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아닌 것들이 주는 별 것
결국에는 사람의 손길
많은 것들이 자동화되었다. 주문을 하는 것도 기계에서 하고, 핸드폰으로 주문을 한 후에 픽업을 할 수도 있다. 월요일, GS슈퍼마켓이다. 미역을 담고 종갓집 김치 하나 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낫또 하나 담아 종량제 봉투와 함께 계산을 하려고 셀프 계산대 앞에 섰다. 갑자기 저만치서 직원 아주머니가 부르신다. "내가 해줄게. 이리와요."
냉큼 "감사합니다." 소리 내어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계산대 앞에 섰다. <현금 전용>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저... 카드로 계산할 건데 괜찮을까요?" "그럼! 나 어차피 노는데 해줄게." 아주머니가 걸걸하게 웃으신다.
종량제 봉투를 라텍스 장갑 낀 손으로 비벼 열어주시고는 내가 산 물건들을 담아주신다. 아주머니의 쉬어도 될 손이 움직인다. 늘 바코드 찾아 찍고, 혼자 잘 펴지지 않는 비닐을 담느라 바빴던 나의 손은 논다.
침을 한번 싹 바른 채 비벼야 펴지는 비닐봉지는 마스크 시대가 된 이후에 정말 얄궂게 내게 씨름을 청하곤 했다. 아이들 챙기랴 안에 물건 집어넣으랴 이상하게 맨날 내가 찍는 바코드는 삑사리 나고, 늘 짐은 주렁주렁 많은데 항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것에 익숙해져 뒷사람이 행여나 꾸물거린다고 생각할까 봐 마음이 겁나게 바쁜 내게 오늘 '사람의 손길'이 훅 들어온다.
장을 보며 누군가가 비닐에 담아주는 물건을 받은 지가 참으로 오래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의 손길이 닿는 곳이 이토록 없어졌다는 사실을 당연히 받아들이다가도 오늘 같은 온기 앞에 KO패를 당한다. 아이스크림을 사도 무인 자판대에서, 문구류를 사도 무인 자판대에서 계산을 하는 우리들. 불필요하게 사람을 만날 필요가 없는 것이 편하다 느끼면서도 계산을 하며 오가는 최소한의 대화들이 그리워지는 날들이 있다.
"사장님, 이렇게 넣어주시니까 정말 좋네요. 정이 느껴져서 오늘 아침 선물 받은 기분이에요. 감사합니다."
조금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어 결국 말을 했다. 직원 아주머니는 그런 나를 보며 활짝 웃는다. 걸걸한 목소리로. "나도!!" 하시며.
말보다 글이 편하고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남의 눈치 따위나 보며 쭈그려져 사는 삶이지만, 때로는 말로 해야만 보이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 순간들을 행여나 놓치며 살아가고 싶지 않아서 남긴다. 별 것 아닌 말들이 주는 별 것의 순간들. 편리하고 빠른 세상에서 결국에 온기를 담아 건네주는 사람의 손길들, 내가 결국에 이 삶에서 가져갈 작은 순간들을.