서는 사람이 죽기도 하고 태어나기도 한다. 기내에 불이 날 수도 있고, 비상착륙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경우가 흔하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지난 7년 간 안전하게 비행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만일의 상황에서, 내가 탄 비행기의 승무원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승객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비행학교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