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은 바람 잘 날이 없다.
휴전국가를 떠나온 곳이 하필 분쟁이 끊이지 않는 중동의 한가운데라니!
2020년 1월, 이란 혁명군의 최고사령관인 솔레이마니가 미국의 드론공격으로 암살되면서 두바이도 이란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미국의 동맹국으로 이란-미국 분쟁에서 중재역할을 하던 UAE를 타깃으로 정했다는 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피의 복수를 다짐하는 이란의 엄중한 선포였다.
다행히 이란은 겁박한 대로 두바이 폭격을 실행하지 않았지만, 이제 막 두바이 생활 2년 차에 접어든 나는 꽤 겁을 먹었더랬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걱정 어린 연락이 왔다.
‘이란이 미쳐도 단단히 미친 거지. 두바이는 절대 공격 못해.’라고 호언장담하듯 사람들을 안심시켰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을 쉽게 털어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테러청정국으로 불리는 이 나라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는 상상을 하면서도 당장 내일 비행을 가기 위해 짐을 꾸리는 처지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진짜 두려움은 5년 뒤에 느끼게 될 줄을 이때는 알지 못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지속되던 시기에도 이스라엘 텔아비브로의 비행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나는 다행히 한 번도 그 비행에 불린 적이 없지만, 친한 동료들은 로스터(비행스케줄)에 ‘TLV(텔아비브 공항 코드)’가 뜨면 하나같이 분개하며 병가를 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일을 해야 했고, 회사에는 2만여 명의 승무원들이 있었다. 어떤 이는 더 이상 병가를 낼 수 없어서, 또 다른 이는 승진을 앞두고 있어서, 저마다의 이유로 비행을 거부할 수 없어 불안한 마음을 애써 달래며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것이다.
회사는 현지 상황을 주의 깊게 살피며 아직은 안전하다 판단했겠지만, 승무원들의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벌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 함께 웃으며 비행했던 친구와 동료를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은 비단 나뿐만의 것이 아니었을 테다.
그리고 불과 두 달 전인 2025년 6월, 이-팔 전쟁은 이스라엘-이란의 무력충돌로 격화되었고, 갑작스러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란의 항공길마저 닫혔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고립된 민간여객기의 승무원들이 육로로 탈출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 당시 나는 영국에서 두바이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분쟁지역의 영공을 피해 우회하는 항로로 비행 중이었고, 서비스를 마친 나는 조종실에서 기장과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레이오버와 데이오프(휴무)에 대한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던 중, 갑자기 기장이 저기 좀 보라며 왼쪽을 가리켰다. 조종실의 창문 너머 끈적한 어둠이 내려앉은 하늘에 밝은 섬광이 보였다. 하얗게 명멸하는 섬광은 하나가 아니었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라왔다.
미사일이었다.
진짜 미사일이었다!
우리는 중동 상공을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기장은 비행 20년 만에 실제 미사일 공격은 처음 본다며 놀라워했다. 나는 경악과 동시에 소름이 끼쳤다. 기장은 우리 항공기가 100마일(약 160km) 여쯤 떨어져 있다고 했지만, 나는 미사일이 당장이라도 100마일을 건너와 우리를 격추할 것만 같았다.
항로는 다시 변경되었고, 우리는 더 멀리 돌아가게 되었다.
비행을 하다 보면 오랜 내전과 전쟁으로 고향을 떠난 승객들을 만나게 된다.
어떤 날은 검은 정장에 키파(유대인들이 쓰는 테두리 없는 둥근 모자)를 쓴 승객들이, 다른 날엔 팔레스타인 승객이 나와 함께 서쪽으로, 최대한 멀리 날아갔다.
그리고 그들은 늘 기도를 올렸다. 그들이 믿는 신은 기도를 듣고 있었을까?
며칠 전, 퍼스트 클래스의 한 이란 승객과 오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8살 때부터 공장에서 일하며 산전수전 다 겪다가 지금은 사업가로 성공해 두바이에 살고 있는 승객이었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머리카락과 수염이 희끗희끗한 이 승객은 6살 때 전쟁으로 한꺼번에 가족을 잃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고향은 여전히 분쟁 중이다.
밤하늘을 밝히는 불꽃놀이는 아름답다.
붉은색의 조명탄은 조난당한 생명을 살리는, 희망을 담은 불꽃이다.
하지만 어떤 불꽃은 감히, 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