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돈 내고 받는 서비스인데 왜 감사해야 하죠?'
인터넷에서 종종 이런 글을 볼 때마다 명치끝이 갑갑해지는 것을 느낀다. 아무리 많은 돈을 지불한다 한들, 자신의 편의를 봐주는 사람들이 없다면 일상이 얼마나 불편해질지 생각해 봤을까. 식당에서 음식을 갖다 주는 직원이, 내가 탄 버스나 택시의 운전기사가, 내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가, 소위 '서비스 제공자'라고 불리는 이런 사람들이 없었다면 말이다.
비행을 하다 보면 눈을 맞추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자연스러운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어떤 비행의 승객들은 이 한 마디를 참 많이도 아낀다.
안타깝게도 나에게 한국인들은 후자에 해당한다. 우리 사회가 점점 더 타인의 친절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한다.
꼭 말로 하지 않아도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거나 눈을 보고 미소 한 번 지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 인사를 대신할 수 있다.
하지만 표정 없는 얼굴로 그저 모든 친절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때는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 물론 월급 받고 일하는 마당에 '그 말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하며 따지고 들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승무원도 사람인지라 따뜻한 말 한마디가 고프다! 그러니 나를 보고 미소 짓는 승객들에게는 고추장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Thank you에 인색한 승객들에 인류애를 잃어갈 때쯤이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두 번째 Supy 비행(Supernumerary Flight, 수습 비행)은 프랑스 파리였다.
입사 후 두 달간의 트레이닝이 끝나면 두 번의 수습 비행이 주어지는데, 이때는 주로 업무를 어떻게 수행하는지 관찰하고 적응하는 기간이라 반드시 모든 서비스에 투입될 필요는 없다. 그러다 신입의 손이라도 필요하게 되면 일을 하게 되는데, 말하자면 깍두기인 셈이다.
나는 빨리 적응하고 싶어서 일을 거들었지만, 오히려 방해만 된다는 생각에 조금은 기가 죽어 있었다.
하지만 곧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그건 승객들이 타고 내릴 때 최대한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파리에 도착해 승객들이 내릴 때마다 나는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며 굿바이 인사를 했다. 볼에 경련이 나기 시작할 때쯤 한 백발의 노부인이 내 앞에 멈춰 섰다. 순간 긴장한 내게 노부인은 환하게 웃으며 불어로 몇 마디를 하고는 나를 껴안았다. 내가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던 말은 ‘Merci(감사합니다)’ 뿐이었다.
승객들이 자신의 언어로, 혹은 다양한 몸짓으로 고마움을 표현할 때 나는 진정 이 일의 즐거움을 느낀다.
내 손등에 입 맞추던 장애를 가진 소녀가, 내 이마에 손을 짚으며 축복을 바라 주던 방글라데시 할머니가, 자신의 안전을 책임져 줘서 고맙다며 진지한 얼굴로 악수를 청하던 한 승객이 그날의 비행을 잊을 수 없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가 누군가의 비행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듯이 승객도 승무원의 하루를 추억할 수 있는 날로 만들 수 있다. 내가 7년 전 비행에서의 따뜻한 포옹과 'Merci' 한 마디를 기억하듯이 말이다.
오늘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는지, 어떤 이의 친절에 기대었는지 한 번쯤 되돌아본다면 세상을 향한 마음은 조금 더 너그러워진다.
자신의 편의를 위한 타인의 노고와 친절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날은 분명 당신과 나에게 다른 하루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