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의 일기
무기력과 공허함에 허덕일 때 소란스럽지도, 요란하지도 않게 마음을 어루만져 준 건, 초록이다. 그저 그곳에 있음으로 안정과 평온을 주는 것이 녹색의 존재들이다. 내가 식물들을 돌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들이 나를 돌보고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5년 전 이사 온 집의 내 방에는 북서향으로 난 커다란 창으로 발코니가 이어져 있다. 가을과 겨울에는 해가 잘 들지 않지만 봄, 여름에는 낮부터 중동의 태양이 방안 가득 쏟아져 들어온다.
볕이 제일 좋은 이 창 앞에는 한 때 봉선화가 자라고 있었다. 한국에서 사 온 봉선화였다.
초등학교 탐구생활을 하는 기분으로 작은 화분에 씨앗을 뿌리고, 분무기로 흙을 촉촉하게 유지해 주면서 발아할 날만을 기다렸다.
인내심은 식물을 키우는 모든 식집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싹이 움트기 전까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씨앗을 심은 흙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손으로 꼽다 보니 어느 순간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흙을 밀어냈다. 7일이 지나자 폭신한 흙 사이로 연둣빛 싹이 머리를 내밀었다. 고동색의 씨앗을 모자처럼 쓰고 있는 그 모습은 앙증맞기 이를 데 없었다.
다음 날, 또 다른 싹이 올라왔다. 발아한 뒤로 봉선화는 정말 ‘쑥쑥’ 자랐다. 또 다른 7일이 지나자 떡잎이 펴졌고, 그 뒤로 본잎이 나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의 하루는 자라나는 봉선화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하고 끝이 났다.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는 ‘부모의 마음을 갖췄을 때 인간은 정원가로 다시 태어난다.’라고 했다. 작은 생명의 성장을 지켜보며 과연 내 안에 있을까 싶던 모성애라는 것이 이렇게도 발현이 되나 싶었다.
이제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는 듯한 시간이었다.
한 달이 지나자 봉선화의 생장은 더뎌졌다.
10cm 정도 되는 키의 줄기는 너무도 파리해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휘청휘청 대다 뿌리째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김포 집 마당에서 자라던, 굵은 줄기에 잎이 무성하고 꽃이 흐드러지던 봉선화와는 너무도 달랐다.
온실 촉 화초처럼 실내에서 너무 애지중지 키운 탓일까. 가녀린 봉선화는 한 줄기에 한 쌍의 떡잎과 한 쌍의 본잎만 가진 기형적인 모습으로 자랐다.
자책의 시간이 돌아왔다.
내가 서툰 탓이었다. 안전하게 내 울타리 안에서만 키운 봉선화가 어떻게 비와 먼지, 바람을 다 맞고 자란 마당의 봉선화처럼 튼튼하게 클 수 있을까.
이제라도 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발코니로 등 떠미는 집사에 저는 또 얼마나 억울할까. 약하게 길러놓고 억지로 세상 밖으로 밀어내 스스로 살아남기를 강요하니 말이다.
하지만 식물의 생명력은 경이로운 것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여가 더 지나자 면봉 같은 줄기 위에 연분홍 꽃봉오리가 맺혔다.
그리고 어느 밤, 자줏빛 꽃이 개화했다.
비행 후 늦은 밤에 돌아온 나는 방에 들어서자 그 작은 꽃이 제 몸보다 더 큰 팔을 내게로 뻗으며 소리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꽃은 열흘 가까이 붉고 서서히 색을 잃다, 자신이 태어난 흙 위로 목을 떨궜다.
씨앗이 발아하여, 한 생의 주기를 마치고 흙으로 돌아간 두 달여 동안 나는 전 생을 지켜본 세상의 유일한 존재였다.
나는 말해주었다. “너무 대견해. 진짜 고생했어!”
그리고 나는 인간이 인간으로 성장하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가 자력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당한 양분과 성장을 이끌 고난과, 그리고 살아내는 과정을 지켜봐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보잘것없이 작은 생명도 애정을 갖고 지켜봐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제게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얇디얇은 줄기 끝에 꽃 한 송이를 겨우 피워 낸 봉선화는 내 새끼손가락 손톱에 남았다. 그 자줏빛 꽃물을 바라볼 때마다 위안을 받는 것 같았다.
작고, 약하고, 힘이 없어도 괜찮다. 한 줌 흙에서라도, 뿌리내린 그곳에서 결국 너도 너의 꽃을 피울 테니까.
그렇게 봉선화는 내게 용기를 주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내 삶을 살아낼 용기.
*내가 쓴 글을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이 되는 줄 몰랐습니다.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 한 송이의 봉선화를 피워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